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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내일 태양이 뜬다는 믿음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닙니다. 오늘 테스트 잘 보세요. 너무 멋지십니다. 그럼 이만.”

 나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복수의 칼날은 부러졌다. 기분이 찝찝해서 다시 샤워를 하고 싶은 기분이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친 여성에게 감히 나 따위가 복수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동시에 비슷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 아! 안녕하세요. 햇님입니다. 여러분 모두 너무 멋지십니다. 정말 너무 놀랐지 뭡니까? 하하.”

 강사가 어느새 마이크를 쥐고 홀 중앙에 서 있었다. 주위로는 검정색 모자를 푹 눌러쓴 교관들이 있었다. 

 “여러분과 저에게 동시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 미션을 수행하는 중간에 몇 분이 퇴소 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자 그러면 한 분 한 분 전신 거울 앞에 서주시면 사진이 찍힐 겁니다. 각 사진은 AFTER이라는 제목으로 디자이너 분들께 전달될 예정이며, 오늘 저녁 식사 전에 탈락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모두 한 줄로 카메라 앞에서 사진이 찍혔다. 사진이 찍히는 몇 초 동안 전신 거울 앞에서 은은한 조명 빛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아야 했다. 달라진 모습 속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이 보였다. 흡사 내가 성공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싶었다. 

 중년여성도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얼굴 군데군데 얼룩 자국이 남아있었다. 내가 떠나고도 한참을 울었을 테다. 신기하게도 몇몇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더니 당당하게 걸어가 퇴소 절차를 밟았다. 테스트 결과도 나오기 전에 자진 퇴소를 한 것이다. 한껏 멋을 부렸더니 숙소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지 않아 건물 앞 잔디밭 벤치를 어슬렁거렸다. 꽤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이유인 듯 잔디밭에 나와 않거나 서 있었다. 향긋한 풀 향기가 코끝에 끼쳤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여유로움인지 모르겠다. 매일 멋진 슈트를 입고 빌딩 숲을 자유자재로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웠다. 

 마치 지금의 옷이 12시가 되면 변해버리는 신데렐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생각해보면 신데렐라도 대단한 위인이다. 얻은 기회를 100번 활용해 왕자의 마음을 얻지 않았는가? 나 같으면 12시가 언제 오나 시계만 쳐다보다 하루를 다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되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어느덧 시간이 되자 강당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강사는 다시 강단에 서서 비장하게 말했다. 

 “테스트 결과가 나왔습니다. 호명하시는 분은 테스트에 탈락하셨으니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약 5~10명 정도가 호명되었고 집으로 돌아갔다. 공통점은 모두가 꾸미지 않고 왔다는 점이다. 머리도 부스스해 보였고, 옷도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는 등 전혀 자기 자신을 꾸미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의 제기 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호명된 사람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짐을 싸서 떠났다. 첫 번째 테스트에서 꽤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다. 적어도 10% 정도는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하다가는 전부 다 알약을 받을 판이다. 

 “여러분, 첫 번째 테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탈락하지 않고 남으셨네요. 어떠신가요? 그만큼 여러분의 상처와 삶을 포기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고 오늘 일정 마무리하겠습니다.”

 강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꼭 쥐었다. 그 비장함에 침이 꼴딱 넘어갔다.

 “제가 좋아하는 분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려고 합니다. 아홉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가난해 학교에 다닐 수 없어서 책 한 권을 사서 닳도록 보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모은 돈을 전부 사업 실패로 말아먹고 17년 동안 그 빚을 갚으며 생활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수많은 실패를 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자살할 것으로 생각했죠. 당연하죠! 저 같아도 살기 싫을 것 같아요. 이 이후로도 취업도 못 하고, 하는 것마다 다 안 돼요. 공식적으로 큰 실패만 27번 겪었어요. 사실 살면서 3~5번 정도 큰 실패를 겪으면 좌절하고 못 일어나는 경우도 많잖아요? 27번이면 대단히 많은 실패를 하신 거예요.”

