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에요? 여기까지 따라오면 어떡하자는 겁니까? 경찰 부르기 전에 다 나가세요!”
찢어지는 외침에 눈이 번쩍 뜨였다.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사냥감에 쫒기는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거실의 소음에 집중했다. 목소리는 총 셋이었는데, 어머니와 처음 듣는 거북한 2명의 남성의 목소리였다. 남성중 더 거북한 목소리가 소리쳤다.
“그러니까! 제때 빚을 갚아야 이런 꼴이 없을 거 아니야? 우리는 뭐 한가한 줄 알어? 2천 만 원에 이자가 벌써 8천만 원이야! 1억 원 언제 갚을 건데?”
“빨리 갚을게요. 그러니 그냥 돌아가 주세요….”
이때,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비명이 들렸다.
“악!”
“미안한데 오늘은 이렇게 못 돌아가겠어. 그릇 하나 깬다고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생각을 좀 해봤지 뭐야. 하하.”
나는 당장 나가서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순간 지금 나가면 더 우스운 꼴이 될 것만 같았다. 일단 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거북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확 묻어버렸을 텐데…. 이쪽도 경쟁 사업이고 비즈니스란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해.”
“네? 제안이라니요?”
어머니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의 목소리로 물었다.
“응. 하하. 좋은 제안이야. 우리가 여기 오기 전에 보험 상담사와 얘기를 좀 나눴거든, 그랬더니 아주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지 뭐야. 바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놈 얘기야. 요즘 네 아들하고 연락은 하고 지내나? 어떤 상황에 있는지 그런 거 전혀 모를 테야? 그렇지? 하하. 내가 조사를 좀 했거든.”
“아들이요? 아들이 보험과는 무슨….”
“우리가 너희 아들 보험을 좀 들어줄고 해. 생명보험 아주 센 거로 말이야. 하하. 이게 뭐냐면 자살해도 돈이 나오는 그런 보험이야. 국내에 딱 한 개밖에 없는 건데, 보험료가 센 대신에 자살 타살, 당장 내일 죽든지 모레 죽든지 싹 다 보험 대상이 된다 이거야!”
어머니는 갑자기 싸늘해진 시체처럼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니까…. 내 아들 보험을 들게 한 후 네놈들이 내 아들을 자살로 위장시키든, 어쨌든 죽이겠다는 그런 말이지?”
거북한 목소리가 웃으며 답했다.
“하하. 무슨 소리야. 우리가 사람을 왜 죽여? 아무리 우리 하는 일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다고 해도 아직까지 사람을 직접 죽인 적은 없다고! 그것보다 자식하고 소통 좀 하고 지내지? 영 정보력이 달려서야…. 아무튼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오해하지 말고 아들 도장 가져와서 찍어! 아들 험한 꼴 당하는 거 보기 싫으면 아주머니가 열심히 더 뼈 부서지라 일해! 그래서 우리 돈 갚으면 되잖아? 아들 목숨 담보로 좀 가지고 있자고! 우리도 위험 직종인데 보험이 필요하지 않겠어?”
잠시 정적이 흐린 뒤, 더 거북한 목소리가 덜 거북한 목소리에게 말했다.
“뒤져! 도장 찾아와!”
잠깐의 실랑이 끝에 거북한 목소리들은 내 도장을 찾아왔고, 어머니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강제로 도장을 찍게 했다. 임무를 완수한 그들이 보험 신청서를 들고 사라지는 뒷모습에 어머니는 외쳤다.
“그 돈 내가 꼭 갚을 테니! 내 아들 털끝이라도 건드리기만 해봐! 다 죽을 줄 알아! 엉엉…. 알았어…?”
어머니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우셨다. 내 고글에도 습기가 가득했는데, 눈물이 고이고 마르고가 반복되면서 축축해졌다. 나는 어머니가 화장실에 있는 틈을 타서 부리나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최대한 흔적을 지워냈다. 그리고는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거북한 놈들은 내가 안락사 프로젝트에 지원했고, 자살을 위해 노력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사망 보험금을 얼마 설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1억 원은 넘는 금액은 분명했고, 그 돈이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모든 빚을 청산하고도 남는 돈을 쥘 수 있을 테다. 내가 테스트를 포기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들은 또 어머니를 괴롭힐 것이다. 나만 정신 차리면, 어머니가 산다….
빵빵- 거리는 경적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무서웠지만, 지금 죽을 순 없었다. 적어도 내일 아침에 사채업자들이 보험 신청을 완료하고 나서 죽어야 했다. 나는 좀비처럼 더듬거리면서 서울의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택시비 따위는 수중에 더는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창피함이나 두려움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머릿속에 어머니의 우는 모습만이 가득했다.
“엄마! 저 아저씨가 하고있는게 뭐예요? 게임기에요? 나도 사주면 안 돼?”
지하철 문에 서서 환승역에 도달할 것만 생각하며 서 있는 내게 한 꼬마가 다가왔다. 순간 내가 고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오만가지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가와 아이를 데리고 멀리 사라지며 말했다.
“엄마 말 안 듣고 매일 게임만 하다가는 저 아저씨처럼 된다!”
나는 뜨끔했다. 현대 사람들은 바쁘다. 그 사람이 현재 왜 이런 행동과 모습을 보이는지 따위를 살펴볼 시간이 없다. 그저 그 결괏값, 즉 겉모습 또는 현 상황만 보고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 그리고는 혹시나 들리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 또는 자극을 주기위해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거나 무시한다. 그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 할 거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래도 나는 진심으로 빌어보았다. 내게 다가온 아이가 제발 나처럼 실패한 인생 전철을 밟지 않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