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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첫번째 테스트

 강사는 다시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강당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작은 체구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첫번째 테스트는 바로 샤워하기입니다.” 

 “뭐? 샤워?”

 귀를 의심했다. 여기 샤워 안 하는 사람도 있었나? 싶었다. 어이가 없었다. 다음 달이면 약을 받고 죽으려는 사람들에게 샤워하라니? 한 달간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한 배려일까? 

 강당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모두가 같은 생각일 테다. 괜히 왔다는 생각에 퇴소해버린다면 그 또한 하나의 테스트로 충분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첫 번째 테스트다. 

 “여러분, 저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닙니다. 싫으신 분은 언제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자 그럼 모두 깨끗이 샤워를 끝내시고 2시간 뒤에 강당에서 뵙겠습니다. 샤워하지 않으셨거나 지저분한 모습으로 강당에 오신다면 바로 탈락처리 될 것을 공표해 드립니다.”

 웅성거림의 파도를 타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먼저 돌아온 노인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샤워실에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노인은 무려 1시간 가까이 샤워를 했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노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1시간 동안 샤워를 하는 노인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샤워하지 않으면 탈락시키겠다는 주최 측의 발언에 얻어맞아 정신이 멍했다. 

 “하~ 개운하니 좋구먼, 첫 번째 테스트는 문제없겠군. 허허. 바디로션 향기도 너무 좋잖아? 비싼 게 분명해.”

 노인이 화장실 문을 벌컥 젖히면서 말했고, 나는 대꾸 없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10분 만에 대충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어쨌거나 의미 없는 테스트 같았다. 설마 샤워하지 않았다고 탈락하는 게 말이 될까 싶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강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이 샤워한 듯 한층 개운해 보였다. 온 강당에 향긋한 냄새가 진동했다. 강당 오른쪽 앞문을 열고 강사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잠시 킁킁거렸다. 

 “여러분, 테스트에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몇 분은 샤워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교관님들은 바로 확인하시어 샤워하지 않은 분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사의 말끝이 흐려지자마자 5명의 교관이 강당을 헤집어 다니면서 샤워를 하지 않은 사람들을 골라내었다. 몇몇은 하지 않고도 했다고 우겨댔으나 교관이 가차 없이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십여 명의 사람들이 울먹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일부는 이딴 게 테스트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여러분 제가 샤워를 하고 다시 모이라고 해서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사실 첫 번째 테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짜 첫 번째 테스트는 ‘치장하기’입니다.”

 또 한 번 강당이 윙윙거렸다. 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유명 패션 디자이너 5분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모두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 주셨고, 일체 대가를 드리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각 디자이너분 들을 자유롭게 방문하시어 옷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들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들어올 때 문 앞에서 한 분씩 사진이 찍힌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사진을 BEFORE 사진으로 칭하고 여러분이 스스로 멋지게 꾸민 후에 사진을 AFTER로 하겠습니다. 각 디자이너분께서는 이 두 장의 사진으로 여러분을 평가할 것이고, 낙제점을 받은 참가자는 다음 주 이 시간에 탈락함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정말 피곤한 한 주가 될 것 같았다. 곧 죽으러 들어온 사람들의 옷은 대부분 칙칙한 검정이었고 우중충했다. 일부는 빨지 않은 듯 아주 더러웠다. 이런 테스트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내게는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은 들어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조금 생각에 잠긴 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똑똑.”

 “네 들어오세요.”

 상냥한 말투를 따라서 큰 홀 안쪽으로 들어갔다.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서로 거리를 둔 채로 무질서하게 앉아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남성 디자이너 앞으로 다가가 섰다.

 “안녕...하세요.”

 “오! 반가워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안 장수입니다.”

 “장수 씨 편하게 앉으세요. 디자이너 강유민입니다.”

 “오늘 제 첫 손님이세요. 다른 분들은 아직 생각이 많아 보이십니다. 어찌 되었든 빨리 조언받아서 움직이시는 게 유리하실 텐데요. 하하.”

 디자이너는 무표정한 내 표정을 살피더니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 뭐 그렇다는 겁니다. 자, 그럼 제가 한번 장수 씨의 스타일링을 봐 드릴게요.” 

