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철의 십자가를 만나러 간다. 대단원의 막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제외하면 프랑스 루트에서 가장 커다란 울림을 전해준다는, 마주한 것만으로 감격스러울 거라 기대가 컸던 곳. 오매불망하던 철의 십자가를 접하러 간다.
천지를 창조한 신이 마스터 셰프가 되어 순례길 정식 요리의 포인트로 묵직한 애피타이저를 간택했다. 한 입 거리의 아뮤즈 부쉬엔 재치있게 소담스런 생장 피에르 포흐를 골라 입을 즐겁게해주었다. 다음으로 나폴레옹 루트의 뢰페데르 언덕과 용서의 언덕을 애피타이저로 내놨다. 코스의 첫 공식 전채로는 꽤나 무거운 디쉬다. 탑 헤비 코스인 만큼 생선요리와 메인 디쉬는 담백한 게 낫다. 화이트 와인 소스를 곁들인 흰 살 도미찜이 제격이다. 시루에냐 밀밭과 메세타 평원이 이에 해당할 텐데 어째 크리미 한 대구 버터구이 같다. 입맛을 강하게 자극하는 요리가 연달아 나왔다. 이제 메인 디쉬 차례다. 당신이 주 요리 담당 셰프라면 철의 십자가를 어떻게 요리하겠는가? 육즙이 풍부한 이탈리아식 티본스테이크,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보다 가벼운 닭고기나 칠면조 가슴살 구이가 어떨는지.
그제 김 선배가 보내준 철의 십자가의 일출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한 장의 사진이 이럴진대 직접 맞이하는 그 순간에 어떤 심정일런지 가히 짐작된다. 일출을 향하는 새벽 산행은 언제나 가볍지 않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숙연한 마음으로 정상을 향하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헤드랜턴 불 빛 하나에 의지해 나가는 발걸음은 오체투지 하는 구도자의 그것과 같다. 어두컴컴한 능선길을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까미노에 나를 한 번씩 내던지는 기분이 든다. 내 몸에 잔뜩 묻어있는 세상의 오욕이 하나씩 털려 나간다. 동편에 떠오른 서광이 철의 십자가를 가득 붉게 물들이는 순간 일평생 동안 저지른 온갖 허물을 탈피한다. 마침내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결한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경건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메인 요리로는 무거운 것 같다.
평소처럼 출발했다. 비워진 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일출 욕심까지 부리지 말자 했다. 철의 십자가 언덕은 프랑스 루트에서 고도가 제일 높다. 하늘의 기운에 가장 가까이 맞닿은 곳이다. 해 뜨는 장엄한 광경을 놓쳐도 영적으로 충만해질 거라 기대했다. 내가 가져온 돌 하나에 삶의 고통과 후회, 고뇌와 죄과를 모두 담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말이다. 과한 희망이나 이 정도면 지금껏 감당했던 상처와 아픔을 정화해 줄 담백한 요리라 믿었다.
인생은 교도소와 같다. 인생을 살면서 원죄를 씻기는커녕 신구의 삼업을 일삼았다. 몸이 저지른 업이야 적다 해도 입과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악업을 쌓았던가. 남을 속이거나 해하려던 거짓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 멀어졌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탐심과 노여움, 어리석음은 또 얼마나 많았을런고. 범죄를 자행한 나를 가둔 곳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다. Johnny Cash는 폴섬 교도소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영화에서 ’Folsom prison blues(164위)’이란 컨트리송을 작곡했다.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만일 풀려나면 기차를 타고 폴섬 교도소에서 멀어지겠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나도 철의 십자가에서 그간의 삼업에서 벗어나 멀어지고 싶다.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싶다.
우리네 능선 같은 산길에서 Aerosmith의 ‘Dream on(172위)’를 들었다. 과거는 황혼과 새벽 사이에 짙게 깔린 어둠에 묻혀 사라진다. 철의 십자가를 향하는 오늘 하루 만이라도 내 속에 가득 찬 희로애락과 지난 세월을 목청껏 노래하여 토해내고 싶다. 갈망하며 애절하게 희구하는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꿈을 간직하고 싶다. 십자가에 선 나는, 순례자들은 어떤 꿈을 그릴까?
산중 마을 폰세바돈까지 가는 길이 적요하다. 앞선 순례자들이 거의 없다. 산 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한적한 숲길에서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즐겨 본다. 먼발치에서 바라봤던 풍력 발전기들이 지척에 다다랐다. 친환경 청정에너지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이 아름다운 산자락 곳곳에 늘어서 있다. 철의 십자가가 있는 레온 산맥 주변의 엄숙한 경관을 해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신재생 에너지가 보편화될수록 전력 그리드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그만큼 자연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진다. 재생 에너지가 지닌 동전의 양면이다.
