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의 닉네임 '예그림'

예그림의 단어 사전

by 예그림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저만의 소소하고 개인적인 즐거움 중에 하나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과,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에 가장 걸맞은 단어를 적확하게 찾아냈을 때의 기쁨입니다. 결국 '나만의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 제게는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주는 일 중에 하나이지요.

항상 꿈꿔오기만 했지만, 그것들을 차근차근 모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천천히 저만의 단어들을 수집하고 정리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창하게 '단어 사전'이라는 카테고리 제목도 붙이고 꾸준히 써나가 보려 합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머리말을 꼼꼼히 읽어보는 편입니다. 전반적인 책의 표현 의도나, 작가의 생각, 문체나 느낌 등이 머리말에 담겨 있어서 머리말부터 전율이 오고 꽂히는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아직까지 한 번도 없지요. 그렇기에 저만의 단어 사전을 시리즈처럼 써보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처음에 시작하는 말을 고르기 위해 일주일 넘게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제가 저를 정의하는 이름. 타인이 나를 만날 때 처음으로 만나게 될 이름인 제 닉네임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거쳐온 여러 닉네임 중에 현재의 닉네임이 저를 제일 잘 표현하고 상징하고 있거든요. 친근하고 의미 있으면서도, 희소성이 있어서 겹치지도 않는 제 소중한 닉네임. 그게 바로 제 첫 번째 단어여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주로 쓰던 닉네임은 그냥 제 진짜 이름을 변형한 것이거나, 어디선가 본 예쁜 게임 캐릭터 이름이었습니다. 개성을 드러낸다기보다는 그냥 지어야 하니까 짓거나, 남들을 따라가는 느낌이 강했지요.


그러다가 그나마 제 개성과 성향을 드러낼 수 있어서 한동안 좋아했던 닉네임은 '나무'였습니다. 나무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계절을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자라나는 것. 단단하면서도 푸른 나무. 그런데 '나무'라는 닉네임은 너무 흔했고, 어디에서든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사용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새 닉네임의 근원은 제가 받고 있던 상담 장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도 꾸준히 5년 이상 만나고 있는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나를 깨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 그 장면. 그 장면이 지금까지 써오는 제 닉네임이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집에서, 평범한 부모님 밑에 평범하게 공부하며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하다'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그때는 몰랐기에,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제 삶에 대한 불만도 많았지요..


그런데 정말로 부모님에게서 독립하고 세상에 나서자, 제 삶은 하나도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평범하게 살아온 제게 세상은 자꾸 평범하지 않다고 했고, 저도, 우리 집도, 제가 사는 세상도 평범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상담 선생님께서 저는 저만의 '예쁜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셨는데, 그 표현이 확 와닿았습니다. 그 표현은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 평범하고 화목하고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면 현실적이지 않고 이상화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이 제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고정되어 있는 '예쁜 그림'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곳임을 깨달았을 때.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며,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그 '예쁜 그림'이 깨지면서 '예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 제가, 이상화된 '예쁜 그림'을 벗어나며 찾은 첫 단어. 그러면서도 세상을 평온하고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마음을 유지하고 '예쁜 그림'을 바라보듯이 살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있는 말. 예쁨이기도 하고, 예(禮)이기도 하며, 그림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한 말.




그렇게 '예그림'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이제는 저만의 닉네임이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찾고 만들고 정의한 '예그림'이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저만의 시각과 해석이 담긴 단어 사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결국 저만의 단어 사전이므로 이 과정 자체가 제 자기 치유를 위한 것이긴 합니다만. 저를 이해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온전히 개인적으로만 남기기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따뜻함을 전할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해 봅니다.




사전의 장점 중 하나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 아닐까요? 새로운 단어들은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계속 글을 이어나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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