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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Nov 06. 2024

[25 일차] 카이로스를 기다리며

Back in Black -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아래 글은 브런치 북 '위대한 팝송 명곡이 흐르는 까미노'에 실린 3장의 첫 편인 '만물유주 만사인연과 동일합니다. 기존 브런치 북이 완결 북이라 연재가 불가능하여 앞으로 연재할 브런치 북 '위대한 팝송이 흐르는 까미노 II'의 첫 편으로 다시 올리기 위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은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4일 아스트로가 - 라바날 델 까미노 20.2 km


  어느덧 순례가 후반부에 들어섰다. 익숙해질 만하니 종착점에 가까워졌다. 절반이 든 물컵을 보면 긍정적으로 해석하라던데 아직 삼분의 일이 남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삼분지 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순례 종반이 다가올수록 아쉬운 감정이 든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서운함이다.


  대성당 광장 벤치에 앉아 주교궁 뒤로 떠오르는 여명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이른 시간이라 너른 광장에 우리 둘 뿐이다. 단출하게 차려진 조찬 테이블을 화려하게 꾸며준 장식물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옴직한 앙증맞도록 예쁜 가우디 건축물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스페인 마을 중에서 아스트로가가 가장 멋있고 아름다웠다. 촘촘히 시가지를 이룬 남다른 짜임새에 중세 고건축물과 근현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절묘한 신구 조화를 이룬다. 부르고스나 레온 같은 대도시에서 연박하는 것도 괜찮지만 아스트로가 같은 이색적인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러도 멋질 것 같다. 다음 기회에는 그러고 싶다. 주치의 허락을 득해 와인 한잔을 곁들여 중세의 야경에 적당히 취하며.  


  스페인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언제나 여유로워 즐겁다. 일곱 시를 훌쩍 넘겨도 거리엔 인적이 뜸하다. 가끔 지나가는 이들은 십중팔구 순례자들이다. 집을 나선 현지인들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학생들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등교시간이 많이 늦은 것 같다. 여덟 시를 넘겨야 드문 드문 보인다. 일곱 시면 이미 지옥철로 북적이는 우리네 풍경과 확연히 다르다. 까미노가 지나가는 마을마다 아직 후한 인심이 살아 있는 건 그들 마음에 이런 여유가 넘쳐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아침은 출근과 등교 전쟁으로 시작된다. 저녁 있는 삶이 워라밸을 상징한다면 여유로운 아침은 오늘의 만족스러운 삶과 내일을 향한 꿈이 넘쳐나고 있음을 대변한다. 한강대교를 넘는 출근길에 멀찍이 서있는 63 빌딩이 황금을 두른 부처님 합장처럼 보일 때가 있다. 동편의 쨍한 햇살이 청명한 대지를 가득 채워 선팅 된 차량 안에서도 눈이 시린 날에나 가능한데 일 년 중 매우 드물다. 이런 행운을 맞으면 푸근해진 가슴에 행복이 부풀어 오른다. 미세먼지에 뺏긴 눈부신 아침 햇살처럼 우리는 언제부터 마땅히 누려야 할 여유 있는 삶과 소소한 행복을 잃어버린 걸까?


    오스트레일리아 메탈밴드 AC/DC는 알코올 중독으로 33세에 생을 마친 보컬리스트 본 스캇을 기리는 헌정곡을 준비했다. 멤버들은 본이 죽기 전에 백업 보컬로 추천한 브라이언 존슨을 그룹에 합류시켰다. 작사는 후임인 브라이언이 맡았다. 가사는 죽음을 뿌리치고 더 굳건해져 돌아온 본을 그렸다. 핍박한 삶에 찌든 대한국민들이 검은 옷을 입고 부활한 'Back in black(187위)' 들으며 무한 경쟁의 지옥에서 빠져나와 여유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AC/DC - Back in Black(1980년, 187위)


  살살 불어대는 바람에 슬픔과 시름을 떠맡기고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에 나를 맡기면 바람은 나의 힘이 되고 구름은 내 꿈이 된다. 푸른 창공을 따라 파란 희망을 쫓아 산티아고로 향해 가는 나그네 심정으로 록밴드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1979년)'을 부르며 아스트로가를 벗어났다. 차남인 내가 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을진 모르지만.  


