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날, 독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독서실로 향했다.
독서실 실장님이 마치 밖에 나와 계셨다.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아이가 아까부터 계속 울고 있어서요.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아 급히 연락드렸어요’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는 나를 보지도 않고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속이 매우 타 들어갔다.
몇 개월째 나와 말을 하지 않고 지내던 아이가 도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무너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나는 문 앞에서 애타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엄마랑 이야기하기 싫겠지만 네가 말해줘야 도와줄 수 있어. 그동안 엄마가 했던 말들, 행동들 미안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 제발 이야기 좀 해줘’
나는 3-4시간 문 밖에서 기다렸다.
안에서는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결국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아직 엄마랑 말하고 싶지 않다. 왜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오냐’고 했다.
나는 차분하게 다시 사과했다. 이제는 너의 말에 귀 기울이겠다고. 상처 주는 말. 하지 않겠다고.
아이는 처음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조금씩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빛 속엔 여전히 조심스러운 의심이 깃들어 있었지만 나는 이 작은 틈을 놓칠 수 없었다.
‘아들. 엄마랑 이야기해 보자. 아까는 왜 그렇게 많이 울었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외할머니 댁에 다녀왔는데, 예전보다 너무 늙어지신 것 같았어.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그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
며칠 전 아이가 혼자 외할머니 댁에 다녀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외할머니가 핸드폰을 닦아주다 고장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이는 화를 내기는커녕, 그 모습을 보며 할머니가 많이 늙으셨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아이의 울음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깨달았다.
아이는 어릴 적 외할머니 속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는 아이가 가장 의지했던 존재였다.
고 3이라는 버거운 시기, 엄마와의 갈등, 그 위에 외할머니의 연로한 모습까지 겹쳐 아이는 결국 감정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는 그날 이후로 다시 나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온라인 카페에 공유했다. 이번에도 수많은 응원의 댓글이 달렸다.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고3 아들의 마음 헤아릴 순 없지만 아들 키우는 엄마라 함께 마음이 아프네요. 아들이 글쓴이님의 마음을 아주 모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늘****)
‘감정이 섬세한 아이인가 봐요. 잘 다독이면서 이 시간 잘 지나가시길 바라요. 저희 애도 감정이 섬세해서 궁금했어요. 좋은 소식 또 들려주세요’(딸**)
‘할머니 보고 눈물이 났다니 맘속은 너무 여리고 착한 아들이네요. 착한 아들은 너무 다그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엄마 말고도 학교에서 학원에서 알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로.. 집에 오면 편하고 엄마한테 속마음 털어놓을 수 있게 잘 다독거려 주세요. 흔들릴 때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요’(지**)
‘쓴이님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아이들 특히 예민한 아이들은 엄마말에 엄청 상처받더라고요. 아이가 말을 할 때는 상처가 곪을 대로 곪은 후고요, 그래서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저희 아이도 그랬거든요. 저도 엄청 성과주의에 그냥 잔소리 생각 없이 하고 그랬는데 아이가 그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엄마가 모두 다 너 싫어한다고 해서 다들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어 이러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 엄마의 말 한마디 정말 중요합니다. 제발 부디 우리 아이들에게 힘나는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말은 돈도 안 들고 나쁜 말 한다고 아이는 안 달라져요. 착한 말만 아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착하고 따뜻하고 힘주는 말... 꼭 부탁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합니다’(h***)
그 댓글 하나하나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날 밤. 아이 방 불이 꺼지는 걸 조용히 지켜보며 나는 오랜만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오래 아프게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정하게 기다리는 일, 그리고 그 기다림 안에 진심을 담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문을 열라는 말 대신 문 너머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작게, 하지만 분명히 다짐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아이는 왜 이렇게 외할머니를 특별하게 생각할까.
그리고 나는 왜 그런 아이의 말에 묘하게 불편함을 느낄까.
아들의 눈물 너머로 떠오른 또 하나의 그림자. 내가 외면해 왔던 ‘나의 엄마’와의 관계가 이 모든 이야기의 또 다린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