 모두가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다. 저렇게 실패를 많이 했다면 왠지 우리 중 한 명으로 센터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분은 실패한 다음 날이면 늘 오늘의 여러분처럼 행동했어요. 일찍 일어나서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끔하게 정돈하고, 맛있게 아침을 먹고 멋진 옷을 입고 길을 나섰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그는 국회의사당으로 가 서명하고 선언했습니다. 

 ‘나 에이브러햄 링컨은 헌법을 준수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맞습니다. 이분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어떤 실패를 겪고 고통을 얻어서 이곳에 계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여러분의 실패가 27번이 넘지 않았다면 여러분도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점을요. 힘든 일로 괴로우시다면 오늘처럼 깨끗이 씻고, 머리를 정돈하고 멋진 옷을 입고 무작정 길로 나가 보는 게 어떠실까요? 설사 이 효과가 12시가 되면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신데렐라 같을지라도 그사이에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는 긍적적인 정리가 이뤄지고 새롭게 도전하고 나아갈 힘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무언가를 느끼셨다면 과감하게 문을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푹 쉬세요.”

 고요했다. 강사는 나갔고, 사람들은 남았다. 그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모두가 말이 없었다. 옷이라도 부스락 거리면 소리가 날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몇몇은 신데랄라를 꿈꾸듯 자리를 박차더니 퇴소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10분 정도 앉아있다 숙소로 들어왔는데, 내가 본 것만으로도 족히 50명 이상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평소에 자기계발, 성장 문구만 들어도 오그라들던 내게는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맹이에서 퍼져나온 작은 물결 정도였다. 

 “계속 있으실 거죠?” 

 누군가 옆에 다가와 물었다. 자세히 보니 한껏 멋을 낸 중년여성이다. 내가 복수를 감행했다가 그만두기로 한 그녀다.

 “네…. 끝까지 있을 겁니다. 저런 이야기 수없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성공했으니까 저렇게 무용담이 된 겁니다. 99프로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도 안 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중년여성은 고개를 저었다. 눈빛이 또랑또랑했다. 나는 잠시 시선을 앞으로 옮기며 다시 말을 이었다.

 “없어요. 왜 없을까요? 아무도 그들을 궁금해하지 않아요. 우울하고 실패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99프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성공한 사람도 있으니까 너도 열심히 살아가라? 참나….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거면 저도 상담사하고 강사 하겠어요. 하하…. 아.”

 말을 하는 중간에 햇님이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 강사가 다가왔다. 여성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힐끗 보면서 스쳐 지나갔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작은 울림이 막, 막, 가슴속에서 커지고 커져서 저를 뚫고 나온 느낌이에요. 단순히 멋진 명언이나 성공스토리를 들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저 자신을 보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나 자신도 조금은 들여다 봐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눈에 넣어도 예쁜 우리... 아들...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두 번째 테스르를 준비해도 시원찮지만, 우리 아들이 평소에 했던 얘기들이 생각났어요. 

 엄마도, 엄마 인생을 좀 살라고! 나한테만 다 맞추지 말라고!”

 중년여성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평생을 아들 잃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겠지만, 이제 저도 제 인생에 한발 다가가야겠어요. 아들도 그런 삶을 원하겠지요? 그렇죠?”

 “네…. 그럴 거예요. 집으로 가시는 게 좋겠어요….”

 “네. 청년도 꼭!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랄게요. 그게 알약이던….”

 “그럴게요. 꼭.”

 중년여성은 환하게 웃었다. 가지런한 흰 미소에 소녀같은 풋풋함이 물씬 풍겼다. 여성은 곧바로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중년여성은 아들을 잃으면서 세상에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라는 녀석이 세상에 맞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이제는 가슴 한 곳에 자식의 못을 박은 채로 나머지 가슴으로는 그동안 소홀했던 자신을 품어보기로 했다. 그녀의 숭고한 결정에 감히 조언 따위는 할 수 없었다. 응원할 뿐이다.


 주말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모든 게 평온했다. 다만 어머니의 잘 있냐는 물음에 너무 잘 지낸다는 거짓말 정도가 마음이 쓰였다. 젊은 강사는 주말 동안 몇 번 마주쳤다. 그녀는 찡끗 해 보이는 눈웃음 정도로 나의 쭈뼛쭈뼛한 인사에 답했다.