대성당 광장을 테이블 삼아 벤치에 앉아 아침을 해결했다. 연일 쾌청한 날씨에 걷기 수월했다.


  어제저녁을 배불리 먹고 아침도 거르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공복감을 느꼈다. 덧없는 욕심을 비워내는 게 아니라 걸신처럼 내 소화기관을 비우는가 보다. 급한 대로 바에서 토띠야로 시장기를 속였다. 조금 더 걸어 태극기를 내건 바 앞에서 웬디를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활기찬 모습은 여전한데 얼굴이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수척해진 것 같다. 매일같이 오래 걸은 탓이겠지. 내 시장기 또한 이런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허리춤이 조금 얇아진 듯하고. 남은 기간이라도 영양가 있는 메뉴를 고르자 다짐했다.


   바에 들어간 웬디를 뒤로 하고 걷는데 저 앞에 낯익은 여인이 걸어간다. 혹시나 싶어 누나가 불렀다. 역시나 아스트로가 초입에서 헤어진 별내댁이다. 어제와 달라진 게 있다면 모자를 쓰지 않았다는 것. 모자는 어쨌느냐 물었다. 새벽에 정신없이 나와 알베르게에 모자를 깜박 놔뒀단다. 가는 길에 적당한 모자를 구할 계획이라는 말에 누나 배낭에 걸어 둔 폴로 모자를 떠올렸다. 육일 전 영국 할머니가 밀크티를 마셨던 바 앞에서 주워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주려고 지금껏 매달아 다녔다. 모자를 구하기 전에 얼굴 다 타겠다며 이거라도 쓰시라 건넸다. 그래도 되겠느나며 잠시 머뭇거리던 별내댁이 누나 손을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라바날까지 간다는 말에 오늘도 동행하기로 했다. 확실히 임자는 따로 있는 거 같다. 며칠간 제 주인을 찾지 못해 애태우던 모자가 별내댁을 새 주인으로 삼으려 했나 보다. 만물 유주, 만사 인연. 모든 물건은 주인이 있고 매사에 연이 닿아야 한다. 별내댁을 다시 만난 것이 인연이라면 그 연에 힘입어 물건이 새로운 주인 품으로 돌아갔다.


  라바날 델 까미노는 인영균 클레멘스라는 한국인 신부님이 수도원 선교사로 머물던 마을이다. 2020년에 파견이 끝나 지금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계신다. 당초엔 라바날에서 연박을 계획했다. 외딴 산골 마을을 찾은 이유가 있다. 잠시 순례를 멈추라 제안하는 인 신부님과 피정을 함께 하고 철의 십자가에서 일출을 맞기 위해서였다. 신부님이 계시지 않아 구태여 피정과 연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철의 십자가에서 일출을 보려면 사실 폰세바돈까지 가는 게 더 낫다. 그런데 워낙 외진 곳이라 수용인원이 적을뿐더러 숙소 컨디션 또한 그리 좋지 않다. 고민 끝에 원래 계획대로 좀 더 형편이 나은 라바날을 택하되 연박은 안 하기로 했다. 인 신부님과 친한 사이였던 필라르 알베르게에 예약을 했다가 이틀 전에 취소했다. 그 대신 성 야고보 평신도회가 순례자를 위해 선착순 기부제로 운영하는 레푸지오 가우셀모로 정했다. 자선 봉사하는 신자들이 상당히 친절하다는 평에 옆 건물 수도사들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끌려서였다. 별내댁은 정보가 어두워 미리 비싸게 예약했던 숙소를 취소하고 우리와 함께 가우셀모에 묵기로 했다.


