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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Mar 24. 2023

[2] 미뤄진 순례일정 : 섭리와 계시 사이

예기치 않은 입원이 나를 돌아보게 하다

  한국거래소(옛 증권거래소) 맞은편에 있던 여의도 우체국을 재건축한 빌딩이 여의도 포스트타워다. 이 건물 지하 1층에는 제주 3대 해장국집 중 하나인 ‘제주은희네 해장국’이 있다. 적당한 가격과 매큼한 맛이 일품이어서 주중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지난 2월 중하순경 이 식당에서 점심을 두 번 했다. 두 번째 식사를 한 다음 날인 토요일, 친한 후배와 불암산과 수락산 둘레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이상증상을 느껴 바로 귀가했는데 일요일까지 심상찮은 증세가 이어져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 갔다. 3 일간 응급실만 세 차례 들락날락한 끝에  입원을 하였고 응급실 포함하여 근 일주일 병원신세를 졌다. 내 성격을 아는 눈치 빠른 이라면 식중독 때문이 아님을 어림 짐작했을 것이다. 설령 식중독에 걸렸다 해도 식당의 실명을 거론할 성정이 못됨을 알고 있을 테니. 예기치 못한 입원은 오롯이 나로부터 발생한 사단이다.


원인은 위장 출혈이었다. 오래전에 위 천공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수년에 한 번씩 수술부위 근처에서 출혈이 발생하곤 했다. 그때마다 수술받았던 서울대 병원 응급실을 갔다. 정상 조직보다 약한 수술부위 근처에서 스트레스, 음주, 부적절한 식습관 등으로 말미암아 궤양이 생겨 미세한(때론 경미한) 출혈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정도가 더 심했다. 출혈로 인한 빈혈 증상까지 겹쳐 그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수혈을 3 차례나 받았으니 말이다. 이제 위장약을 정기 복용하지 않고 불편할 때만 먹으라는 주치의의 진단에 작년 초까지 근 2~3년간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다가 조금씩 음주량을 늘려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입원 전까지 매주 와인 3/4 병 분량을 마신 게 결정타였다고 추측된다. 거기에 덤으로 매일같이 커피를 최소 3~4잔 이상을 마셔댔으니 탈이 안 날 수 없었던 터였다. 퇴원 후 첫 외래 진료에서 주치의가 이렇게 말했다.


“그간 나아지고 있어 용량을 줄여나가 간헐적으로 복용하면 된다고 판단했는데 이제 위장약을 평생 복용해야겠습니다. 금주도 평생 하셔야 하고요.”


나는 주치의 처방에 크게 실망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그건 당장 중요치 않았다. 주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2016년에 안나프루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8개월 앞두고 출혈이 재발했을 당시 주치의가 반대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교수님, 그런데 제가 다음 달부터 두 달가량 해외여행을 가서 많이 걸어야 하는데 여행 가도 될까요?”


오랫동안 꿈꿔왔던 산티아고 순례를 4월 10일에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처방약만 잘 챙겨 가라는 답을 얻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정작 퇴원한 다음에 내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3월 3일 저녁에 퇴원하여 불과 한 달하고 일주일이 남은 상태였다. 미음과 죽 같은 회복식을 일주일 가량 먹어야 하는 걸 감안하면 회복에 주어진 시간이 딱 한 달에 불과했다. 보행 속도가 남들에 비해 빠른 편이었는데 일상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평지를 걷는 속도가 연세 많은 분들보다 느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3월 10일, 그러니까 퇴원한 지 정확히 일주일 되던 날 점심시간에 여의도 반바퀴를 돌았고 퇴근길엔 여의도에서 집까지 걸어왔다. 이날 하루 12km를 걸었는데 크게 불편한 게 없었다. 토요일에는 하쿠와 타타(내가 모시는 개냥이들)와 반나절을 보내고 나선 느지막하게 이촌-반포한강공원 13km를 산책했다. 전날과 비슷했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예정대로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나를 점차 고무시켰다.


그런데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퇴원한 주말에 바로 배낭을 꾸리던 내 모습에 기분이 상했던 아내가 일주일 이상 꾹 참다가 드디어 한 마디 했다.