적요한 산길이 교교히 아름답다. 폰세바돈까지 산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오르막길이 적당한 숨차 아침 산책하기에 적당했다.
이처럼 만물에는 명과 암이 공존하는 것 같다. 밝음만 추구하여 그로부터 기인한 어둠을 도외시해선 안된다. 선악도 이와 같다면 선을 추구할수록 파생될 악을 대비해야 한다. 반대로 악을 박멸하기 위해 그 안에 가려진 선까지 깡그리 제거해서도 안될 것이다. 절대선은 종교와 이상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을 존중하되 소수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미덕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상대 진영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Joni Mitchell의 ‘Both sides now(170위)’처럼 감미롭게 안아줬으면 좋겠다.
걸출한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이자 포크가수 중 자주 라이벌로 묘사되는 두 명의 여성 가수가 있다. 미국에 존 바에즈가 있다면 캐나다는 그녀와 쌍벽을 이루는 조니 미첼을 낳았다. 존 바에즈가 인종 차별과 반전, 혁명과 저항의 표상인 포크의 여제였다면 조니 미첼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적 혁명을 추구한 포크의 음유시인이었다. 존 바에즈처럼 선두에 서서 싸우지 못한 그녀는 평생 자신이 강한 척할 수 없는 고통을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했다. 모처럼 양희은이 번안해 부른 ‘구름, 사랑 그리고 인생(1971년)’을 듣고 싶다.
Joni Mitchell - Both Sides Now(1969년, 170위)
피레네 산맥의 절경과 아소프라와 시루에냐 밀밭 초원에 못지않게 폰세바돈을 넘어가는 능선이 참 좋았다. 생선요리와 메인 디쉬 사이에 나오는 가벼운 드레싱을 두른 그린 샐러드 같이 산뜻하다. 하이라이트는 언제쯤 나올까? 능선이 굽어질 때마다 가벼운 흥분이 반복되던 어느 순간 철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드디어 내가 여기에 왔구나. 불쑥 나타난 철의 십자가가 가까워지는 게 아쉬웠다. 속도를 줄였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예닐곱 명의 순례자가 철의 십자가 둔덕에서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거나 준비 중이었다. 별내댁과 누나더러 먼저 오르라 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가방에서 조약돌을 꺼내 마음을 다졌다. 둔덕 위 십자가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무얼 기원드릴까? 고민하다 우러나오는 대로 따르기로 마음을 다졌다. 드디어 내 차례다.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에 들어가듯 차분하고 조심스레 십자가로 올랐다. 무릎을 꿇어 미리 준비한 돌 두 개를 하나씩 십자가 밑에 행여나 굴러 떨어질세라 단단히 박아뒀다. 돌 하나에 내 삶의 삼업을 아로새겼다. 다른 돌에는 어머니와 가족, 지인들의 행복을 담았다. 일어나 십자가에 손을 댄 채 짧게 기도드렸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의 건강을, 아픈 지인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십사 축원드렸다. 내 의식은 이걸로 족했다.
십자가 옆에서 여운을 가지고 싶었으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올라와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우리도 그랬지만 동양인들은 철의 십자가에 선 순례자가 독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하며 충분히 기다려준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대체로 위에 누군가 먼저 와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내키는 대로 올라와 자기 볼 일을 보고 내려간다.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문화 차이라 여겨졌다. 그들은 독사진을 찍는 것보다 십자가에 서서 그동안 다졌던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걸 더 중시하는 모양이었다. 쿨한 벽안의 순례자들 덕분에 AI 지우개 기능을 써봤다. 번잡해 보이는 순례자들을 한 명씩 지워나갔다. 사진에서 휴거 된 그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그래도 익명이 보장되어 차라리 낫다고 여기면 좋겠다.
어느 순간 불쑥 엄숙한 자태를 드러낸 철의 십자가. 돌무덤 위에 올라 순례자들은 저마다 준비한 의식을 짧게 드린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했다.
