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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두번째 테스트

 ”첫번째 테스트를 통과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고대하시던 두 번째 테스트가 시작되겠습니다.“

 강사의 작은 체구에서 활달한 에너지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솟구친 에너지는 삽시간에 강당 전체를 덮어버렸다. 하지만 짙은 안개처럼 깔린 어둠의 기운도 만만치 않았다. 두 기운이 여기저기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강사는 마이크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각설하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테스트는 일명 ‘눈 가리고 아웅하기’입니다.

 “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눈을 가리고 아웅한다니.’ 도저히 그 내용을 가늠할 수 없었다. 강당이 술렁였고, 강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러분, 제가 알기로는 여기에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 눈이 성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몸이 1,000냥 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말이 있듯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기능입니다. 그래서 그 가장 중요한 기능이 상실된 상태로 1주일간 살아보는 테스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말 그대로 장님이 아니지만 장님인 척을 해보자는 말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파란 셔츠에 핑크 넥타이를 한, 패션에 전혀 무관심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강당에서도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강사가 서 있는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강당 오른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대 같은 것을 착용한다고 해도 숙소에 돌아가면 눈을 뜰 수 있지 않습니까?” 

 중년 남성은 질문한 후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답변 따위에는 관심 없는 모양새다. 사실 그렇다. 눈이 안 보이는 척 일주일간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 답답함을 못 이기고 안대를 풀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가져오세요.”

 교관들이 일사불란하게 강당 밖으로 나가더니 큰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왔고, 강사는 그 상자에서 VR 입체 안경처럼 두툼하게 생긴 회색빛의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고글입니다. 깜깜한 어둠으로 세팅되어 있어요. 비밀번호를 넣어야 고글을 작동시킬 수 있으며, 지금부터 1주일 후에 벗을 수 있게 시간 세팅이 될 예정입니다. 고글은 강화 플라스틱 재질로, 웬만한 충격으로는 고글을 깨부술 수 없으며, 아무리 힘을 줘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자! 그럼, 하나씩 나눠드릴 테니, 착용해주세요. 착용이 끝나시면 저희 교관들이 비밀번호를 입력해드립니다.”

 호명되는 사람들이 천천히 줄을 서서 고글을 받아들었다.

 “안 장수!”

 “네.”

 호명을 신호로 강당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 앞에는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성이 서 있었는데, 어딘가 불편한 자세였다. 그는 손을 더듬으며 강당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고글을 받자마자 선글라스를 벗어서 오른편 주머니에 욱여넣더니 익숙한 듯 고글을 바로 착용했다. 나는 한참을 만지작거리며, 혹시나 어둠을 밀어내는 기능이 없을까?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글을 썼다. 순식간에 불빛이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자리잡았다. 나는 덜컥 무서워져 바로 벗어 던졌다.

 “헉..헉...”

 뒤쪽에 앉아있던 뚱뚱한 청년이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을 들이밀더니 헉헉거렸다. 몇 명은 테스트를 포기하고 강당을 나가버렸다.

 “5분 드리겠습니다. 5분 안에 착용하지 않으시면, 비밀번호를 입력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즉, 시간을 지연시키는 분은 자동 탈락입니다.”

 강사의 어조가 바뀌었다. 지원자들은 마치 민물에서 바닷물로 향하다 급변하는 수온 차이에 놀라버린 물고기처럼 저마다의 몸짓으로 파닥거렸다. 하지만 이내, 모두가 고글을 쓴 듯 조용해졌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차라리 감아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잠시 뒤 강사의 서늘한 목소리만이 두 귀로 흘러들었다.

 “음... 몇 분은 나가버리셨고, 대부분 고글을 바르게 착용하신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어두우니까 무섭지는 않으세요? 여러분, 죽음을 마냥 편안한 탈출구로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죽음은 영원한 어둠과도 같을 겁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절대 어둠 말입니다. 이런 인공적인 어둠과는 차원이 다르답니다. 아무튼 잘 결정하세요.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퇴소를 하더라도 일주일간 고글을 절대 벗을 수 없습니다.” 

 다시 강당이 술렁거렸다. 퇴소해도 일주일간 고글을 벗을 수 없다는 건 여간 고민되는 일이다.

