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하면서 겪는 어려움
이천이십 년 구월 사일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공사현장 분위기가 냉랭하다.
자초지종 내용을 듣고 종합한 바, 오전 8시 30분 아파트를 나선 남편은 약속시간 그홀레 역에 도착한 일꾼들을 태워 몽모홍시 길에 있는 우리 집 공사현장에다 내려 주고 곧장 재료상으로 갔다. 그가 찾는 물건이 없어 곧바로 돌아온 남편의 눈에 일꾼들은 그때까지 일을 시작도 않고 테라스에서 잡담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남편을 보고서 "아니 금세 돌아왔네"라고 중얼거리며 비로소 주섬주섬 담뱃불을 끄고 일어선다.
그때 남편의 뇌리를 스친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들. '아니 그럼, 내가 늦게 올 줄 알고 여유롭게 담배 피우며 수다까지 떨고 있었다는 것인가? 아침부터...?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당신들을 믿고 간섭도 안 했는데...? 출퇴근 시간도, 임금 지불도 정확하게 지켜주었는데...? 혹시 이번이 처음은 아닐 수도? 내가 재료상을 다니느라 수없이 자리를 비웠는데, 그때마다, 설마...? 이렇게 늑장 부리며 일을 질질 끌고 온 것이었던가? 이건 나쁜 술수이며 속임수잖아?
그동안 우리는 그들을 두고 게으르거나 꾀부리지 않고 마치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진다며 흡족해했다. 이층의 젊은 팀과도 비교되게 성실히 잘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칭찬과 주인으로써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당연히 일에 열중하고 있으리라 의심 없던 남편 마음에 갑자기 돌덩이 같은 의문이 생겨났다. 그래서 그의 불쾌해진 마음에 뼈 있는 진담을 섞은 농담조로 "내 없는 틈을 잘도 이용하고 있군"라며 한마디 급소를 찌르는듯한 말을 던졌다. 그러자 그들도 엉거주춤 뭔가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무슨 뜻인지는 남편이 전혀 이해를 못했단다.
이 팀에게는 이층 팀과 다르게 날삯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시간을 어영부영하게 보낼 수만은 없다. 시간은 돈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품삯도 넉넉히 치른다. 오로지 급료 문제뿐만 아니라 공사일이 고무줄처럼 자꾸만 늘어지면 집주인으로써는 애가 탄다. 공사일이 늦는 만큼 우리 삶도 뒤죽박죽 어긋나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두 분은 중국에서 온 우리 동포다. 한분은 옛날부터 맺은 인연으로 몸도 가볍고 일솜씨나 처리능력이 뛰어난 데다 성격까지 좋아 내 남편이 참 좋아했다. 그 후 그의 전화번호가 몇 번 바뀌어 소식이 끊겼다가,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 우리 집 공사일을 맡게 되었다. 우리도 아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게 된 점에 한시름 놓았고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언어 소통에 문제점을 안고는 있었으나, 유창한 불어 실력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 능력도 있으며, 내부장식일이란 기술과 육체적인 일이지 말이나 이론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는 전제도 있었다. 무엇보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필요한 설명은 내가 통역하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남편 역시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공사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나름 초보 수준은 벗어나 있으며, 특히 요즘은 인터넷에서 웬만한 정보를 찾아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이 전반적인 과정을 완전히 채울 수만은 없었다.
솔직히 남편은 그들을 후대하며 친구처럼 믿고 좋아했다. 권위적 성격이 아닌 내 남편은 일꾼들의 간식을 챙기는 것은 물론 위계 없이 띠뚜와에(tutoyer:반말을 하다, 프랑스에서는 친숙한 의미로써 서로가 말은 놓는다)로 편하게 지내기를 원했다. 일꾼들도 그런 그와 두 달 동안 동향인 같은 관계로 친밀하게 지내왔다.
내 남편 A는 정직하고 정확한 걸 특별히 좋아한다. 물론 내 남편뿐 아니라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곧고 확실한 편이나 내가 보기에 내 남편은 유난히 더 올바르고 어질다. 가끔 너무 올곧어서 '왜 이렇게까지 생각을...? 아무도 모르는데...?' 내가 도리어 그렇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그가 실망하면 상처도 크다.
엎친 데다 덮친 격으로 인터넷마저 작동이 멈췄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 선을 건드렸음에 분명한데, 건든 자는 없다. 그렇다고 선이 저절로 도망갔을 리도 없잖은가? 물론 전혀 없지만은 않을 것이나 지금은 공사 중이다. 약한 선이 저절로 끊어질 수도, 외부 영향으로 고장이 날 수도 있을 테지만, 오히려 공사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합리적 의심이 타당하다. 그런데 누구 한 사람 의구심은커녕 이러한 추측성 발언도 없고 책임 회피만 급거하려는 모습에서 이래저래 내 남편의 심지에 서리가 가득 끼어 이성적 판단까지 흐리게 했다. 따라서 평소 온순하고 따뜻한 그의 태도가 다소 냉정하게 돌변한 계기다.
이때부터 그와 일꾼들 사이에 간극이 생겨났다. 굳이 말다툼 같은 것은 없어도 평소와 달라진 말투에서 이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헤아리거나 짐작하여 각자 나름의 상처를 받은듯했다.
