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in Black -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아래 글은 브런치 북 '위대한 팝송 명곡이 흐르는 까미노'에 실린 3장의 첫 편인 '만물유주 만사인연과 동일합니다. 기존 브런치 북이 완결 북이라 연재가 불가능하여 앞으로 연재할 브런치 북 '위대한 팝송이 흐르는 까미노 II'의 첫 편으로 다시 올리기 위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은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4일 아스트로가 - 라바날 델 까미노 20.2 km
어느덧 순례가 후반부에 들어섰다. 익숙해질 만하니 종착점에 가까워졌다. 물이 절반에 찬 컵을 보면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던데 아직 1/3이 남았다고 해야 하나? 순례 종반이 다가올수록 아쉬운 감정이 진해진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서운함이 진해진다.
대성당 광장 벤치에 앉아 주교궁 뒤로 떠오르는 여명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너른 광장에 우리 둘 뿐이다. 단출하게 차린 조찬 테이블을 화려하게 꾸민 장식물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옴직한 앙증맞도록 예쁜 가우디 건축물이다. 아스트로가는 멋지고 아름답다. 촘촘하게 짜인 시가지가 남다르고 중세 고건축물과 근현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절묘한 신구 조화를 이룬다. 부르고스나 레온 같은 대도시에서 연박하는 것도 괜찮지만 아스트로가 같이 이색적인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러도 멋지겠다. 다음 기회에는 그러고 싶다. 주치의가 허락하면 와인 한잔에 중세의 야경을 안주삼아서.
스페인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언제나 여유로워 즐겁다. 7시가 훌쩍 넘어도 거리에 인적이 뜸하다. 가끔 지나가는 이들은 십중팔구 순례자들이다. 현지인들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보다 등교시간이 늦은 것 같다. 8시를 넘겨야 드문 드문 보인다. 7시면 이미 출근과 등교 전쟁으로 정신없는 우리네 풍경과 확연히 다르다. 까미노가 지나는 마을마다 대체로 후한 인심이 살아 있는 건 주민들에게 이런 여유가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 있는 삶이 워라밸을 상징한다면 여유로운 아침은 오늘의 만족스러운 삶과 내일을 향한 꿈이 넘치고 있음을 대변한다. 한강대교를 넘는 출근길에 멀찍이 서있는 63 빌딩이 황금을 두른 부처님 합장으로 보일 때가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날에나 가능한데 일 년 중 매우 드물다. 선팅된 승용차 안에서 동편의 쨍한 햇살이 청명한 대지를 가득 채우는 행운을 목도하면 푸근한 가슴에 행복이 부풀어 오른다. 미세먼지에 뺏긴 눈부신 아침 햇살처럼 우리는 언제부터 마땅히 누려야 할 여유 있는 삶과 소소한 행복을 잃어버린 걸까?
오스트레일리아 메탈밴드 AC/DC는 알코올 중독으로 33세에 생을 마친 보컬리스트 본 스캇을 기리는 헌정곡을 준비했다. 멤버들은 본이 생전에 백업 보컬로 추천한 브라이언 존슨을 그룹에 합류시켰다. 작사는 후임인 브라이언이 맡았다. 가사는 죽음을 뿌리치고 더 굳건해져 돌아온 본을 그렸다. 핍박한 삶에 찌든 대한국민들이 검은 옷을 입고 부활한 'Back in black(187위)'을 들으며 무한 경쟁의 지옥에서 빠져나와 여유를 되찾기를 바란다.
살살 부는 바람에 슬픔과 시름을 떠맡기고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에 나를 맡기면 바람은 나의 힘이 되고 구름은 내 꿈이 된다. 푸른 창공을 따라 파란 희망을 쫓아 산티아고로 향해 가는 나그네 심정으로 록밴드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1979년)'을 부르며 아스트로가를 벗어났다. 차남인 내가 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을진 모르지만.
어제저녁을 배불리 먹고 아침도 챙겼는데 공복감이 느껴졌다. 덧없는 욕심을 비운 게 아니라 걸신처럼 내 소화기관을 비웠나 보다. 급한 대로 바에서 토띠야로 시장기를 속였다. 잠시 후 태극기를 내건 바 앞에서 웬디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활기차게 웃는데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매일같이 오래 걸은 탓이겠지. 내 시장기도 같은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허리춤이 좀 얇아진 듯하고. 앞으로 영양 보충에 유념해야겠다.
