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가명) 삼형제는 십여년 전 소수민족간의 무력 투쟁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 한 손에는 둘째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막내동생을 들쳐업고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멀리, 더 멀리 도망치다 보니 국경을 넘어 태국까지 오게 되었다. 수 년이 지난 후 아버지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다. 아버지 역시 터전을 잃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신세인지라, 서로 간간히 안부만 묻고 아이들은 계속 보육원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제는 훌쩍 자라 제법 청년 태가 나는 큰형 락은 지난 해 찰흙으로 자화상 빚기를 할 때 나무를 빚었다.
"동생들에겐 저뿐이잖아요. 동생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고 싶어요."
아이는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일찍 보육원에서 주니어 스탭으로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셋이 지낼 수 있는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이들은 무국적 상태로 이곳에서 작은 집이라도 지으려면 태국인의 명의를 빌려야 한다.
최근 미얀마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보며 우리도 촉각을 세웠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큰 충돌이나 제압은 큰 도시 위주로 일어나고 있어 아이들의 친지들이 주로 거주하는 외곽 지역인 국경 쪽은 조용했다. 슬프게도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두 주 전에 락 삼형제의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는 아빠 없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잘 살거라. 가족 당 한 명씩 매일 시위에 참여해야 한다. 아빠는 혼자이니 매일 나가야 하는데, 매일 총격을 피해야 하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연락이 끊기면 이제 아빠 없다고 생각하고, 너희는 여기 다시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말고 태국에서 잘 터 닦고 살거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가정 당 1명이 무조건 시위에 참여해야 하고, 불참하는 가정은 집단 린치를 당하는 상황인 것이다. 군부는 매일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므로 시위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건다는 의미인데, 여성의 경우 때맞추어 도망치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아 가족 내 남성들이 돌아가며 시위에 나가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두 세력 사이에서 힘 없는 시민들은 매일 총알받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락 아버지에게 연락이 온 지 수 주 후, 미얀마 군부는 태국 국경지대 쪽에 공문을 보냈다. 북부 국경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인 샨족 반란군을 대상으로 전쟁을 할 예정이니 국경 강화를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국경 주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 물어보니 군인들이 처음 읍내로 들어와서 경계태세를 준비하던 날 큰 폭발음이 세 차례나 국경 너머서 들려왔다고 했다. 십여년 전 락 삼형제가 겪었던 어두운 시간들의 망령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
이번 주에는 미얀마에서 소수민족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신 현지 목사님께 급히 전보가 왔다. 전쟁 고아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물자 확보도 어려우니 아직 뚫려 있는 육로 편에 긴급 구호물자를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피난민 촌에 한데 모여진 봇짐 더미 옆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사진도 함께 도착했다.
물론 양곤 같은 대도시에서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 산속에서 척박하게 살고 있는 이들은 중앙군에게 강제 징집되어 같은 소수민족에게 총구를 겨누어야 하기도, 반군으로 영입되어 아직 어린 나이에 산기슭을 넘나들며 게릴라 전투를 해야 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영문도 모른 채 소리 없이 스러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 채 조용히, 참 조용히...
코로나로 나 하나 살기도 어려워진 만큼, 미얀마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그만큼 빠르게 식어 갈까 두렵다. 가장 약하고 목소리 없는 이들의 신음에 모두가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목소리가 되어 줄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십 년 후에 또 다시 락 삼형제와 같은 아이들이 산과 물을 넘어와 보육시설에서 자라지 않아도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