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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나는 오늘 죽는다..

 새빨간 알약을 받아든 손이 떨렸다. 이 약을 받기까지, 즉 고통스럽지 않게 죽기 위해 내가 달려온 길은 절대 쉽지 않았다. 같이 출발한 많은 사람들이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알약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바보같이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가 고생스러운 삶을 지속해야만 했다. 모든 경쟁자를 무찌르고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희열감이 온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처음으로 내가 선택했고, 노력해서 얻어낸 값진 자랑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곧이어 그 뱀은 서서히 존재력을 내뿜으며 조여 들어왔다. 갈비뼈와 심장 부근의 빈 공간을 파고들어 내 몸통을 사정없이 조여댔다. 숨이 가빠왔고, 정신이 혼미했다. 흐릿한 연기 속에서 지난 삶들이 안개꽃처럼 피어난다.      

 “나는 오늘 죽는다...”      

 “아들, 너 공부 안 하면 저 형처럼 된다!” 

 쌀쌀한 3월의 날씨, 어느 고등학교 입학식 날 교문 앞에서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영어 학원 전단지를 돌리던 중 한 중년 어머니의 작지만, 반경 10m 내에 있거나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가 눈치 없이 울려 퍼졌다. 그 근방에 ‘형’이라고 불릴 사람은 나뿐이다. 당장 쫓아가서 면전에다 대고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따져볼 법도 했지만, 3월의 매서운 바람에 얼어버린 발과 같이 얼어버린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았다. 억울했다. 억울함에 눈물이 녹슨 수도꼭지처럼 질질 새 나왔다. 못된 말을 들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달려가서 한 마디 따지지 못하는 못난 자신에게 실망한 게 더 컸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이렇게 산다고?” 

 갑작스러운 혼잣말에 벌어진 입술이 놀랐는지 갈라져 터져버렸다. 텁텁한 핏물이 찔끔 스며 나왔다. 사실 공부는 꽤 했다. 학창 시절에 꿈도 뭣도 모르고 공부하면 인생 핀다는 거짓말에 속아 그저 죽은 듯이 공부만 했다. 뭐, 성적은 크게 잘 나오지도 못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수도권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정도는 된다고 담임 선생님은 말씀하셨었다. 그 정도면 취업하는 데 문제는 없겠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무조건 인서울을 고집하셨다, 담임 선생님과 어머니의 양보없는 실랑이가 시작됐다.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 방향에 대한 논의를 끝내고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고, 약 1시간이 지나서야 결론이 났다. 나는 그들이 마련한 타협책으로 당시 가장 인기가 없었던 인서울 4년제 대학 철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들어갈 때만 해도 철학이 뭔지도 몰랐다. 철학이라고 말하면, 그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정도만 떠올랐다. 학문에 관한 관심보다는 오로지 대학 간판이 최고라는 사회가 만든 돛단배에 위태롭게 올라탄 게다.      

 대학 생활도 평범했다. 철학은 여전히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이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해서 소크라테스로 끝나는 단순한 학문은 아니구나~ 정도는 배웠다. 대학 내내 학점도 그냥저냥 했다. 교수님은 과제를 내주셨고, 나는 그저 주어진 과제를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했다. 하루는 무슨 용기나 자신감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수업이 지루해서 일수도) 손을 번쩍 들었다.


 “장수 학생?” 

4년 전공 수업 내내 질문이 거의 없었던, 침묵을 미덕으로 삼던 제자의 움직임에 월동을 끝내고 기지개를 켜는 곰을 본 등산객처럼 교수님은 움찔했다. 

 “교수님, 제가 짧은 시간이지만, 4년 동안 철학을 배우면서 느낀 점 한 가지는 인생살이에는 고통이 늘 수반되며, 많은 철학자가 행복한 삶을 정의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정작 행복한 철학자는 별로 없다는 겁니다. 삶은 진정 행복할까요?” 

 교수님은 형광등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은테 안경을 오른손 검지로 살짝 추어올리며 말했다. 

 “장수 학생... 좋은 질문이에요. 철학자들은 각자 ‘행복’을 정립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행복의 본질을 개인의 쾌락에서 찾았고,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은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적인 시각에서 행복을 바라보았으며...” 

 나는 괜한 질문을 던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귀를 닫아버렸다. 뛰어난 철학가조차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명확한 답은 없다는 말이 된다. 내 인생 행복은 오로지 나 자신만이 답을 찾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인생과 그 방향, 그리고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실존은 하는 것일까...          