 시설에 들어온 지 첫 주말이 그렇게 희미하게 지나갈 무렵, 같은 방을 쓰는 노인이 거실로 나와 같이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과는 딱히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주로 노인이 시답잖은 농담 같은 말로 운을 띄우면, 나는 그저 피했다. 노인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계속 실실 웃고 다니는 노인을 보면서 미치광이로 치부해서 피했었고, 지금은 곧 죽으려는 사람이 웃고 산다는 게 그저 재수가 없었다. 아니, 웃음의 전염력은 바이러스와 같이 강하고 빠른 것이기에 나에게까지 전염되어서 시설에서 나가게 되면 안 되기에 피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노인으로부터는 긍정 에너지가 넘쳐흘렀고 나는 그 에너지를 피하려고 고군분투 했다. 

 그런데 오늘, 그 에너지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했다. 

 “날씨도 너무 좋고, 별도 밝고 달도 뜨고 허허. 오늘 같은 밤에는 마트에 파는 소시지에 맥주 한 캔이면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겠지? 자네도 술 좀 하는가?”

 “네…. 마시기는 하는 데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이 아마, 소주로 병나발 불면서 발도 다치고... 비싼 구두도 찢어지고... 뭐 아무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호! 자네도 길게 얘기하는 재주가 있구먼, 난 늘 단답형으로 얘기하길래 어디 조금 불편한가 했는데. 허허.”

 노인은 호탕하게 웃었고 나는 찌푸렸다. 노인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목소리를 낮춰 얘기했다. 

 “여기 와서 내가 가장 놀란 게 뭔지 아는가?”

 “네?”

 “자네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야.”

 “저 같은 사람이요?”

 “젊은 사람 말일세. 내가 젊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친구들은 없었어. 그런데 요즘 애들은….”

 흔히 꼰대라고 불리는 어른들이 얘기하는 한 편의 뻔한 이야기가 곧 이어지겠다는 생각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요즘 애들은 참, 불쌍해! 안타깝고 그렇네.”

 “네? 무슨….”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경제적으로 이렇게 풍요로운데, 고깃국을 매일매일 먹는데 어떻게 힘들 수 있냐는 말’ 그 말은 너무 모순적이야. 사람은 오늘 고깃국을 먹고 내일도 고깃국을 먹는다고 행복한 존재가 절대 아니네.“

 ”그러면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오늘 쌀밥을 먹더라도 내일은 반찬 1가지가 추가되겠지? 아니, 내년에는 고깃국을 맛볼 수 있을 거 같아! 이런 희망이 사람을 나아가게 하고 춤추게 한다네. 내가 젊을 때는 고도성장기였어. 매일 매일 경제는 나아지고 건물들은 높아져 가고 그랬지. 하다못해 아르바이트해도 매년 시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어. 그 덕분에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지…. 경제가 멈춰버린 요즘 사람들은 겪을 수 없을 기분일 테지…. 내가 자네의 고민을 들어본 적은 없어도 이런 점이 맞물리지 않았을까 감히 예상해보네.“

 노인에게는 확실히 혜안이 있었다. 삶을 통찰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이해심이 느껴졌다, 나는 노인에게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노인이라면 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들어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랬군. 자네 참 힘들었겠어. 내 어떤 조언은 하지 않겠네. 자네가 이곳에서 직접 느끼고 결정하면 그 결정을 존중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런데 외람되지만, 어르신은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되셨을까요?“

 ”나? 허허. 뭐 이 늙은이가 삶에 미련이 있겠나? 그저 좀 더 편히 하늘나라로 가서 우리 예쁜 부인도 만나고 부모님도 뵙고 그러고 싶은 게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쓰나? 허허. 오늘 많이 늦었으니 자고 내일 2번째 테스트나 기대해보세나.“

 노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조금 피식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있는 이곳이 죽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우울감이 달려들어 발목을 잡아맸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밤은 모든 시야를 앗아갔다. 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삶이란 이런 걸까? 내일 태양이 뜬다는 믿음이 오늘밤, 이 칠흑 같은 어둠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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