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언니와 Y 파리에 오다

by 다나 김선자



아침에 내린 비로 집 안팎이 곰팡이처럼 눅눅하다. 아직 10월이 되려면 5일이나 남았지만 결국 보일러를 틀었다. 해마다 보일러를 켜는 날짜가 내 사라지는 검정 머리카락 속도만큼 빨라진다.

조용한 실내에서 감미롭게 흐르는 리듬을 타고 내 마음에서 바람이 분다.

아뜰리에 남쪽 큰 유리문으로 바라보는 정원 저 끝에서도 가느다란 바람이 부는지, 여름 내내 자라서 사방팔방 뻗친 나뭇가지들이 소리 없이 살랑인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 실려 온 바람일까? 소나타 따라 움직이는 가벼운 몸짓 같다.

어느새 콤팩트디스크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이 강렬하고 빠르게 바뀌는데, 밖에서도 늑대들이 달려오나 우우~웅 거리며 지붕을 맴도는 소리, 갑자기 바람이 거세진다.

나뭇가지가 휘청거리며 미친 듯이 춤을 춘다.


M 언니와 Y을 만나고 온 다음날 아침이다.

눅눅한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에도 물기가 잔뜩 머금었다. 쓰린 위장처럼 짜릿하면서도 잔잔하게 울렁인다. 기쁨과 동시에 아쉬움이고 미련이다.

바람이 심장을 뚫고 쌩하니 지나간다.


M 언니 표현대로 "오늘 또 보면, 미련만 더 남고 아쉬움만 더욱 짙어지겠지"


어제는 우리들의 대학시절에서 여기까지 온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짤막한 시간을 함께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공을 떠난 그 어떤 것들 보다도 진정한 심미적 열정을 가졌다.

M 언니와 나는 같은 대학 미술학과 동창이다. 또래들보다 몇 살 위인 언니는 과 대표를 맡고 있어 우리는 나이 많은 과 대표 언니로 깍듯이 대했었다 그리고 내게는 조용하고 친절한 언니로도 기억된다. 수십 년 서로 소식 없이 지내다가, S 언니를 통해 우연히 소식이 닿았고, 마침내 남편과 내가 재작년 작품 전시하러 서울에 갔다가, 우리들의 뜻깊은 재회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M 언니와 그녀의 딸 Y가 파리에 왔다.


퐁피듀센터 앞에서 몇십 분을 안절부절 마음 조이며 애타게 기다렸던 그 순간, 혹시나 만남이 엇갈려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마냥 길게만 느껴지던 조바심 나는 기다림의 시간이, 만나자마자 찰나에 불가했음을, 우리들의 감상적인 의식도 부자연스러움 없이 이루어졌다. 차고 습한 내 작은 손이 M 언니의 따뜻한 손안에 들어갔을 때, 그 안락함과 파리에서 동성끼리임에도 두 손을 꼭 움켜쥐고 걸을 때의 편안함은, 비로소 고향을 찾은 듯, 부조리하다고 전혀 느끼 지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파랗게 청명한 하늘이 흰 구름을 뚫고 내비칠 때 부드럽고도 섬세한 햇살이 촉촉한 나무 위에 온화하고도 은혜롭게 드리워지자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우리들의 분위기는 감미롭게 무르익었다.

돋을새김으로 세심하게 조각된 생 쟈크 탑(Tour Saint Jacques)을 올려다보며 Y는 그 늘씬한 체형에 맵시 있게 차려입은 까만색 정장, 함박 한 미소로 다가가는 흰 얼굴에서, 돌출된 하얀 탑과 화사하게도 조화를 이룬다.

파리 센강의 가장 오래된 퐁네프 다리(Pont neuf) 위에서 정취가 있는 센강과 아름다운 주변을 배경으로 우아한 우리들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는 여유로움도 가져본다.


