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 TV프로그램에서 혹시 수타면 달인을 보신 적 있으세요? 반죽의 양끝을 잡고 돌리면 반죽이 길어집니다. 기다란 반죽을 반으로 접고돌리면짧아졌던 반죽이금세 쭉쭉늘어나요. 그러면 달인은 반죽을 한번 더접고강한 힘으로돌리지요.반죽이조리대에 퍽퍽 닿을 때마다 면발의형태가서서히 나타나는데요.이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달인표 수타면이 완성됩니다.
큼직한 반죽 덩어리를 0.3cm 너비의 면발로 만들기 위해달인은 반죽을 접고 돌리기를 아마수없이 반복했을 거예요. 짜장면 1인분에는 면이 128가닥 정도 들어간다고 하는데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달인은 반죽을 몇 번접었을까요? 30번? 50번? 어쩌면 그 이상? 예상과 달리 고작 7번입니다. 여기서 한번 더접으면기스면처럼 아주 가느다란 면발이 된다고 해요. 짜장면에는 7번이 최적화된 횟수예요. 겨우 7번만으로 가능하냐고요? 네 수학을 알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반죽을 7번 접고 돌리면 수타면 완성
수타면이 수학과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반죽을 한번 접는다 해도 반죽의 용량은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한 줄이었던 반죽은 두줄이 되고 한번 더 접으면 네 줄이 됩니다. 반죽을접을 때마다 두 배로 불어나지요.
1×2=2
2×2=4
4×2=8
8×2=16
16×2=32
32×2=64
64×2=128
7번만 겹쳐도 면은 128가닥이 됩니다. 순식간에 늘어났어요. 2배로 늘어난다는건매번 2를 곱하는 것과 같은데요. 이를 '거듭제곱'이라고 합니다. 같은 수를 거듭 곱했다는 의미예요.
2를 10번 곱한다고 해볼게요. 이를 2×10 이라고 쓰면 안 돼요. 2×10 은 2를 10번 더했다는 뜻이니까요.
2×10=2+2+2+2+2+2+2+2+2+2
2를 10번 곱하는 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2×2×2×2×2×2×2×2×2×2 인데요. 너무 길죠. 간결함을 사랑하는 수학자가 거듭제곱을 나타내는 새로운 표기법을 고안해 냈어요. 2를 10번 곱했으니까 숫자 2 오른쪽 위에 10이라고 작게 써주는 거예요. 2^10이라고 말이죠. 곱하는 수 2는 '밑', 곱한 횟수를 나타내는 10은 '지수'라고 하는데요. 보기에도 예쁘고 쓰기에도 편합니다.
수타면의 비밀은 거듭제곱
거듭제곱을 배웠으니까 바로 써먹읍시다.2배씩 늘어나는 면발의 수를 거듭제곱으로 나타내볼게요.
2⁰=1
2¹=2
2²=2×2=4
2³=2×2×2=8
2⁴=2×2×2×2=16
2⁵=2×2×2×2×2=32
2⁶=2×2×2×2×2×2=64
2⁷=2×2×2×2×2×2×2=128
2를 7번 곱하면, 즉 2의 7제곱은 128이에요. 달인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7번만 접으면 된다는 걸 오랜 연마로 깨달았을 겁니다. 달인의 기술과 수학이 만나면수타면이 만들어져요.
우리나라에 수타면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패스트리 빵이 있습니다. 겹겹이 부드러운 패스트리 빵의 비법 역시 거듭제곱이에요.
패스트리빵 반죽의 비법 역시 거듭제곱
패스트리 빵은 약 400년 전 클로드 로랭이라는 제빵사가 맨 처음 만들었는데요. 로랭은 넓게 편 반죽에 버터를 바르고반으로 접어봤어요. 반죽과반죽 사이에 버터가자연스럽게 들어간 걸 발견했죠. 그반죽을 다시 밀대로 넓게 펴서버터를바르고한번 더 접었습니다. 이번엔 4층 반죽 사이사이에 골고루 버터가 들어간 거예요. 감을 잡은 로랭은 밀고 바르고 접고를 여러 번 반복했어요. 그랬더니 버터와 반죽이 교대로 층을 이룬 반죽이 탄생했습니다. 무려 1000층이 넘었죠. 로랭은 몇 번 접었을까요? 딱 10번 접었습니다. 로랭은 그저 10번 밀고 바르고 접었을 뿐인데 반죽은 순식간에 1024층이 됐어요. 안 믿기신다고요?
2를 10번 곱하면,
2^10=2×2×2×2×2×2×2×2×2×2=1024
계산기로 확인해 보세요. 정말1024입니다. 우리가1000겹 이상의 부드러움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다 수학 덕분이에요.
직접 실험해 봅시다. 우리는 밀가루 반죽 대신 종이를 접을 거예요. 여기 신문지 한장이 있습니다.
신문지 한 장을 몇 번 접을 수 있을까?
