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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살고싶다

 아침에 눈을 떴다. 

 “어?. 아….”

 사실 아침인지 새벽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일어났으니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바닥을 더듬거리면서 슬리퍼를 찾아 신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바닥을 쓱쓱 밀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띠링 띠링 띠링”

 종이 울리는 걸 보니 아침 시간이 된 게다. 나는 또다시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왼손으로 한쪽 벽면을 만지면서 길을 잃지 않게 천천히 걸었다. 복도로 나오자 좀비 떼가 울부짖듯 각양각색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흡사 상상만으로는 좀비에 감염된 세기말 세상이 연상되었다. 

 “어이쿠!”

 복도 모퉁이를 돌다가 첫 번째 계단에서 미끄러져 버렸다. 계단 모서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허리춤을 붙잡고 서서히 일어났다. 일어나는 동안 좀비처럼 연신 헉헉거렸다. 주위에 인간의 기척이 느껴졌으나 누구도 내가 넘어진 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만은 조금 놓였다.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도착했는데, 여기부터가 또 난관이다. 아마 눈에 보이는 교관들 눈에는 정말 가관일 것인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식판 엎는 소리, 뜨겁다고 난리치는 소리, 욕하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이 한 곡으로 어우러져 들려왔다. 나도 그 소리 모음에 동참하기로 했다. 

 어찌어찌 배식을 받고 조심스럽게 식탁을 찾아 앉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수저와 젓가락을 깜빡한 게 아닌가?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기로 했다. 먼저 스테인리스 그릇을 꼭 쥐고 국물 맛을 보았다. 된장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중간중간 썰린 애호박과 두부 등 이물질이 입으로 들어왔다. 보이지 않으니 영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왼손으로는 밥을 집어서 연신 입에다 넣었다. 짠 국물과 밥이 어우러지면서 나름 먹을만했다. 밥 위로는 반찬이 있었는데 두 개는 차갑고 하나는 뜨뜻했다. 대충 냄새와 맛으로 유추해볼 때 소세지 볶음, 숙주나물무침과 계란찜이었다. 보이지 않다 보니 반은 먹고 반은 흘렸다. 입을 닦고 싶었지만 휴지를 가지러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한참 손을 움직여 밥과 반찬을 집어넣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앞통수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여성이다. 

 “천천히 드세요. 체하시겠어요.”

 “네? 뭐…. 젓가락질하기가 여간 어렵네요. 하하. 그래도 최대한 흘리지 않고 다 먹은 것 같네요. 그쪽도 천천히 드세요.”

 여성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저는 오전에 요 앞 빵집에서 샌드위치 하나 먹고 왔네요. 호호. 첫날이라 적응하시기 힘들 텐데 힘내세요. 가볼게요.”

 “네. 뭐 별거 없는데요. 하하.”

 순간 여성의 목소리가 늘 듣던 강사의 목소리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면이 조금 화끈거렸다. 분명 강사의 목소리였다. 이 고글을 끼고 아침일찍부터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먹고 올 용기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녀는 내 말도 안 되는 몰골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쌍했을까? 재밌어 보였겠지? 나 같아도 이 장님들 속에서 혼자서 두 눈 부릅뜨고 다닐 수 있다면 마치 인간들을 살피는 신과 같은 존재라는 착각이 들겠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조용히 일어났다. 식판을 들고 퇴식구를 찾을 용기 따위는 이미 없었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데 사회에서의 규칙 따위를 지킬 의무는 버리기로 했다. 

 식당을 빠져나온 나는 다시 더듬거렸고, 한참 뒤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밥만 먹었을 뿐인데 온몸이 기진맥진했다.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최대한 웅크리고 누워서 시간을 죽일 생각이다. 그래야 점심을 먹지 않고 저녁에 한 번 이 짓거리를 더 하면 되니까…. 가만히 누워있으니 별별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특히, 왜 이런 수모를 견디면서까지 죽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가난했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칠 정도는 아니었다. 취업은 번번이 미끄러졌거나 어그러졌지만, 몸은 건강했다. 몸 쓰는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는 방법도 있었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내게는 어머니가 있다….

 “하….”

 어둠 속에서 자라난 줄기에서 피어난 생각의 범위가 여기까지 번지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지갑과 물통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무심한 표정으로 길을 나섰다. 긴 여정이 예상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식당에 갈 때처럼 천천히 내려와 마침내 열지 말아야 할 것 같이 묵직한 철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향긋한 풀냄새와 고요한 정적 그리고 잔바람이 쏟아졌다. 자유의 느낌이랄까? 몸이 가벼웠다. 

 “거기 누구 없나요?”

 적막한 허공 속에 던진 무의미한 외침에 한 줄기 희망의 목소리가 답했다. 

 “교관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집에 가려는데 택시 좀 불러주실 수 있으실까요?”

 교관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당연한 듯한 말투로 물었다.

 “포기하시는 건가요?”

 “네…. 충동적이긴 하지만 다시 살아보려 합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며 말했다.

 “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저는 현대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일을 끝마칠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살았어요. 그리고 그런 자잘한 시간 소모는 제 에너지를 말살시켰고 늘 피곤하고 우울한 삶을 살게 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짙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오히려 생각의 꽃이 피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보이지 않는데 더 뚜렷하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고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에요. 농담이 아닙니다! 선생님, 돌아가셔서 멋진 인생을 설계하셔요.”

 “네! 반드시!”

 잠시 뒤 택시 한 대가 굉장한 엔진음과 함께 다가왔다. 교관은 고맙게도 택시가 올 때까지 계속 서서 기다려주었다. 

 “잘 가세요!”

 “네. 짐이 많아서 다 챙기지 못했는데, 고글이 벗겨지면 다시 들러서 가져가겠습니다.” 

 사실 무리하더라도 짐을 챙겨가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가서 어머니를 뵙고 싶었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와 한시라도 빨리 마주치지 않으면, 마음이 다시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택시 기사는 말이 없었는데, 숨소리나 여러 가지로 유추해볼 때 얼굴에 기쁜 빛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장거리 손님을 만났기 때문일 테다. 특이점은 날씨나 정확한 주소를 묻는 일 외에 충분히 궁금할 법한 고글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손님, 요청하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 네…. 지금이 몇 시죠?”

 “저녁 8시 조금 넘었습니다. 손님.” 

 “네. 여기 요금하고….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눈이 불편해서요. 정확한 주소지 문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택시 기사는 흔쾌히 수락하며 운적석에서 내렸다. 그는 조용히 왼쪽 어깨를 잡고 문까지 안내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띠링’ 소리와 함께 문이 경쾌하게 열렸다. 어머니가 일을 끝내고 들어오시려면 아직 1시간 남짓 남았으므로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방바닥에 이불을 펴고 잠시 누웠다.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에 뭐가 놓여있는지 훤히 예측이 가능한 공간에 놓이자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그것보다 이 말도 안 되는 모양새를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내려앉았다. 그렇게 나는 어둠 속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나도 모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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