  라바날을 7.2km 앞둔 엘 간소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열두 시 반 오픈에 정원이 서른여섯 명이라 시간이 넉넉한 편이지만 물집이 잡혀 걸음이 불편한 별내댁 사정을 고려해 내가 먼저 출발해 줄 서기로 했다. 혹시라도 가우셀모가 만실이 되면 숙소 잡기가 골치 아플 거란 조바심 병이 도진  탓이다. 누나에겐 둘이서 천천히 오라 일러두고 두 사람 크레덴셜을 챙겨 라바날로 향했다. 혹시 체크인을 일찍 하거나 누나와 별내댁이 늦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십 킬로그램이 넘는 군장을 메고 급속행군 모드로 단숨에 레푸지오 가우셀모까지 주파했다. 앞서 걷는 이들을 하나둘씩 제치며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십 킬로미터 달리기나 하프 마라톤 할 때 죽기 살기로 뛰지 않는데 내 두 다리에 세 명의 잠자리가 걸려 있다는 부담이 나를 미친 듯한 속보로 내몰았다.


  가우셀모에 도착했다. 정문 앞 공터가 휑하다. 일착이었다. 닫힌 문 앞에 승리의 깃발 꽂듯 배낭과 스틱을 내려놓은 다음 벤치에 털썩 앉았다. 가쁜 숨을 고르며 물을 들이켰다. 이렇게 숨찬 뜀걸음으로 내달린 걸 보면 한국에서 가져온 경쟁 심리가 그대로인 것 같다. 하긴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순례 이십여 일만에 바뀔리야 없겠지. 까미노에 익숙해지고 걷기에 단련될수록 순례길에서 잠복됐을 거라 여긴 경쟁심리가 언제 고개를 내밀지 모른다.


마지막 쉬었던 바에 놀러온 고양이에게 잘 있으라 인사를 남긴 후에 한시간 동안 가우셀모까지 주파했다. 숨 가쁜 크로노스를 보낸 덕분에 늘어진 고양이 마냥 오후를 한가로이 보냈다.


  그래서 인 신부님이 걸음을 멈추라 했을 것이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목적으로 걷기 시작한 사람도 걷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잃어버리고 기계적으로 걷기 시작해요. 계속 걸어왔으니까, 남들도 가니까 어딜 가는 줄도 모른 채 걷게 됩니다. 거기에 ‘멈추라’고 초대하죠'


  물리적인 절대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는 언제나 일정하게 흘러간다.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시간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남보다 빨리 도착해 원하는 베드를 확보한다는 일상의 경쟁 심리가 까미노에서 크로노스를 기계적으로 관리하려 했다. 순례를 시작한 지 이십오일, 현실로 접한 순례길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까미노와 꽤 달랐다. 낯선 환경에 당황하는 이에게 베푸는 친절, 곤경에 빠진 나그네에게 쏟아지는 도움의 손길, 남을 위한 양보와 배려가 넘치는 천사들이 가득한 낙원일 거라 여겼는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좀 더 안락한 숙소를 차지하려는 경쟁, 은연중 드러내는 인종차별, 가끔 발생하는 절도처럼 순례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환상의 요지경이다. 예상치 못한 도움과 배려 앞에 까미노의 미덕에 감사하지만 원치 않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는 양 미간을 찡그린다.


  이 모두 신의 뜻을 따르고 성인을 만나려는 순례의 참뜻을 되새기기에 앞서 고행을 자처한 인간이 즉자적인 본능과 즉흥적인 감정에 더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크로노스에 익숙한 나를 멈춰야 까미노에 서 있는 나라는 존재를 되돌아볼 수 있다. 순례 동기가 저마다 다를지라도 천이백 년 전 칠백팔십 킬로미터 순례길이 생겨야 했던 애초의 목적, 절대자와 성인을 기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제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걸음을 잠시 멈춰 자아를 성찰하고 내면을 돌아보게 해 줄 주관적인 상대적 시간인 ‘카이로스’를 가져야 한다. 카이로스는 찰나의 순간에서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일평생에 걸쳐 체험해야만 가능할 수도 있다. 조급해서는 카이로스를 얻기 어렵다.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로 바뀌어야만 경쟁적인 순례에서 벗어나 까미노를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처럼 뜀걸음으로 순례를 이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도 크로노스가 물어다 준 과실은 무척 달콤했다. 돌로 쌓아 지은 성당과 주택들이 짙은 녹음과 혼연일체 된 아름다운 풍경에 하릴없이 푹 빠졌다. 하얀 구름이 시원한 그림자를 선물해 준 쾌청한 오후를 한가롭게 보냈다. 배가 출출해질 무렵 별내댁이 우릴 만나 모자를 구했고 숙박비까지 아꼈다며 필라르에서 점심을 샀다. 팔라르 여주인장이 인 신부님에게 조리법을 배웠는지 신라면을 맛있게 끓여냈다. 산에서 먹는 라면은 언제나 진리다.