 삶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사는 철학과 학생조차도 잠시 지적 사고를 멈춰야 할 때가 온다. 바로 졸업과 동시에 옥죄어 오는 취업이다. 사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목을 매고 한 이유가 바로 자본주의 세상에서 낙오되지 않고 잘 적응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낙오되면 모든 과정은 그저 물거품일 뿐이다. 나 역시 취업 준비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취업이란 놈이 생각보다 쉽게 잡히는 놈이 아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날개 달린 ‘금색 스니치’처럼 잡고 싶지만 쉽게 잡혀지지 않는 게 취업의 정의다.       

 3달, 6달... 어느덧 예상치 못하게 1년이 속절없이 흘렀다. 생각해보면 무언가는 쉬지 않고 계속했다, 딱히 놀러 다닌 기억도 없는 것 같은데... 취업에 번번이 실패했다. 관심도 없는 세계 경제 상황에 발맞춰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적당히 쓰고 즐기며 살자! 신봉자였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허리띠를 졸라매셨다. 동시에 늘어난 시간 동안 폭풍같은 잔소리가 귓가에 몰아쳤다. 나는 최대한 달팽이관 안쪽 깊숙이로 도망가기로 했다. 

 학창시절에 어머니는 늘 혼자이셨다. 어릴 때 알코올 중독자의 삶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 얼굴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수선한 집안에서 외동으로 태어난 나는 늘 혼자였다. 주 1회 아주머니가 오셔서 이것저것 반찬도 만들어주시고 구석구석 청소하고 정리해 주셨다. 아주머니가 없는 집 상태는 늘 아노미 상태였다. 여기저기 빨랫감이 날아다녔고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쌓였다.

 여유가 있어서 아주머니를 부른 게 아니라 정말 삶의 벼랑 끝으로 밀리기 직전, 살기 위해 매주 돈을 드리고 일을 맡겼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 우리집은 가난했다. 그럴 때면 나는 늘 옷장에 숨어들어서 울먹거렸다. 집에서 새지 않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 늘 혼자 조용히 지냈고, 밖에서도 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니,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기껏해야 작은 바가지였기에 누구도 내게 관심 두거나 말 걸어오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조금이라도 사람 구실을 해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깃집 서빙, 택배 상하차, 텔레마케터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 일했다. 가장 힘들었던 아르바이트를 뽑으라면 당연 텔레마케터였다. 하루 500통의 통화에서 쏟아내는 시민들의 독설들에 독이 올라버린 나는 퍼렇게 늘 질려있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용감해지고 격해지는 법이다.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뒀고 바로 오늘 그나마 쉽다는 학교 앞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또 ‘세 치 혀’라는 강력한 무기로 얻어맞았다. 

 몸에 상처가 나면 티가 팍 난다. 사람들은 상처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거나 조심조심 대한다. 그런데 말의 상처는 도무지 티가 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더 심한 말로 상처를 후벼판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부 안 하면 형처럼 된다.”라는 작은 공격으로도 그동안 쌓인 모든 상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인간은 완전히 무너진다.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살았고, 학교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았으며, 졸업 후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밤, 낮으로 쾌락을 참아가며 잘 적응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세상은 이리도 가혹한 건지... 눈앞에 보이는 학원 전단지 끝을 돌돌 말아 뾰족하게 만들어 안쪽 연한 목살에 대어보았다. 차가운 종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무겁게 손을 내렸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우겨 넣었다. 

 “띵”

 문자가 울렸다. 저번 주에 처음으로 면접을 봤던 중견기업이다. 복지도 나쁘지 않아 첫 회사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두근거리는 눈빛으로 문자를 빠르게 훝었다.

 ‘귀하는 뛰어나지만... 폐사는 귀하를 품을 만큼.... 따라서... 불합격을 통보 드립니다.’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머리를 뒤로 젖혔다. 지하철 형광등이 덜덜거렸다. 하늘이 보고 싶었지만 지하철에서 하늘을 볼 방법이 없었다. 어둡고 길고 긴 터널을 털컹거리며 지나갈뿐... 

 “띵”

 또 문자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친구 놈이 보낸 것이다. 다 읽지 않고 주머니 안쪽 깊숙이 휴대폰을 밀어넣었다. 

 “띵”

 다시 휴대폰을 고생스럽게 꺼내 들었다. 역시 친구놈이 보낸 문자다. 문자를 읽던 중 놀라서 ‘탁’ 소리와 함께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말도 안돼! 정말일까? 진짜?’ 

 최신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어느새 긴 터널을 지나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로 일렁이는 한강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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