바에 들어간 웬디를 뒤로 하고 걷는데 저 앞에 낯익은 여인이 걸어간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별내댁이다. 어제와 다른 건 모자를 쓰지 않았다는 것. 모자는 어쨌느냐 물었다. 새벽에 서둘러 나오다 알베르게에 놔두고 왔단다. 가는 길에 적당한 모자를 구할 계획이라는 말에 누나 배낭에 걸어 둔 폴로 모자가 생각났다. 6일 전 영국 할머니가 밀크티를 마신 바 앞에서 주워 지금껏 매달고 다녔다. 모자 사기 전에 얼굴 다 타겠다며 이거라도 쓰시라 건넸다. 라바날까지 간다는 말에 같이 가자고 했다. 확실히 임자는 따로 있는 거 같다. 며칠간 제 주인을 찾지 못해 애태우던 모자가 별내댁을 새 주인으로 삼으려 했나 보다. 만물유주萬物有主, 만사인연萬事因緣. 모든 물건은 주인이 있고 매사에 연이 닿아야 한다. 별내댁을 재회한 게 인연이라면 그 연에 힘입어 물건이 새로운 주인 품으로 돌아갔다.
라바날 델 까미노는 인영균 클레멘스 신부님이 수도원 선교사로 머물던 마을이다. 2020년에 파견이 끝나 지금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계신다. 당초엔 라바날에서 연박을 계획했다. 외딴 산골 마을을 찾은 건 잠시 순례를 멈추라 제안하는 인 신부님이 계신 수도원에서 1박2일 피정을 하기 위해서다. 신부님이 계시지 않으니 연박할 필요는 없다. 철의 십자가에서 일출을 보려면 폰세바돈까지 가는 게 더 낫다. 그런데 워낙 외진 마을이라 수용인원이 적을뿐더러 숙소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다 들었다. 고민 끝에 형편이 좀 더 나은 라바날을 택하되 연박은 안 하기로 했다. 숙소는 성 야고보 평신도회가 순례자를 위해 선착순 기부제로 운영하는 레푸지오 가우셀모Refugio gaucelmo로 정했다. 자선 봉사자들이 매우 친절하다는 평에 옆 건물 수도사들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끌렸다. 별내댁도 숙박비가 비싼 숙소를 예약 취소하고 우리와 함께 가우셀모에 묵기로 했다.
라바날을 6.9km 앞둔 엘 간소El Ganso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12시 반 오픈에 정원이 36명이라 시간이 충분했지만 물집 때문에 걸음이 불편한 별내댁을 고려해 혼자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행여 가우셀모가 만실이 되면 숙소 잡기가 골치 아플 거란 조바심이 도진 탓이다. 둘이서 천천히 오라 일러두고 두 사람 크레덴셜을 챙겨 라바날로 향했다. 1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급속행군하여 앞선 이들을 하나둘씩 제쳐 1시간 만에 도착했다. 10km 달리기나 하프 마라톤을 뛸 때도 죽기 살기로 뛰지 않았는데 두 다리에 세 명의 잠자리가 걸렸다는 사명감이 미친 듯이 속보로 내달렸다.
가우셀모에 도착했다. 정문 앞 공터가 휑하다. 일착이었다. 닫힌 문 앞에 승리의 깃발 꽂듯 배낭과 스틱을 내려놓고 벤치에 털썩 앉았다. 가쁜 숨을 고르며 물을 들이켰다. 이렇게 숨찬 뜀걸음으로 내달린 걸 보면 한국에서 가져온 경쟁 심리가 그대로인 것 같다. 하긴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순례 이십여 일만에 바뀔리가 없겠지. 까미노에 익숙해지고 걷기에 단련될수록 순례길에서 갈무리했을 거라 여긴 경쟁심리가 또 언제 고개를 내밀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 신부님이 걸음을 멈추라 했을 것이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목적으로 걷기 시작한 사람도 걷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잃어버리고 기계적으로 걷기 시작해요. 계속 걸어왔으니까, 남들도 가니까 어딜 가는 줄도 모른 채 걷게 됩니다. 거기에 ‘멈추라’고 초대하죠'
물리적이고 절대적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는 늘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효율적으로 경쟁하려면 시간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남보다 빨리 도착해 원하는 베드를 확보한다는 일상의 경쟁 심리가 까미노의 시간을 크로노스로 만든다. 순례를 시작한 지 25일, 현실로 접한 순례길은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까미노와 많이 달랐다. 낯선 환경에 당황하는 이에게 베푸는 친절, 곤경에 빠진 나그네에게 쏟아지는 도움의 손길, 남을 위한 양보와 배려가 넘치는 천사들이 가득한 낙원일 거라 여겼는데 어두운 면도 많다. 좀 더 안락한 숙소를 차지하려는 경쟁, 은연중 드러내는 인종차별, 이따금씩 발생하는 절도처럼 순례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환상의 요지경이다. 까미노의 미덕에 감사하면서도 원치 않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는 양 미간을 찡그린다.