  때 늦은 시에스타를 즐긴 후에 저녁 먹으러 근처 레스토랑에 갔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테이블이 만석이 되었다. 뒤늦게 들어온 오스트리아 여성이 우리 테이블 빈자리에 합석했다. 잘츠부르크에서 온 그녀에게 모차르트와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대해 몇 가지 물었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그녀와 구글 번역기를 돌려 독일어로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식사 도중 틈틈이 타이핑하려니 욕심만큼 교감을 충분히 나누지 못해 아쉬웠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점심을 거른 채 하루 종일 걸었다는 그녀가 급체를 했는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울렁증을 호소했다. 바람 쐴 겸 웨이터의 부축을 받아 베란다 밖으로 나갔는데 증상이 악화돼 어쩔 줄 몰라했다. 누나와 다른 외국인 여성이 그녀를 나무 바닥에 눕혀 팔다리를 주무르며 진정시켰다. 잠시 후 조금 나아진 듯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누나가 그녀 등을 한참 쓸어주었다. 이제 괜찮다는 손짓에 누나더러 숙소까지 데려다주라 했는데 숙소가 지척이라며 한사코 걱정 말라한다. 좀 쉬었다 가겠다는 그녀에게 조심하라 이른 다음 레스토랑을 나왔다. 산책을 하고 돌아가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녀를 보았다. 연약한 인상이라 더 걱정되었다. 부디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하시라 빌었다.


  급체로 쓰러진 그녀를 따뜻한 손길로 쓰담쓰담해 준 누나에게서 1969년 우드스탁 공연의 한 광경이 상상되었다.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내려 관중들은 흠뻑 젖어 추위에 떨어야 했다. 한기를 견디기가 어렵자 누구라 할 거 없이 하나둘씩 옷을 벗어 서로 끌어안으며 온기를 나누는 장면을 노래로 담았다.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Who’ll stop the rain(188위)'이다. C.C.R. 의 존 포거티는 참기 힘들거나 바라지 않는 상황을 비에 은유해 힘들고 고단한 순간이 언제 끝날지 궁금해했다. 무슨 연유로 홀로 까미노를 찾았는지 알 길 없으나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할 때 온기를 나눠줄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하길 바랐다.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Who’ll Stop the Rain(1970년, 188위)


  숙소 앞 작은 마당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역만리, 그것도 깊은 산중에 잘못 들었을 거라 여기며 숙소로 들어가려는 찰나 한국에서 누나와 같이 온 XXX 아니냐고 재차 묻는 게 아닌가. 스페인 깡촌 마을에서 내 필명을 들을 줄이야. 영문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내게 네이버 순례자 카페에 올린 엑셀 자료와 글을 잘 읽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앳된 소녀 감성이 물씬 풍기는 미소가 연하늘색 꽃무늬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누나와 동갑이었다. 나이가 같아 친근감이 들었는지 누나와 둘이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힘들고 외로운 길에 서로 의지할 친구가 생겨 다행이라 여겼다.  


아기자기한 산중 마을 라바날 델 까미노. 레푸지 가우셀모 알베르게와 수도원 앞 광장, 라면을 맛있게 끓여낸 필라르. 저녁 무렵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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