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Oct 21. 2021

용기 있는자가 죽음을 쟁취한다


 뉴스 1면이 같은 주제로 도배되어 있었다. 정부 정책 발언이 장안의 화재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뉴스를 틀었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어제 발언한 정부 정책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단호한 표정으로 답변을 풀어내고 있었다.

 “맞습니다. 선별된 인원을 뽑아 안락사를 허용할 계획입니다. 이미 안락사를 위한 알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국무총리가 손에 든 약은 작고 귀엽게 생긴 빨간색 알약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성분을 상상한다면 마냥 귀엽게 볼 수만은 없겠다. 기자처럼 보이는 여성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기자는 붉은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전날 야근을 했는지 눈구덩이가 퀭해 보였다.

 “총리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붉은 알약을 먹으면 수 분 내로 안락사할 수 있다니, 놀랐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그 약을 먹을 수 있는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총리는 말을 이어받았다.

 “맞습니다. 일단 신청서를 써주시면, 무작위로 매년 일정 인원을 선발할 예정입니다. 이번 연도에는 가능 인원 1,000명 정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원자가 없기를 바랍니다만 죽음조차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 자유로운 국가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대한민국 자살률이 OECD 부동의 1위입니다. 정부는 오랜 기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정신 상담 및 다양한 자살 방지 프로그램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왔지만, 전혀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보려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주자! 심지어 그것이 목숨을 잃는 중대한 결정과 관련되어 있을지라도.”

 총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1,000명이 지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알약을 손에 쥘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현재 전문 연구 용역 업체에 의뢰하여 테스트를 기획 중입니다. 테스트에 통과한 사람만이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겠습니다. 한순간에 컴퓨터 전원 코드를 뽑아 버리는 것과 같이 순식간에 뇌와 장기 기능이 일시에 정지되는 특수한 알약을 받아 가세요!” ”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가 술렁거렸다. 총리에게 질문했던, 여성 기자가 총알처럼 단상으로 튀어 나가더니 총리의 손을 깨물고 알약을 빼앗았다. 그녀는 곧바로 물도 없이 맨입으로 알약을 삼켰다. 모든 사건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뒤늦게 깨달은 카메라가 화면을 돌리면서 뉴스가 끊어졌고, 몇 분 뒤 그녀가 사망했음을 뉴스 속보를 통해 들었다.     

 침대에 누웠다.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뉴스 내용이 떠올랐다. “테스트라니.”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어떤 테스트가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체력이나 정신력 테스트는 아니겠지? 아니면 상식퀴즈? 아무리 상상해도 정답과 가까워질 것 같지 않았다. 죽고 싶은 사람에게 테스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더니 별거에 다 관심이 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띵” 

 엊그제 넣었던 한 중소기업 인사팀에서 온 문자다. 서류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다. 집에서 1시간 반 걸리는 거리에 있었고, 복지나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학까지 나와서 이런 회사에서 근무한다? 라는 생각이 물씬 드는, 소위 말해 가성비 떨어지는 회사였다. 그러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리모컨을 들어 뉴스를 툭, 껐다. 요즘 힘든 일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다 보니 지침에서 오는 반작용으로 관심이 살짝 갔던 것은 인정하지만, 안락사 프로젝트에 지원할 용기 또한 없었다. 생각해보니 알약 경쟁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 있는 자가 죽음을 쟁취한다!

.

.

.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잘나 보일 때는? 바로 면접날이다. 모든 미사여구와 깊은 자의식 내 자리를 잡은 낯간지러운 거짓말 들을 마치 진실인 양 늘어놔야 한다. 면접장에 등장한 슈퍼 히어로 들을 쭉 나열하면 지구 정복도 문제없겠다. 이날 이 시간 만큼은 여러 명의 인상 궂은 심사위원들이 내 자랑 한 번 듣겠다고 귀한 시간을 냈다. 

 면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말 출근이 종종 있는데 가능하냐?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거냐? 등 우리는 너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떠나라는 배짱부리기 앞에서, 저는 굉장히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한 인재이지만, 연봉도 적고, 별 볼일 없는 당신 회사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몸이 부서지라 일하겠다고 대답하는 모순을 자아내었다. 

 다행히? 면접 결과는 합격이다. 거실 쇼파 위에서 방방 뛰는 내게 어머니는 그깟 중소기업 취업해놓고 베알도 없냐? 기분이 그렇게 좋더냐? 하고 핀잔을 주었다. 어머니는 영 떨떠름 한 표정으로 사과를 깎아 상에 내었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고 즙이 터져 나와 입안을 헹궜다. 단맛을 예상했던 혀는 생각보다 쓴 과즙에 이리저리 내둘렀다.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어쨌든 첫 회사 생활에 기뻤다. 열심히 밤새 기획서를 써서 모두의 관심을 받고 그 기획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실적까지 내어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씁쓸함과 달콤함 그 중간 어느 지점의 나날들이 첫 출근 전까지 계속되었다.     

 봄의 기운이 완연한 거리를 사뿐사뿐 걸었다. 꽃봉우리가 곳곳에서 웃음을 터뜨렸고, 아직 피지 않은 봉우리 주위는 곧 시작될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있었다. 강남역 출구를 빠져나와 회사가 위치한 빌딩을 찾았다. 빌딩 숲 사이사이 열정이 피어올랐다. 그 열정의 아지랑이 속에서 용케도 내 회사를 찾았다. 그렇다. 내 회사다. 

 9층과 10층을 쓰는 직원 50명 채 안 되는 작은 제조업 기반 회사였지만, 벌써부터 애사심이 단전부터 목구멍으로 넘쳐 흘렀다. 첫 사랑, 첫 직장... 처음은 늘 설렌다. 

 “안 장수 씨?”

 “네?”

 까무잡잡한 얼굴에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직원이 내 이름을 불러 세웠다. 

 “아! 저는 안상수 씨 사수 김해도 대리입니다. 잘해봅시다.”

 그는 친절하게 웃으며, 내 자리를 안내해줬다. 자리에 가보니 ‘안 장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놓여 있었다. 조금은 긴장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나의 첫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