이 모두가 신의 뜻을 따르고 성인을 만나려는 순례의 참뜻을 되새기기에 앞서 고행을 자처한 인간이 즉자적인 본능과 즉흥적인 감정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크로노스에 익숙한 나를 멈춰야만 까미노에서 나라는 존재를 되돌아볼 수 있다. 순례하는 동기가 저마다 달라도 최소한 1,200년 전 780km 순례길이 생겨난 애초의 목적인 절대자와 성인을 기리는 마음을 전제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를 위해서는 걸음을 잠시 멈춰 자아를 성찰하고 내면을 돌아보며 주관적이고 상대적 시간인 ‘카이로스’를 가져야 한다. 카이로스는 찰나의 순간에서 얻기도 하지만 있고 일생을 걸어야만 가능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조급해서는 안된다.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로 바꿔야만 경쟁적인 순례에서 벗어나 까미노를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조바심에 뜀걸음으로 순례를 이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도 크로노스가 물고 온 과실은 무척 달콤했다. 돌로 지은 성당과 주택들이 짙은 녹음과 어우러진 유려한 풍경에 넋을 놓고 하얀 구름이 시원한 그림자를 선물해 준 쾌청한 오후를 한가로이 즐겼다. 별내댁이 덕분에 모자도 구하고 숙박비까지 아꼈다며 필라르Albergue Pilar에서 점심을 샀다. 산에서 먹는 라면은 언제나 진리라지만 인 신부님에게 조리법을 배웠는지 꼬들꼬들한 면발이 정말 맛있다.
느즈막히 시에스타를 즐긴 후에 근처 레스토랑에 갔다. 저녁 시간대라 금방 만석이 되어 오스트리아 여성이 합석을 부탁했다. 잘츠부르크 출신인 그녀는 점심도 거르고 종일 걸어 지쳤다며 푸념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이었다. 급체가 왔는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울렁증을 호소했다. 바람 쐬려 웨이터가 부축해 베란다 밖으로 나갔는데 증상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누나와 외국인 여성 한 분이 그녀를 나무 바닥에 눕혀 팔다리를 주물렀다. 잠시 후 파리해진 혈색이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누나는 그녀의 등을 한참 쓸어주며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노라 하니 숙소가 지척이라며 걱정 말라한다. 좀 쉬었다 가겠다는 그녀에게 조심하라 이르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마을 산책을 하다가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녀를 보았다. 연약한 체격이라 걱정되었다. 빨리 체력을 회복해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를 빌었다
급체로 쓰러진 그녀를 따뜻한 손길로 쓰담쓰담해 준 누나에게서 1969년 우드스탁 공연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쌀쌀한 날에 비가 내리자 관중들은 흠뻑 젖은 채 추위에 떨었다. 몰려드는 한기를 이겨내려 하나둘씩 옷을 벗고 서로 끌어안아 온기를 나누는 모습을 노래로 담았다.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Who’ll stop the rain(188위)'이다. 밴드의 리더 존 포거티는 참기 힘들거나 바라지 않는 상황을 비에 은유해 누가 힘들고 고단한 순간을 끝낼지 궁금해했다. 그녀가 홀로 까미노를 찾은 이유는 알 길 없으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할 때 그녀에게 온기를 나눠줄 사람들이 가득하길 바랐다.
숙소 앞 작은 마당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듯 했다. 이역만리 깊은 산중에 잘못 들은 거라 여겨 숙소에 들어가려는 찰나 한국에서 누나와 같이 온 XXX님 아니냐고 재차 묻는다. 스페인 산골에서 내 닉네임을 들을 줄이야. 초면의 여성분이 네이버 순례자 카페에 올린 엑셀 자료와 글을 잘 읽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앳된 소녀 감성이 물씬 풍기는 미소가 연하늘색 꽃무늬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누나와 동갑이라 그런지 금방 친근해져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무릎이 아픈 누나에게 의지할 분이 생겨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