정상과 목적지의 표고차이는 구백 미터, 이제부터 몰리나세카까지 십칠 킬로미터 하산길이다.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만 별내댁은 팔 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한다. 적당한 페이스로 내려가는데 누나가 한가롭게 걷는 게 아닌가. 처진다 싶으면 뒤돌아서 다그쳤다. 별내댁 일정을 고려하면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결국 누나가 무릎이 말썽이라 실토했다. 어제 오후부터 왼쪽 무릎에 이상을 느껴 근육통 약을 복용했는데 악화된 것이다. 철의 십자가까지 잘 오르시길래 통증이 도진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걱정할까 봐 그러셨을 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꾸 채근한 것이 미안했다. 별내댁더러 먼저 내려가라 했는데 괜찮다며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져 무리 줄까 봐 누나를 앞세웠다. 뒤는 신경 쓰지 말고 누나 컨디션에 맞춰 천천히 가라고.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며. 경치 유람이나 하면서 음악에 빠져 유유자적하기로 작정했다. 내려오는 길에 말에 올라타 철의 십자가를 향해 거슬러 오르는 순례자를 지나쳤다. 처음 보는 생경한 광경이다. 중세 때는 수종이 이끄는 말을 타고 순례하는 게 흔한 풍경이었을 텐데.
정오가 되기 전, 엘 아세보에 도착했다. 갈 길이 아직 멀어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누나가 다리를 절뚝인 지 오래다. 이왕 쉬는 거 제대로 쉬어 가자 했다. 한갓진 이별의 오찬을 마쳤다. 중세풍 물씬한 고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헤어짐을 증거 했다. 처음 만날 당시보다 별내댁 컨디션이 나아져 다행이었다. 스승의 고절한 학문을 전수받아 하산하려는 제자를 떠나보내는 사부의 심정이 이런 걸까? 혼자 사뿐히 내려가는 모습이 뿌듯했다.끝까지 무사히 부엔 까미노 하리라 믿었다. 별내댁을 먼저 보낸 다음 천천히 목적지를 향했다.
능선을 타다 엘 아세보와 몰리나세카를 향하는 내리막 길을 걸었다. 누나는 점점 걷는 게 힘들어 보였다. 아픈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속에서 얼마나 고통을 참았을런지.
뒤에서 보기에도 누나는 하산길을 버거워했다. 왼 무릎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절뚝거린다. 너덜길이라 발 딛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스틱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귀국 후 한참이 지나 그날사정을 정리한 누나의 블로그를 봤다. 누나는 무릎이 아프기 전까지 별 고생이 없어 자만했던 자신을 자신을 반성하며 걸었다. 그저 무사히 마을까지만 내려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픈 왼 다리로 너덜길에 부대끼는 자갈과 돌을 짚을 때마다 핸디캡을 가진 장애인을 생각했다. 불편함이 주는 고통을 이렇게나마 실감한 후에야 장애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면서. 누나는 그렇게 오후 내내 낮은 곳에 임하기를 다짐하며 스스로 낮추고 낮춰 눈물을 삼킨 채 걸었다.
다행히 더 이상 발걸음을 떼기 어려울 즈음에 몰리나세카에 들어섰다. 이미 기진맥진한 누나에게 숙소까지 마지막 삼백 미터는 넘지 못할 절벽처럼 커다란 절망과 극심한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누나는 간신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빨리 샤워하고 누워 쉬라 했다. 나머지 정리야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며.
출발 무렵에는 컨디션이 양호해 경쾌하게 걸었던 기억된다. 폰세바돈에서 요거트를 먹으며 쉴 때도 그리 불편한 기색이 아니었다. 아마 정상을 향한 능선에서부터 증세가 나빠지기 시작해 철의 십자가를 지나 내려가면서 증세가 악화 일로로 치달았을 것이다. 최악을 향해 시시각각 변하는 무릎을 보며 누나의 기분이 어떻게 변주되었을까 궁금하다. 초반의 경쾌한 발걸음이 빠르고 강렬한 알레그로의 교향곡 1 악장이라면 폰세바돈을 지나 무릎이 아파오던 시기에 아뿔싸 하며 엄습한 불안감은 느리고 서정적인 아다지오 리듬의 2악장에 어울릴 것 같다. 철의 십자가를 넘은 하산길에 점점 최악을 향해 가는 무릎 컨디션은 고통의 절정이긴 하나 3박자의 활기찬 리듬의 미뉴에트로 구성된 3악장이나 에너지 넘치는 마무리 4악장이라 하기엔 무리해 보인다.