펼치니까 제법 큰데요. 이걸 계속 반으로 접는다면 우리는 몇 번까지 접을 수 있을까요? 10번? 20번? 30번? 혹은 그 이상?지금 여러분 곁에 신문지나 A4용지가 있다면 스크롤을 잠시 멈추고저랑 같이 접어보십시다.
한 번 접고 두 번 접고 세 번 접고 계속 그렇게 접으시면 돼요. 어렵지 않죠? 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신문지의 면적은 자꾸 좁아지는데 두께는 점점 두꺼워지니 접는 거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7번에서 멈춰야 했어요. 천하장사가 와도 8번은 절대 못 접을걸요.
7번 접은 신문지는 몇 겹일까요?2×2×2×2×2×2×2=2⁷은 128이니까 무려 128겹이에요. 신문지 두께를 0.1mm라고 하면, 7번 접은 두께는 0.1×128=12.8mm 약 1.3cm입니다.
종이 한 장을 12번 접어서 세계 신기록
우린 7번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종이를 12번 접어서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 브리트니 갤리번이 바로 그 주인공이에요. 브리트니는 한 방향으로만 계속해서 접을 수 있도록 가로가 긴 직사각형 종이를 떠올렸어요. 그 길이는 무려 1.2km에 달했죠. 2002년 1월, 브리트니는 두 친구의 도움을 받아 8시간에 걸쳐 12번 접는데 성공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보다 딱 한 번만 더 접어도바로 세계신기록이에요.
내친김에 상상력을 조금만 더 발휘해 봅시다.신문지를 42번 접을 수 있다면 기네스북은 물론이고 달까지도 갈 수 있어요. 뜬금없는 소리 같지요?그런데 수학적으로 충분히가능해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8만 4천 km입니다. 2를 42번 곱하면 4,398,046,511,104인데요. 이 수만큼 신문지가 겹쳐진다면 그 두께는 얼마나 될까요? 신문지 한 장의 두께를 0.1mm라고 하면 42번 접은 신문지의 두께는 무려 43만 9천 km에 달해요. 여기서 한번 더 접어서 43번 접는다면 그 두께는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하는 거리를 훌쩍 넘어버립니다. 거듭제곱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군요.
거듭제곱을 몰라서 나라를 말아먹을 뻔한 사건도 있었습니다.고대 인도의 어느 왕이 전쟁 마니아로 악명 높았는데요. 걸핏하면 전쟁을 벌이는 탓에 온 백성은 늘 불안에 떨어야 했지요. 그래서 승려 제타는 왕을 위해 전쟁과 비슷한 '체스 게임'을 발명했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서양장기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 체스예요. 상대편의 왕을 잡아야만 이기는 게임이죠. 병력보다는 전략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이 전쟁 게임에 왕이 푹 빠져들었어요. 그 덕분에 진짜 전쟁은 그만두게 되었죠. 왕은 이토록 흥미진진한 게임을 만든 세타에게 큰 상을 내리기로 합니다.
"원하는 것을말해보아라."
"체스판 한 칸에 쌀 1톨, 그다음 칸에는 쌀 2톨, 그다음 칸에는 쌀 4톨. 이렇게 다음 칸에는 앞의 칸보다 쌀알을 2배씩 얹어서 주십시오."
왕은 세타의 소원이 소박하다고 칭찬하며 흔쾌히 약속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 신하가 어명을 거두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세타의 소원대로 쌀을 주려면 왕국의 모든 쌀을 다 주어도 모자란다면서요. 왜 그럴까요?
체스 판에는 모두 64개의 칸이 있습니다. 다음 칸에는 앞칸의 2배 되는 쌀을 줘야 하니까 각각의 칸에 놓이는 쌀은 2의 거듭제곱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첫 번째 칸 : 쌀 1톨(2⁰)
두 번째 칸 : 쌀 2톨 (2¹)
세 번째 칸 : 쌀 4톨 (2²)
네 번째 칸 : 쌀 8톨 (2³)
다섯 번째 칸 : 쌀 16톨 (2⁴)
......
64번째 칸 : 쌀 9223372036854775808톨(2^63)
인데요.
2의 63제곱 톨의 쌀이라니 전혀 실감 나지 않는 수치인데요. 이는 에베레스트 산의 무게쯤 됩니다.
1+2¹+2²+2³+2⁴+.......+2^63을 다 더하면 얼마나 될까요? 18,446,744,073,709,551,615로 약 1845경이 됩니다. 무게로 따지면 쌀 4000억 톤이 넘어요.전 세계의 쌀을 다 합친다 해도턱없이모자라는양이죠.
시작이 작다고 무시하다간 거듭제곱한테큰코다칩니다.거듭제곱의 폭발력은 어마어마하거든요. 오죽하면 아인슈타인이 2배씩 늘어나는 복식 증가를 '세상의 8번째 불가사의'라고 했겠습니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