 “아! 한 가지 더 공지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부터 외출은 자유입니다. 대신 일주일 뒤에 이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시던지 이 자리에만 돌아오신다면, 이번 테스트는 통과입니다. 매 식사 시간에 종이 울릴 예정이오니 식당에 잘 찾아오시면 식사할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집에 다녀오셔도 무방합니다. 그럼 행운? 을 빕니다.”

 또각또각 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열댓 명 정도가 고글을 벗어던지고 방향을 아는듯한 정확한 발소리를 내며 강당을 빠져나갔다. 나 또한 고민이 많았는데, 일 주일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여간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테스트에도 바스락거리는 연한 마음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알약을 쟁취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알약으로 절대 어둠에 정녕 맞설 수 있을까? 하는 나약함도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띠띠띠띠띠.”

 고글 앞쪽에서 약한 압력이 느껴졌다.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졌고 이내 다시 바로 섰다. 고민하는 사이에 교관이 비밀번호를 입력해 버린 것이다. 

 “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격한 소리가 들렸다.

 “벗기라고! 퇴소하겠다니까!”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아까 들으셨잖아요! 일주일 뒤에 풀립니다. 그전까지는 못 벗어요.” 

 한 지원자가 고글을 벗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교관은 단호하게 불가하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늘어놓았다. 나는 이렇게 된 마당에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환하게 보일 것이니 걱정하지 말자고 속으로 위로했다. 

 잠시 뒤에 교관들 모두가 철수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다. 모두가 기이한 신음을 내며 강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악!”

 강당 의자에 왼쪽 정강이가 부딪혔다. 고통 주위로 축축한 액체가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기어서 나가기로 했다. 

 “뭐야! 조심해요!”

 “미안합니다…. 안 보여서.”

 누군가가 내 오른편 새끼손가락을 밟은 것이다. 나는 한참을 새끼손가락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10여 분이 지났으려나 강당이 꽤 조용해졌고, 나는 이때다 싶어 네발로 강당을 빠져나왔다. 다음 미션은 내 침실을 찾는 일이다. 나는 계속해서 기어서 계단을 올랐고 그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과 부딪혔다. 군데군데 핏물 마를 시간이 없었다. 내가 사는 층 복도에서도 난리였다. 문을 두드려서 사람이 있으면 넘어가고 없으면 그 방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물건들을 만졌다. 의도치 않게 타인의 방을 어질러 버리기 일쑤였다. 

 “에이, 누가 이딴 테스트를 만들어서...”

 나는 혼잣말로 분노를 삭이며 부지런히 더듬거렸다. 

 “쿵쿵!”

 “...”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역시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여기다!”

 거실에서 익숙한 게 잡혔는데, 거실 밖에 놓여있던 캐리어이다. 중간에 별 문양이 양각으로 박혀 있어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자네도 왔는가?” 

 룸메이트 노인이다. 처음으로 노인의 목소리가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처럼 감미롭고 반갑게 들렸다. 

 “하~ 어르신, 겨우 찾았습니다.”

 “허허. 늘그막에 이런 경험도 하고 참, 여러모로 대단하구먼! 허허.”

 노인은 이 상황이 대수롭지 않은 듯 사람 좋게 웃어댔다. 나는 영 그 웃음소리가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내 안도감이 몰려왔고, 곧이어 피곤함에 지배당했다. 빨리 신발을 벗고 쉬고 싶었다.

 “충고 하나만 하자면, 신발을 벗지 않는 게 좋을걸세. 내 미안하게 되었네. 주방을 더듬거리다가 컵 하나를 깨버렸지 뭐야. 바닥이 온통 사기 조각투성이네. 조심하게나.”

 “아... 괜찮습니다. 어르신은 괜찮으신지요?”

 “허허. 나는 괜찮네. 자 그럼 좀 쉬게나. 이거 잘 때도 영 불편하게 생겼네.”

 나는 더듬거리며 침대를 찾았고 침대 옆으로 슬리퍼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씻지도 않은 몸뚱어리를 이불 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형광등을 끄지 않은 게 생각나서 습관적으로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누워버렸다. 그렇다…. 지금 나는 몇 시인지, 형광등이 켜져 있는지 꺼져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어차피 내 공간은 전부 어둠이었다. 앞으로 남은 6일 동안의 걱정보다 낯선 환경에서 빼앗겨버린 에너지 소모가 큰 탓에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한 감각이 사라지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고 했던가? 저 멀리서 노인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렇게 어둠의 심연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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