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소시지와 쌀국수

아시아 음식 예찬

by 다나 김선자



이천이십 년 시월 사일

쌀쌀한 일요일, 몽모홍시 광장에 노천 장이 서는 날, 벌써 삼 주째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던 비가 친절하게도 그쳤다. 그렇다고 햇살까지 찾아온 건 아니다. 은빛 하늘은 전형적인 프랑스 북쪽 계절 날씨다. 비가 내린 후에는 영락없이 기온도 뚝뚝 떨어진다. 창밖으로 내려다본 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다. 털 달린 겨울 외투를 입고도 자라목처럼 움츠린 그들의 모습에서 덜컹 내 심장이 오므라든다. 설마 가을을 뛰어넘어 겨울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겠지? 가을 옷도 충분히 꺼내놓지 않은 탓에 여름옷을 겹쳐서 얇은 망토 하나로 버티는데, 신발도 여름에 신던 그대로 겨우 발등만 감싸고 걸어 다니는데 벌써 겨울이라니! 공사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구월 이어 시월 날씨가 어쩌면 작년 가을을 똑 닮아가는지, 그때의 몹쓸 현상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홀랑 가호스(Roland Garros) 프랑스 세계 테니스 경기 징크스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일까?

해마다 6월에 열던 경기를 코비 19로 인해 올해는 가을로 미뤄졌는데, 요사스럽게 이 날을 잊지도 않고 경기 열리는 내내 비를 뿌린다. 구월 초엽만 해도 여름이 되돌아왔나 싶도록 높은 기온에 멀쩡하던 하늘이 경기 시작과 동시에 줄기차게 내린 비가 우연치고는 참으로 숙명 같은 홀랑 가호스(Roland Garros) 아닌가?

우리의 몽모홍시 벨뷰 아파트에서 일요일은 피자 먹는 날이다. 그런데 공사가 길어지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도 정비례되었는지, 일요일까지 기다리기가 노동만큼 힘들어, 어제저녁 퇴근길 광장 초입에 자리 잡아 즉석에서 구워낸 따끈한 피자를 즉흥적으로 주문해서 먹었다.

어제 이어 피자를 또 먹기가 거북한 우리는 일요일 의례를 접어두고 남편은 광장 귀퉁이에 장을 펼친 라오스 요리를 사들고 왔다. 우리가 일요일 아침마다 망원경을 들고 시장 나온 장사꾼들의 종류를 살펴본 바, 어느 날 라오스 음식 차를 목격하고서는 반가운 마음에서 언젠가 꼭 먹어보기로 했었다. 그 기다리던 날이 금세 오늘이 되었다.

우리의 점심 메뉴는 라오스식 소시지와 돼지고기 절임을 곁들인 쌀국수다. 식당도 아닌데, 투자에 비해, 음식값이 비싸기는 했지만 맛은 좋았다. 톡 쏘는듯한 산초 향과 각종 향신료, 적당히 매운맛에 코코넛의 부드러운 향이 잘 어우러진, 기름지거나 밋밋하지 않은 가정식 풍미 있는 요리다.

남편은 라오스 음식에 대한 예찬이 쏟아진다. 그가 아시아 곳곳을 여행하면서 뜨듯하게 참 잘 먹었다고 기억되는 여러 나라 음식들 중 한 종류다.

그 이후에도 남편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직접 응용한 라오스식 생선 요리를 자주 만들어 내놓았단다. 라오스 음식의 특징은 아시아 북쪽 나라 요리와 다른 더운 지방의 특유한 향기와 관능적인 맛이 있다. 매콤하지만 코코넛의 깊고 부드러움과 굵게 간 땅콩을 뿌려 고소함으로 중화시켜 거기에 정염적인 향채까지...


내 남편 A는 바게트(baguette, 길쭉한 빵)나 각종 빵, 포마쥬(fromage, 치즈)를 비롯한 프랑스 음식도 열렬히 좋아하지만, 아시아 나라를 다니면서 먹었던 음식들에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진수성찬임에도 불구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었던 배낭여행의 참맛이 내포된 까닭이기도 하다.

내가 남편과 만났던 첫날에 우리가 먹었던 것도 파리 13구 중국촌의 베트남 쌀국수였다. 그 첫 만남에서, 나는 '이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열린 참다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 날, 그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가까운 중국식당으로 갔다. 우리가 만난 목적은 다름 아닌, 내 논문 교정을 그에게 부탁하기 위한 것이므로, 내 상식과 사고로는 당연지사 내가 그를 초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쌀국수를 먹었고, 그가 국수값을 내겠다고 해서, "아니다, 내가 내야 한다"라고 말하자, 그가 했던 말이 "한국에서 강이 나를 초대했다, 그러니까 여기 프랑스에서는 내가 내야 한다"라고 하지 않는가?

강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내 대학 선배다. 그 선배는 내가 프랑스 유학 올 당시, 지금의 내 남편 연락처를 주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 그에게 요청하면 서슴없이 힘이 되어줄 것이다고 했었다. 그래서 내가 큰 부담 없이 그에게 도움을 청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이 쉽게 만나 가까워진 동기가 됐던 것이다.

