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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프롤로그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어릴 때 친구들끼리 장난처럼 생일 축하 노래를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로 바꿔 부르며 깔깔대곤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왜 태어났을까? 나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숭고한 촛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 아니,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우리 인생은 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지 않은가? 

 사실 심각하게 고민해 봤자, 별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냥 태어났으니까! 인류가 종족 번식을 꾀하고 후대에 좋은 유전자를 남기려는, 나름의 생존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는 번식과 번영이라는 긴 과정 안에서 그냥 태어났다. 내 의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고 그냥 쑥~ 잉태되었다. “삶이란 게 이런 거야!”라는 일언반구의 설명은 듣지 못했다.     

 두 번째로 인간은 왜 살아갈까? 태어났는데 삶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삶을 종료할 수 있는데, 왜 그러한 행위를 ‘자살’이라는 섬뜩한 단어로 지정하고 권장하지 않는 것일까? 순간의 아픔과 고통이 두려워서, 그냥 죽지 못해 사는 것일까? 

 영화를 보다 보면 심심찮게 고문 장면이 나온다. 불에 벌겋게 달군 쇳덩이로 지지고, 오랜 시간 정성 들여서 주리를 틀거나 곤장을 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늘 죄수는 소리친다.


“으악~ 제발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줄 순 없겠니!”      

 우리는 현대판 죄수와 같이 우울증과 공황 같은 정신병, 소음과 공해, 원인 모르는 희소병,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장애... 아니, 그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인간관계, 돈 문제, 직장 스트레스 등 인생 스트레스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어째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을까? 

 어느 순간 스트레스에 면역 딱지가 앉아서? 아니면, 처음에 얘기했던 종족 번식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죽고는 싶지만, 합법적이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일지도...      

그럼 만약, 당신에게 작고 귀엽지만 치명적인 알약이 주어지고 그 알약을 삼키는 순간 단 몇 분 뒤에 고통스럽지 않게 고생스러운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알약을 삼키겠는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만이 문제인 인생 끝자락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해, 그 머뭇거림에 맞서는 작은 확신이고 싶다. 손끝에서 시작되는 작은 파닥거림에서 튀어 버린 방울방울이 당신에게도 닿아 크게 적셔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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