비 온 후의 깨끗하고 화창한 공기를 마시자, 도심의 탁한 매연과 냄새에 민감했던 M 언니의 몸상태는 드디어 호전되고, 이제야 파리의 운치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는 센 강을 건너서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갇혀있었던 원형 지붕의 콩시에주리(Conciergerie)를 바라보며, 중세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음울한 역사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법원 건물 철장에 금박 칠한 정문 앞을 지날 때는, 건너편에 있는 파리 경시청을 가리켜 내가 파리에서 첫 체류 증명을 했었던 곳이라고 시시콜콜 설명까지 덧붙였다.


생샤뻴(Sainte Chapelle) 앞에서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입장하겠다는 Y에게 부족한 시간을 변명으로 불가부득 만류한다. 어쩌면 Y의 심미적 취향을 저버리는 가벼운 처사가 아니었는지 심한 후회를 남겨, 다음 기회가 필히 주어지기를 꼭 기다릴 것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얼마 전 대형 화제로 우리 모두의 정신적 문화유산이 엄청나게 손실된, 참담한 역사의 현장으로 변한, 노트 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마저도 멀찍이서 바라보게끔 했었던 내 이 어리섞은 용단과 더할 수 없는 미숙함에 돌이킬 수 없는 서글픈 미련을 남긴다. 이렇게 우리들은 시테섬(ile-de-la Cité)을 마치 지도 위에서 눈으로 훑듯이 살포시 가볍게 걷었다.


생미셀 다리를 건너면 학교가 밀집된 구역이자, 중세 때 이곳에 살았던 지성인들이 라틴어를 사용했다 하여 불리는 라틴가(le Quartier latin)로 들어선다.

사자의 머리에 양의 몸통과 용의 꼬리를 가진 미셀(Miche, 미카엘)과 독수리와 사자를 합친 전설의 동물 그리퐁(Griffon)이 뿜어내는 분수가 있고, 일명 <만남의 광장>이라고도 하여 늘 젊은 남녀들로 붐비는 생미셀 광장(Place Saint Michel)에서 또 몇 컷의 사진으로 추억이 될 오늘을 주워 담는다.

라틴가 먹자골목에 늘어선 각국의 다양한 음식점 앞을 지나면서 현지인도 아니고, 여행객들이 맛보다 가까이서 쉽게 찾을 수 있기에 붐비는 곳이라며 가차 없이 통과했다. 시간 제약으로 점심을 걸렸다는 M 언니와 Y 배가 무척 고팠을 텐데, 이 거리는 왜 들어섰는지? 파리의 여러 모습을 최대한 소개하고픈 내 욕심과 충동에만 사로잡혀, 그들의 심정을 따지어 구분 못한 건 아닌지? 애써 덮어버린 것은 아니지? 우리는 오직 지정된 장소를 향하여 이 이색적인 음식점들은 곁눈만 주고 잔인하게 가로질렀다.

생 제르맹 대로(Boulevard Saint Germain) 건널목을 건너면 작은 정원을 가로질러 보이는 곳이, 로마시대 공중목욕탕이었다는 중세시대 유적지다. 지금은 그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벽돌 건축물과 그 옆으로 중세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클뤼니 박물관(Musée de Cluny)이 있다.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어 쇠창살 사이로 가만히 유적지를 들어다 보며 각자 회상에 젖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생미셀 대로(Boulevard Saint-Michel)를 걸었다.


걸음 따라 소담스레 주고받는 우리들의 짤막한 문장들이 플라타너스 가지에 걸리어 다시 떨어질 때 즈음에 우리의 발걸음은 소로본 광장(Place de la Sorbonne)에 와 닿았다.

유서 깊은 라틴가(le Quartier latin), 문학과 철학이 숨 쉬는 지성인들의 흔적을 담은 곳, 소로본 대학이 있다. 1971년 파리 국공립대학 개편 이후 그 세력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그 역사가 이어져 오는 소로본 대학과 광장을 마주하여, 건물 중앙으로 굳게 닫힌 아름다운 바로크식 소로본 성당(La chapelle de la Sorbonne) 정면이 보이고, 광장 가운데에는 소박한 분수대와 가장자리로 보리수나무들이 무성히 드리워져 조용하며 운치가 있는 곳이다.

