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Oct 21. 2021

최악의 인생

그렇게 며칠이 흘러 어느새 2번 째 테스트 마지막 날이 왔다. 역시나 모두가 강당에 모여들었다. 강당에 자리 잡고 앉는 데에만해도 꽤 시간이 흘렀다. 다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로 엉키고 넘어지고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 또한 수 많은 부딪힘 속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앉았다. 보이지 않는 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기 어려운 고통이 분명했다. 죽기를 각오한 나 조차도 당장은 앞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했다. 잠시뒤 젊은 여성 강사의 목소리가 강당 구석구석 울려퍼졌다.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음... 시간을 보니 앞으로 1분 뒤부터 여러분의 고글이 벗겨질 겁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고글이 벗겨짐과 동시에 앞쪽 강단에서 여러분을 위해 한 분이 강연을 해주실 겁니다. 너무 어렵게 모셨습니다. 그럼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고글을 벗어주세요.”

 “휴... 살았어.”

 내 오른쪽 자리에 앉은 여성이 이 센터에서 어울리지 앉는 단어를 뱉어냈다. 곧이어 내 고글에서도 ‘삑’ 소리와 함께 고글이 느슨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글을 두 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떴다. 모든게 안갯속에 갖힌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아마 5분 이상은 잘 보이지 않으실 거에요. 움직이지 마시고 눈이 적응할 수 있게 기다려주세요.” 

 5분이 흐르고 어느정도 사람들의 윤곽이 정확하게 들어왔다. 그런데 한 가지 깜짝 놀란 것은 강당에 생각보다 빈 자리가 많다는 점이다. 처음에 1,000명이 꽉 차 앉아있던 곳이 지금은 반도 남지 않아 보였다.

 “자! 이제 보이시나요? 현재 기준 452명의 참가자 분들께 두 번째 테스트 결과 통과를 발표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테스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강연에 집중해주시고 강연이 끝난 후 최종 테스트 합격 인원을 추려보겠습니다. 왠만하면 다음 테스트 진행을 위해 짝수였으면 좋겠네요.”

 강단 위에는 아직 고글을 벗지 않은 남성이 서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집중하는 것을 느꼈는지 남자가 고글을 벗었다.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남양주 사는 고 찬수입니다. 아마 452명의 참가자가 아니라 곧 451명이 될 겁니다. 저는 사실 여러분과 지금까지 같이 지냈습니다만, 이번 프로젝트 지원자는 아닙니다. 제가 썬글라스를 착용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는 모습을 보신 분들도 계실겁니다. 맞습니다. 저는 앞을 볼 수 없습니다. 히히.”

 강당이 웅웅 울렸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꿈뻑거렸다. 동시에 일주일만 체험해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짓눌렸는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건가? 라는 생각에 연민도 느껴졌다. 그런데 그 연민을 부셔버리는 게 있었으니 그의 웃음이다. 그는 말을 잇는 내내 행복하게 웃어댔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머리까지 다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강당의 몇몇은 우리가 장님행사를 할 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서 짖궂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꾸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행복한 미소가 함께했다. 

 “여러분 어떠셨나요? 일주일간 힘드셨지요? 죽음만큼 고독하고 어둡지는 않으셨을까요? 저는 10년 전에 사고로 눈을 다쳐서 지금까지 앞을 보지 못합니다. 모두가 저를 동정했습니다. 추운 겨울 썬글라스를 끼고 지하철을 타면 꼬마애들이 와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려대곤 했습니다. 밥 한끼 혼자 먹는 데도 오래걸렸죠. 사실 경험해보셨겠지만 먹는거 반 흘리는거 반입니다. 허허. 혼자서 먼 곳도 갈 수 없어요. 늘 사람이 도와줘야 합니다. 가끔은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지갑을 뺏기거나 얻어 맞기도 합니다. 히히. 일상 생활에서도 몸 성할 날이 없어요. 부딪히고 데이고 긇히고 난리도 아닙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도 6개월 은 집에만 콕 박혀서 세상과 단절한 채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하곤 했습니다. 그때 남긴 끔찍한 상처 들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요.”