솔직이 내가 그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그가 국숫집에 나를 초대해서 쌀국수값을 지불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한국적 정서와 의리, 인색하지 않은 너그러운 그의 열린 심성에 홀린 것이다. 그리고 거부감 없이 아시아 음식을 나보다 더 좋아하던 편견 없는 문화인다운 그 모습이었다.


그 당시 한국 유학생끼리 화제로 오가던 문화 차이에 관한 주제로, 우리의 가십거리나 비난으로 자주 사용했던, 하도 들어서 뇌리에 쏙 박힌 불어 단어가 <빡따제, partager>*였는데, 정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매양 낯설고 무정하게만 느껴졌다. 학업보다 더 힘들었던 삶의 방식과 차이, 그 가운데 콕 집히는 차갑고 냉정함이 묻어난 이 단어. 내가 가장 먼저 배운 프랑스 문화였다.

* 나누다, 분배하다, 분할하다, 함께하다, 공유하다 는 뜻임

이 단어가 주는 해석과 뜻이 다양하여, 경우에 따라 공유, 분배, 나눈다는 따뜻한 의미로도 널리 쓰이지만, <자기 몫은 자기가 지불한다>처럼 때론 삭막하고 메마른 느낌에 나에게는 왠지 싸늘한 기분까지 드는, 그래서 참 어색했다.

기분 좋게 한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잔, 밥 한 끼 먹고 난 후, 일 쌍띰(centime:프랑스 동전의 가장 적은 수)까지 어긋남 없이 정확히 계산, 분배되어 각자의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동전, 지폐들은 마치 파리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같았지만, 그들에게서는 아주 편안한 모습이라 더욱 낯설어 껄끄러웠다. 흡사 꼭 끼는 바지의 비좁은 호주머니처럼 매정하고 야박하게도 느껴졌다.

그랬던 나 역시, 지금은 이 행위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익숙되었고, 오히려 갈등 없이 깔끔하기도, 편하게도 여겨진다. 하지만, 모두가 완전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놓인 조건이나 사정, 형편에 따라 때때로 특별한 예외가 있기도 마련이며, 프랑스에서도 의외로 많다.

오늘날은 서양문화가 스며든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서도 가끔 목격된다고는 하지만, 내가 살던 시절에만 해도 한국인의 정은 우리의 살아가는 힘이며, 그 훈훈한 에피소드가 해외 나와서도 큰 자랑거리였다. 그런 한국 정서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우리에게 <빡따제>는 프랑스인들에게서 자그마치 외면받는 느낌으로 다가온 쓸쓸한 처사였다.

그런 나의 유학 초기에 내 남편 A가 보여준 행동은 그동안 내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프랑스의 무정한 문화가 아니라서 더욱 따뜻하고 값지게도 느껴졌다. 물론 내가 그에게 반한 결정적인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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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혼한 이후에도 시시로 뜨뜻한 베트남 쌀국수 한 그릇 먹고, 돼지고기나 오리고기 절임, 브리오슈(brioche, 일종에 고기, 야채 호빵)를 사들고 오기도 했다. 내 남편 A는 미국 유학시절 헐렁한 호주머니 사정으로 싸고 큼직한 브리오슈를 자주자주 먹었다며, 그때 먹은 브리오슈 맛을 여태 내려놓지 않고 아득한 그 시절을 꿈처럼 회상하기도 한다. 당시의 그 경험이 지금까지 그를 아시아 음식에 길들고 익숙되게, 그리고 애호(좋아하고 사랑함)하게 했다. 그는 쌀밥에 간장을 뿌려 먹는걸, 내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거보다도 더 즐겨 먹는다.


나에게도 남중국과 동남아시아 요리에 대한 유사한 경험이 있다. 물건값이 싸면서도 아시아 식료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파리 13구 뽀으뜨 디브리(porte d'lvry)에 있는 중국 대형 슈퍼마켓이다. 나는 파리 도착 초기에, 친구 따라갔다가 민트와 꼬리옹드르(coriandre, 고수)를 포함한 각종 남방의 강하고 격한 향신료 냄새가 역겨워서 뛰쳐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내게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나쁜 편견과 먹어보거나, 접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음식과 향신료들은 나에게 일편 지견의 원인이 되었다. 참 어리섞고, 어이없게도 이 이국적인 향내가 초라함과 지저분함, 천박함으로 연결시켜 한동안 발걸음이 뜸하다가 남편 따라 한번, 두 번 따라다니면서 이제는 그 맛이 그리워지기도, 내 텃밭에서 키워 먹을 정도다.

문화는 이렇게 자주 접하고 습득, 경험하면서 익숙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행이 큰 몫을 차지하기도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는 다른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열린 사고와 이국 정취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동반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내 남편을 좋아하는 큰 이유 중 또 하나가 그의 여행과 경험으로 통해 얻은 지식과 습성, 열린 정신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세계인, 문화인을 좋아한다.


이렇듯 마라톤 경주 같이 기나긴 집 공사로 우리의 지치고 고달픈 시간 가운데서 라오스 쌀국수 한 그릇에 돼지고기 절임과 소시지 덕분에 옛 추억을 더듬어 회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공사가 끝난 후, 어디로 떠날까? 끌리는 여행지를 골라 미리 상상하기도, 그곳에서 무슨 음식들을 먹을까? 막연한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하면서 지금의 힘들고 고됨을 더불어 위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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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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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오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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