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김봉길

일주일 동안 내내 열리는 이번 <사랑나눔캠프> 관찰을 위해 현장 참여를 위해 여름 휴가를 냈었다. 그러나, 직장 사정으로 일요일을 포함해 3일간 출장으로 대신해야 했다. 섭섭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세상 일이 어찌 내 마음대로 될까. 마음대로 펼쳐진다면야 또한 세상 사람들 모두 마음 아픈 곳이 있을까. 마음 상처를 가지고 사는 것이 인지상정이란 말로 위로 삼아 8월 2일 원광대 정문 뙤약볕 아스팔트길을 걸어 나왔다.


아이들 소리가 발걸음마다 까르르거린다. 땅 구르는 아이, 침 뱉는 아이, 도망다니는 아이, 무엇을 물어도 입을 다물고 있는 아이, 싫은 게 있으면 그냥 땅에 벌러덩 눕는 아이들. 이들에게 걱정이라든지 죄책감이라든지 하는 단어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짓이라든가 욕심이라든가 혹은 개인적이라는 단어와 서로 연관이 없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우리들은 대부분 쓸모없는 감정 두 가지를 지니고 고민한다고 한다. 즉, 이미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요, 또한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걱정이 그것이다. 특히, 현재의 죄책감은 과거 행동이 현재를 지배하게 하여 현재 순간들을 자신도 모르게 낭비해 버리도록 하고, 현재의 걱정은 또한 미래의 일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아까운 현재를 누구도 모르게 소비해 버리게 만든다. 결국 아까운 현재 순간을 잃어버리는 불안의 악순환만 되풀이 하게 된다.


정상적이라고 외치는 나부터 항상 '최후의 날'은 진정한 '현재'이어야 하는 바, 행복한 삶이란 바로 스스로 움직이는 지금인 것을, 그 행복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어찌 나와 그들 손에 함께 올려놓고 서로 바라보게 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이 또한 걱정일까? 지금 남겨두고 온 아이들은 더욱 걱정에 대한 불편함으로 인해 극도로 현 순간을 괴롭히는 것으로 느껴지리라는 걱정. 그것을 잠재우기 위한 힘, 어쩌면 그들이나 그들의 존재를 잊고 현재를 보내게 되는 우리들이나, 그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리라.


그들은 지금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타협점 연장선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연장선 한쪽에서 반대쪽에 있는 나 같은 그들, 혹은 그들과 같은 내 모습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산다는 일은 그저 서로의 모습을 보아주고, 그래서 그 모습들을 통해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라는 지금 생각을 떨치지 못하니 말이다.


이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20여일 시간이 흘렀다. 이제 이 원고도 하나의 의미로 눈앞에 머물게 해야 할 것이다.


아, 보이는 것 모두 자연의 일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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