 그가 오른 손목을 들자, 선명하고 굵게 패인 상처가 3곳이 보였다. 6개월 간 어둠속에서 얼마나 끔찍했을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6개월 뒤에 용기내어 세상에 나오니까 더 힘든 겁니다. 세상은 제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효율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요! 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비효율은 곧 퇴출입니다. 저는 사회에서 퇴출되었고, 온갖 차별을 받았어요. 대놓고 얻어맞기도 했지만, 더 아픈 것은 수군거리는 소리가 예민한 제 귀에는 전부 다 들린다는 점이었어요. 그들이 눈이 멀면 귀가 트인다는 것을 알리는 없잖아요? 히히.” 

 그는 조근조근 명량한 어투로 강연을 이어갔고,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강연을 들었다. 몇몇은 흐느끼고 있었고, 몇 명은 강연장을 나가 퇴소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동요되지 않았는데, 죽음에 대한 확실한 이유와 목표가 생겼기 때문일테다. 어쨌든 강연자의 고통이 대단히 크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그의 고통만큼 내 고통도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순간 가슴이 울컥하면서 짜증이 확 밀려왔다. 여기 있는 모두가 다 힘들다. 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법이고, 왠지 주최측에서 미리 어둠을 체험하게 한 후 어둠을 10년 간 참아온 자가 있으니 대단하지 않느냐? 너희들은 이 사람을 봐서라도 삶을 포기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각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뻔뻔함에 반기를 들고 싶어져 강사의 말을 끊고 외쳤다.

 “강사님. 10년 간 고생한건 알겠습니다. 일 주일간 눈이 안보이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그러나 그것보다 제 마음의 병이 더 크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모두 다 힘듭니다. 더 이상 이런 신파놀음에 놀아나지 맙시다! 죽으러 왔는데 다같이 4단계까지 통과하고 죽는 겁니다. 편하게! 눈이 안보여서 힘들다고요? 더 잘 듣고, 그냥 살아가면 됩니다. 싫으면? 그냥 죽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강당에는 순간 찬 물이 들이친 듯 조용했다. 여성 강사가 앞으로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눈이 보이지 않는 강사와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종이를 들고 있었고 강사는 그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어내고 있었다. 잠시후 눈이 보이지 않는 강사가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질문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강연을 하다보면 중간 중간 질문도 받고, 답변 드리고 해야 하는데 제가 많이 미숙합니다. 히히. 한 가지 비밀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작년부터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병은 대단한건 아니고, 서서히 귀가 먹어버리는 병이라고 하네요. 히히. 지금은 아예 들리지 않으니 여러분의 질문을 받지 못하는 점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히히.”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얼굴 가득 붉은 물이 차올랐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들리지 않는다? 그런 말도 안되는 절망감은 생각해본적도 경험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렇게 고통스러운 몸을 지낸 채로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는 진심으로 사는 게 행복해보였다. 그가 다시 마이크를 쥐었다.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말씀 올리면서 강연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신 질문처럼 여기 계신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 사정 하나하나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딱합니다. 충분히 삶을 포기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저를 떠올려주시고 한 번만 내가 못가진 것에 집중하지 말고 가진것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실 때 최악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보다 뛰어난 촉각과 후각으로 매일 새로운 자극을 맛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제 아내가 향긋한 커피를 내려주면, 그 냄새에 잠에서 깹니다. 고요한 방에서 커피냄새로 잠을 깨는 그 기분을 여러분은 상상이 가시는지요?”

 그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코를 벌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지요. 그리고 저주 받은 제 몸으로 얻어낸 깨달음을 이렇게 여러분께 전파하고 한 분이라도 자신의 인생에 감사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겁니다. 이것이 제가 태어나 살아가는 신의 사명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남성은 박수 갈채와 함께 한 여성의 도움을 받으며 강당에서 사라져갔다. 여성은 강의 중 나왔던 그의 아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녀의 미소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둘의 온기가 강연장의 서늘함을 충분히 녹여내고도 남았다. 

 갖지 못한 것에 슬퍼하지 말고, 가진것에 집중하고 감사하라는 그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떠한 점화점에 불이 붙으면서 생을 포기하는 게다. 너무나도 건강한 몸을 가진 내가 취업하지 못하여서, 집에 빚이 조금 있다고... 생을 포기하는 게 과연 맞는가? 시나브로 의심이 피어올랐다. 다시 시작해볼까? 내가 그래도 괜찮을까? 그처럼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일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