“나는 반대야. 오빠. 걷다가 또 출혈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퇴원한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거잖아. 40일 내내 염려할 내 입장을 생각한 적 있어? 적어도 올 가을이나 내년에 가야 하는 거 아냐? 오빠 주위 지인들에게 물어봐. 다들 제정신 아니라고 할 거야”


주치의한테 산티아고 순례를 간다고 다시 한번 문의해 보겠으며, 지인들에게도 물어보마 하고 모기 소리처럼 조그맣고 소심하게 답하며 갑작스러운 봉변에서 헤어 나오려 발버둥 친 게 다였다.


아내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 나서야 그동안 애써 잊으려 했던 분란의 본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산티아고 길을 무난히 걸을 수 있을까? 한 달 동안 회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과연 예전 같은 체력으로 힘들지 않게 갈 수 있을까? 지금 미루면 동행하기로 한 둘째 누나한테 미안하거니와 1, 2년 내로 산티아고행을 도모할 수 없을 텐데 이대로 미루는 게 맞는 건가? 마음 한편에서 아내가 이리 걱정하니 일단 미루자고 갈등하는 와중에 또 다른 한편에선 그래도 별 탈없이 완주할 수 있을 거야, 주치의만 반대하지 않으면 다녀 오자는 유혹이 일었다.


문득 내가 처한 상황이 마치 하늘이 내린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내 안 걸리던 코로나가 1월에 걸렸을 때만 해도 현지에서 코로나 걱정할 필요 없어 다행이라 웃어넘겼다. 그런데 수년에 한 번 발생하는 위장 출혈이 하필 대장정을 코 앞에 둔 지금 일어난 이 비상 상황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코로나 확진과 장출혈 입원이 혹시 순례를 미루거나 취소하라는 신의 섭리일지 모른다 여겼다. 이미 정해진 뜻인 섭리는 아픈 몸을 돌보라는 뜻도 함께 가진다. 병약해진 몸을 정양하여 회복하라는 신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순응의 아쉬움이 커질 즈음이면 반대급부로 코로나와 급작스런 입원은 산티아고 순례를 평탄하게 하지 말라며 진정한 순례의 고행을 체험하라는 절대자의 계시일 수도 있다는 단호한 결의가 동시에 불처럼 일어났다. 어리석은 탓에 신의 섭리와 절대자의 계시 중 어떤 카드를 선택할지 장고를 해봐도 답을 구하기 어려웠다.


약간의 결정 장애를 가진 나로선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셈이다. 펜을 들었다. A4지 하얀 백지에 두 개의 선을 그어 3 등분했다. 1. 연기, 2. 일정 부분변경. 3. 기존 일정 고수. 주치의 권고와 지인들의 조언을 참고 삼아 세 가지 대안이 갖는 장점과 단점을 떠오르는 대로 하나씩 적어나갔다. 여백을 채워나가는 와중에 불현듯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선택은 홀로 결정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일지 모르지만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며 아껴주는 아내와 주위 사람들이 내 주위로 한가득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아내 외에도 가지 말라는 이들이 절반을 조금 넘긴 상황에서 예정대로 떠나는 건 다소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6개월, 1년을 미루는 일 또한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니 몸을 조금 더 추스를 시간만 갖자고 결정하였다. 어찌 보면 섭리와 계시 사이에서 어정쩡한 타협을 선택한 것이다. 두 달을 미루면 6월 출발인데 6~7월은 태양의 나라 스페인이 태양으로 활활 타오를 시기이다. 최종적으로 원래 계획보다 한 달을 미뤄 적당히 날 좋을 5월 8일에 순례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번 순례를 준비하면서 43일 여정을 엑셀 스프레드 시트에 정리해 놓았다. 돌발 사태를 대비하여 카페와 구글에서 필요 이상으로 정보를 찾아 일목요연하게 분류하여 플랜 B까지 염두에 두고 작성하였다. 공들인 파일을 보고 있자면 큰 변수 없이 평온하게 순례를 마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순례를 연기하기로 결심한 이번 주에 엑셀 파일에 기록된 일정을 하나씩 체크해 가며 항공편을 변경하고 열차표를 취소 후 새로 예약했다. 순례를 시작한 첫 3일 동안 머물 숙소 예약도 순차적으로 취소하거나 조정했다. 작년 3개월을 기다린 끝에 공들여 예약한 피레네 산맥에서의 하루가 허무하게 날아갔지만 순조롭게 일정 조정을 마칠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는 여행의 한 부류이다. 집을 나서 어디로 떠나는 여행은 여행자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 저마다 구체적인 목적과 이유가 다르겠지만 두리뭉실하게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보거나(혹은 찾거나) 무언가의 깨달음을 원할 것이다. 여행자는 그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만족할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 역시 순례자마다 길을 나선 이유가 다를 텐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완주하고 무리 없이 순탄한 여정을 기대하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공통사항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순례를 하는 우리가 깨닫지 못한 점이 있다. 계획한 대로 무리 없고 변수가 없는 순탄한 여정이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 매우 밋밋하여 결국 되돌아보면 그리 기억에 생생히 남지 않을 순례길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고프로를 준비하고 핸드폰 동영상 촬영에 분주한 지 모른다. 뭐라도 찍어놔야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범생 같은 추억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