여기 레스토랑 겸 카페 빠시오(Brasserie Les Patios)에서 우리들의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예전에 먹어본 피자맛이 나쁘지 않았다는 기억과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내 남편과 내가 가끔 찾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의 빠베(le Pavé) 위에는 카페의 야천 천막이 비에 젖어 어설프게 축 늘어진 채 서 있고, 나무에서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 왁자지껄 사람들 소리에 엉켜 지붕 위로 사라진다. 천막을 비껴 나 소원해진 빈 탁자들 위에서는 투명한 물방울들이 몽글몽글 설레발 한다.

비가 또다시 내릴지도 모르니, 우리는 아예 실내 창쪽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명 언니와 용은 탁자를 두고 마주하여 창가에, 나는 명 언니 곁에 앉았다. 창밖의 풍경은 관심 밖으로 멀찍이 밀려나고, 웅성 되는 카페 손님들 소리도 귀전에서 맴돌다 사위어 간다. 오직 우리들의 뜨거운 대화만이 빈 테이블에 채워지는 음식들 만큼이나 수북이 쌓인다.


이제 20대 중반에 불과한 Y의 독립성과 기민성, 폭넓은 비전에 찬사를 보내고, 엄마 친구인 나와의 첫 만남에서도 서슴없이 이모라 부르는 그녀의 친근한 사교성에 시대를 망라하여 은밀하게도 서로가 통감하는 친구 같은 M 언니의 딸. 레몬 에이드 같이 상큼하고 시드르처럼 감미로운 성격에 붉고 투명한 까시스 키르같은 아름다운 Y. 그녀는 M 언니를 나에게 고스란히 내어주고, 우리들의 긴밀한 일치감도 살짝 접어둔 채, 비즈니스를 위해 약속 장소로 떠났다.


처음으로 맞아보는 M 언니와의 오롯한 시간, 깊숙한 대화 속에 빠져 저녁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게, 나는 언니의 들꽃같이 섬세하고 은근한 인간미에 빠져 버린다. 식어가는 음식처럼 시간도 속절없이 흘러가고, 이 짧게만 느껴지는 저녁이 마냥 원망스럽다. 파리의 저녁 정취만큼이나 우리들의 진정한 만남의 끝이 다가와, 아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교차 길 어귀에 이르러 팡데옹(Panthéon) 돔 지붕을 멀치감치에서 그 윤곽만 어림잡아보고, 어둠에 잠긴 룩셈부르크 공원(Jardin du Luxembourg)은 굳게 닫힌 밤의 철장 너머로 그 분위기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여 시선을 밀어 넣어 본다.

내 가슴 한편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서운함을 억지로 감추고, 서둘러 생 미셀(Saint Michel)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M 언니와 나는 언니와 Y의 파리 여행에 마지막 밤을 지낼 호텔로 향하는 96번 버스를 탔다.


사실 이날은 프랑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철도회사 파업으로 늦은 밤에는 열차 운행에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미리 알림을 들은 바 있었으나, 공연스레 나를 걱정하는 M 언니의 조이는 마음을 보는 게 부질없다 여겼고, 이로 인하여 우리만의 시간에 흠집 나는 게 싫어서 말은 아꼈지만, 서두르는 내 모습에서 혹여나 어떠한 불쾌감을 주지는 않을지, 나의 서두름이 드러나거나, 눈치라도 채지 않을까 내심 조바심을 가졌었다. 다행히도 언니를 무사히 호텔 안으로 들어 보내고, 나 역시 무리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쉬움만큼이나 밤은 짙어졌고, Y의 전화를 받는다.

안녕 Y, 잘 자.

좋은 꿈 꿔요 언니.

그리고 잘 가요!

Au revoir, à très bientô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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