 디자이너는 한참을 사진과 현재의 내 모습을 번갈아 보더니 유레카를 외치듯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좋아요. 일단, 체중 조절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요. 일주일 남았으니까 3KG 정도만 무리해서라도 빼면 좋을 것 같고, 머리는 조금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소프트 포마드 스타일에 옷은 무난한 흰색 셔츠에 갈색 구두, 슬렉스 바지에 은빛 메탈 시계로 포인트를 주는 게 좋겠네요. 아! 양말은... 맨발이나 덧신 느낌의 낮은 양말로 복숭아 뼈가 조금 보이는 게 좋겠어요. 가장 무난하지만 깔끔한 그런 느낌입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추구하는 헤어와 패션 스타일 관련 사진을 보여줬고 나는 스마트 폰으로 모두 찍어서 방으로 들어왔다. 한 번쯤은 이렇게 꾸며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으나 꾸미는 데에도 비용과 관심 그리고 노력이 필요했기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었다. 사실, 이렇게 꾸민다고 인생이 달라질 것도 없는데... 하는 생각이 컸었다.

 다음날 인터넷을 통해 옷을 주문했다. 어르신들을 위해 교관에게 부탁하면 대신 사다 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옷을 고르면서는 중간중간 옷 색감이라든지 길이감이라든지 등 모든 세세한 부분을 디자이너에게 물어보고 결정했다. 혹시나 떨어지지 않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처음으로 비싼 옷도 사 입어봤다. 패션에 관심이 없어서 늘 2~3만 원짜리 시장표 옷을 대충 사서 입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 모아놓은 돈을 과감하게 풀어 쓰기로 했다. 어차피 죽으면 필요 없는 종이 쪼가리였다. 

 그리도 대망의 테스트 당일 날 아침, 일찍이 광주행 버스를 타고 미리 예약한 광주에서 제일 잘 나가는 헤어숍에 가서 포마드 머리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오니 그야말로 대단했다. 무도회장을 연상시킬 법한 멋진 옷들과 스타일을 뽐내고 있었다. 여기가 정말 죽으러 들어오는 곳이 맞는가? 싶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힙합스타일, 정장스타일, 무도회 스타일 등 멋진 스타일이 난무했다. 모두가 큰 홀에 모였는데, 홀 중간중간에 대형 전신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두가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우중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대부분 서로 말을 걸지도 않던 사람들인데 자신감이 생긴 것인지 서로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종종 포착되었다. 

 “안녕하세요. 어휴 너무 멋지게 입으셨어요!”

 중년의 여성이 다가왔다. 붉은색 드레스에 반짝이는 반지와 팔찌, 무엇보다 부드러운 웨이브를 넣은 머리 등 얼핏 보면 30대로도 볼 수 있을 법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여성이 내가 복수해야 할 여성임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네. 그런가요.”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먼저 와서 말을 걸다니 괘씸했다. 하지만 여성은 내 표정을 깊게 살피지는 못했다. 전신 거울 앞 예쁜 모습에 심취해버린 모양이다. 

 “아이 키우면서 제 모습은 잊어버리고 산 게 어언 20년인데, 저도 이렇게 예쁜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알게 되었네요.” 

 “그러신가요? 흥. 그럼 자신을 포기하시면서까지 키워낸 자식분은 잘 살고 계시지요?” 

 여성은 갑자기 말을 떨었다.

 “죽었어요... 작년에요.”

 여자의 안면 근육이 일그러지면서 고생스럽게 말했다. 

 “네? 죽었다고요?”

 “네 죽었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죽었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길러낸 아들인데…. 늘 공부하라고 닦달만 했습니다. 아마 본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예요. 저도 나름의 사정은 있어요. 이 세상이 좀 어렵습니까? 공부 못하거나 돈 못 벌면 사람 취급이라도 해주던가요? 그런데 아들은 그 세상이 무서웠나 봅니다. 모의고사가 끝나던 날... 학교 옥상에서 그만...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공부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너의 인생을 살라고, 세상이 뭐라고 해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누가 뭐라고 해도, 설사 돈을 못 벌거나 명예가 없어도 너만 행복하면 된다고… 말 하고 싶어요…. 흐윽.”

 여성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는데, 복수를 다짐했던 여성을 향한 복수의 칼끝에 연민이라는 감정이 묻어져 버린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공부 안 하면 저 형처럼 된다.’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학생도 나처럼 열심히 공부했을 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았겠지. 공부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사회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공부 못하면 저 형처럼 된다는 말이 무서웟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부를 못했으니 이제 자신의 인생은 추운 겨울에 손을 호호 불면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는 그때 그 형의 모습 그 이상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테다... 그 학생이 어찌저찌 삶을 꾸려나간다고 해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한 번 더 좌절할 것이다. 역시나 사회는 내가 낄 곳이 없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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