나 역시 달갑지 않은 난처함과 실패를 겪고 싶지 않아 엑셀 파일 준비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준비한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처럼 미래는 불확실하고 미정인데 현재의 내가 미리 마음 졸일 필요가 있을까 한다. 순례를 하는데 없어서 후회할 것들만 준비하고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 걱정은 쓰레기 치우듯 구석에 몰아놓고 매일매일 일어나는 상황의 민낯을 즐기고 싶다. 그것이 즐거운 일이던 애타는 봉변이던. 쓴 만큼 달콤한 추억이 될 것이기에.


순례를 떠난다고 하면 주위에서 묻는다.


“왜 가는데?”, “800km를 걷는다니 대단하네. 고생하겠네. 나를 찾으러 가나?”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어느 산을 오르던 장거리 종주산행은 언제나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나서기 전에는 재미있는 산행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막상 등반을 시작하면 왜 왔을까 하는 후회를 한 적이 절반이 넘는다. 순례길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모르긴 해도 뭘 찾는다는 인식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유달리 쓸데없는 기우가 한가득인 나는 어쩌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순례길을 자청했을지 모른다. 분초를 다투며 변하는 주가와 조변석개하는 시장 컨센서스에 기진맥진한 나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잊게 해 주리라는 섣부른 희망 하나만을 믿은 채로. 메세타 초원을 보고 말겠다는 순례의 외피적 목표와는 별개로 내 심연은 나를 찾는 게 아니라 나를 잠시 묻어두고 망각하려는 내피적 목표를 추구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동안 순례 여정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해 왔다. 그런데 이번 주에 오리손 알베르게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오리손 측과 제법 분란이 있었다. 내가 페이팔에 문제 제기를 하여 클레임으로 진행된 끝에 오리손에 귀책사유가 있다는 판정을 받아 페널티 없이 예약을 취소하였다. 카페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어느 회원이 조급한 한국과 느긋한 유럽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라는 조언을 했다. 오리손이 다른 숙소처럼 하루 만에 답을 줘야 할 까닭은 없다. 동의한다. 그러나 숙박업이란 서비스의 특성상 며칠 동안 일언반구 없는 고객 응대란 있어서는 안 된다. 시시콜콜하게 갈등의 전모를 적고 싶지는 않지만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오리손의 마지막 피드백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갖고 있던 오리손에 대한 긍정적 환상이 산산조각 났다.


“변경을 원하는 일자가 풀 부킹되어 바꿀 수 없으니 예약을 취소한다.”


수시로 확인한 예약 시스템에서 내가 희망한 그날은 여전히 예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리손은 아마도 나를 블랙 컨슈머로 간주한 모양이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에 신뢰와 환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행자는 현지인에게 충분한 신뢰를 보이고 현지인은 이를 바탕으로 환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페와 카카오톡 순례 준비자 단톡방에서 오리손의 늦장 대응과 불안한 예약 시스템을 호소하는 이들이 꽤 있다. 또한 구글에서 주인장의 불친절한 서비스를 힐난하는 평을 간혹 본 적 있다. 나는 이런 케이스를 보며 내심 오리손의 서비스를 불신했을 것이다. 오리손은 이런 나의 재촉을 성가셔하며 환대하지 않고 짜증으로 대했을 공산이 크다.


뒤늦은 코로나 확진, 예기치 못한 출혈과 입원, 오리손 예약 분쟁까지, 순례를 준비하는 가운데 생각지 못한 차질이자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5월이 되어 순례를 시작하면 이것들은 모두가 과거의 후회로 남을 것이고 순례 여정에서 겪게 될 돌발 변수와 어려움은 불안한 고행이자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다가올 일들이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리 해결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다. 잠시 접어둔 채 꼭 필요한 장비와 물품만으로 나를 잊는 순례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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