내리막 십칠 킬로미터에서 누나는 감정 기복이 무척 심했을 것 같다. 혹시 낙오되는 비상 상황이 오면 어쩌나 불안했을 것이며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산티아고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염려가 컸을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될 거란 희망을 잠시 품었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목적지에 그 희망이 고문당하지는 않았을까?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했다면 교향곡처럼 감정선이 정형적인 흐름을 띨 가능성이 희박했을 것이다. 통증을 느낄 때마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이 온화한 누나 성품의 굴레를 벗어나지는 않았을까?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고통과 불안이 커질수록 점점 고조되다가 격정의 끝에서나락으로떨어지는 것처럼.
겨우 겨우 몰리나세카에 도착했다. 마을이 보이자 사력을 다해 남은 기력을 쥐어짰을 게다. 누나는 낮잠을 즐기는 반려견처럼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세상 모르게 골아떨어졌다.
평소 누나 성정에서 자유로웠다면 즉흥적인 환상곡풍의 자유로운 기악곡, 랩소디에 가까울 것 같다. Queen의 ‘Bohemian rhapsody(163위)’도 누나 기분처럼, 제목처럼 자유분방한 흐름을 띤다. 5분 55초 길이의 이 노래는 다채로운 형식을 띤다. 도입부는 감미롭고 몽환적인 아카펠라로 시작한다. 인트로가 끝날 무렵 피아노 반주가 등장하며 프레디 머큐리의 발라드가 바통을 잇는다. 짧은 기타 솔로 리프를 브라이언 메이가 멋들어지게 소화한 다음 중반부를 화려한 오페라가 장식한다. 후반부는 스래시 메탈의 효시답게 하드락에서 헤비메탈로 절정을 이룬 다음 락발라드와 피아노, 기타 솔로로 아우트로의 대미를 마무리한다. 대체로 평론가들은 이 곡의 스토리에 대해 살인을 저지른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인해 내면의 갈등을 겪는 화자가 자유를 갈망한다는 서사 구조로 해석한다. 노래를 작사작곡한 프레디 머큐리는 사회나 관습이 정한 정형화된 인식과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석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처음 이 노래를 들은 시기가 언젠지 가물가물하다. 학창 시절로만 기억되는데 처음에는 뭐 이런 노래가 다 있나 싶었다. 퀸의 노래 중에서 ‘We will rock you(1977년)’나 ‘I want to break free(1984년)’ 정도가 들을 만했다. 2010년 이후에야 이 노래를 종종 듣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괜찮게 들려서였다. 정신 산란하다며 질색하던 재즈에 귀가 트이기 시작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음악 취향도 자유로워지는가 보다.
Queen - Bohemian Rhapsody(1975년, 163위)
곤히 잠든 누나를 깨워 알베르게 식당에서 만찬을 했다. 앞에 마주 앉은 독일에서 온 십 대로 보이는 여학생도 누나처럼 꽤나 고생했나 보다. 식사하는 내내 얼굴이 밝지 않았다. 혼자 왔다는데 지금 컨디션으로는 좀 더 걷다 포기해야겠다고 한다. 이겨낼 테니 힘내라 격려했지만 듣는 이도 나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하늘을 향해 이 젊은 친구에게 힘과 축복을 주실 것을 기도했다. 저녁을 마칠 즈음에 주인장에게 아이싱할 얼음을 부탁했더니 아이싱 팩을 빌려 준다. 심하게 절뚝이는 누나를 보곤 안주인이 소염제를 발라주었다. 건너편 끝자리에 앉아 있던 한국인 일행 중에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도 며칠 동안 무릎이 아파 고생했다며 사흘 치 분량의 약을 건네주었다. 식사를 같이 했던 외국인들도 저마다 걱정과 위로의 말을 전했다. 누나가 무척 고마워했다. 지치고 아픈 심신에 도움이 되었을 게다. 지금 상태로는 내일 걷기 힘들 것 같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 주님께서 누나와 함께 함께 해주시길 빌었다.
삼주 전에 ‘Suno’에서 AI 플랫폼을 이용해 노래 한 곡을 작곡해 봤다. 치기 가득했던 젊은 시절 겁쟁이 사자였던 나를 돌아보며 만든 노래다. 영어로 작성한 가사를 Chat GPT에서 노래 가사에 적합하도록 다듬어 가사를 완성한 다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설정해 만들었다. 요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제법 신나는 리듬이 들어줄 만하다. 진즉에 만들었으면 노래 가사를 조약돌에 적어 철의 십자가에 묻었을 것 같다. 그날 몹시 지치고 아팠던 누나에게 힘내라 들려주었을 것이고. 고음질이 아닌 MP4 형식이지만 킬링타임용으로 들어보십사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