이 무겁게 변한 상황과 그들의 기분을 미처 모르던 나는 도착하자마자 평상시처럼 아주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일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하고 형식적인 질문과 함께 인사를 했다. 보일러 설치 동파이프를 용접하던 연장자 조 선생님은 묵묵하고 팽팽한 분위기에서 혼잣말 같은 대답을 고개도 들지 않고 퉁명스럽게 투덜투덜 내뱉는다. "재활용이라 일이 이렇게 불편하고 더뎌서 시간도 많이 걸린다" " 페인트까지 다 까야하니까 품도 많다"
"아휴,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성원은 했지만, 평소와 달라진 이상한 기류를 느낀 나는 그의 입장에서 한참 동안 그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그렇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여기서 잠시 그들의 의사 표현이 불분명했던 점과 말에 대한 책임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매사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 일에 책임도 다 같이 나눠야 한다. 우리의 애초 생각과 제안에 그도 물론 흔쾌히 동의를 해서 시작됐다. 그의 의견을 무조건 배척하고 우리 고집만 관철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미 뱉은 말이지만 계획이나 생각 또한 바뀐다면 그 역시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 설명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무리 주인과 고용인이라는 조금은 거북하고 껄끄러운 관계일지라도 마음에 불평불만이라는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서로의 정확한 의중을 표현했어야 하고 해야 한다.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재료를 탓하며 주격이 전도되어 본인의 잘못은 덮고 회피하려고도 않을 것이라.
그런데, 아침나절 담배와 수다로 허송했던 언짢은 사건에는 인정도 사과도 한마디 없이 그 실마리가 결국은 재료로 옮겨 붙은 것이다. 그들이 받은 스트레스가 재료를 탓하며 다시 변명이 되어 돌아왔다. 다시 말해서 재료 트집을 삼는다는 것은 주인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뜻하고, 궁극적으로 주인은 몹시 인색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도 물론 내 남편 역시 재활용을 좋아한다. 이것은 우리가 마치 세상을 구할 듯이 지구의 앞날을 위해서? 미래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창한 도덕적인 슬로건이나 환경주의자처럼 큰 뜻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냥 익숙된 우리 삶의 방식이다. 일종에 고유한 성격이라고 해도 좋겠다. 어쩌면 파편 조각 같은 재료를 재 활용해서 미술작업으로 새로운 창작을 하는 우리 직업상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아주 조금 자연환경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면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쓸만한 것마저도 귀찮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 버리고 새것에만 의존, 추구하는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 사실인즉 버리고 새로 구입하는 것도 일인데, 그냥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여 검소한 생활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용상 어려운 문제가 없다면 있는 것은 다시 사용하자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사정을 알고 심사숙고 미루어 보건대, 주인을 고려한 그의 입장에서는 우리와 또 다른 생각의 격차가 있은듯하다. 그가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봅시다"라고 처음 우리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어쩌면 거절하기 불편하고 또 경비절감이라는 주인 입장을 배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역시 까다롭지만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그의 기분에 따뜻한 가을 햇살 같은 행운이 찾아든 날이라면 이 귀찮고 불편한 일에도 '젠장, 다루기가 별스럽군' 이 한마디로 잘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하루는 찌뿌듯한 초겨울 같은 날이다. 인간은 이성뿐만 아니라 복잡 미묘한 감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남편은 물론 그들도 의사소통의 답답함이 무척 힘들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침나절 불쾌했던 일도 유창한 말솜씨라면 오해가 더 가중되고 봉착되기 전에 대화로써 잘 풀어 나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도 왜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영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동안 서로가 나누고 보여줬던 신뢰가 바탕이 되어 진솔한 대화로 풀어나간다면 지금이라도 금방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니까. 다만, 변명이나 거짓말이 아닌 진심으로.
이럴 때 양쪽 의견을 잘 경청하여,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중립적 입장에서 화해와 평화로 이끌어야 하는 내 역할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퇴근 무렵 내 제안에 앞서 남편이 먼저 화해를 원했다. 따라서 내 통역 아래 서로의 문제점들을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권위, 위력 따위 주인이나 일꾼의 우월적 형세를 버리고, 가식 없는 말과 태도로 숨김없이 솔직하게 문제점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해결하려는 의지와 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편이 우선 "오늘 내 못난 태도에 사과한다.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도 "일을 하다 보면 갈등과 의견 충돌은 있기 마련이다, 이제 괜찮다"라고 한다. 나 역시 덧붙여 남편과 일꾼 모두에게 농변 같은 진담으로 "오늘 내 상심과 침체된 기분, 스트레스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그들로 인해 내 피곤했던 하루의 원망을 실은 말마디를 건넨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동안 깔려있던 먹구름을 걷어내었다.
우리는 결국 그들의 고충을 깨닫고, 품 먹는 시간도 따져, 합리적 방법으로 새 동파이프를 사기로 했다.
이천이십 년 구월 구일
조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 찹쌀호떡을 들고 왔다. 그의 부인께서 아침에 만들셨단다. 출근길에 남편이 건네받아 들었을 때까지도 따뜻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나는 공사를 시작하고부터 그가 가끔씩 들고 오는 한국음식을 맛보게 되어 기쁘다. 한국식당에서 주방일을 하는 그의 부인 음식은 국적을 알 수 없는 내 음식과는 다르게 한국 본연의 맛이 난다. 그래서 내 기분도 좋아진다. 얼마 전에는 그가 들고 온 막걸리를 아파트로 가져와 저녁나절 남편과 막걸리 예찬으로 아뻬로 겸 마시는데 갑자기 내 소리 없는 눈물이 술술 쏟아져 내렸다. 분명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삶의 회한 같은 이상야릇하게도 호젓한 기쁨이었다. 막걸리 마시던 친지들과 나의 젊은 시절에 대한, 고국을 향한 내 향수의 맛이고, 눈물이었다.
집 공사로 힘들고 노곤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고 오는 따뜻한 인정과 동포애 덕분에 그리고 평소 그립도록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골고루 먹을 수 있어 나에게는 지금이 아주 특별하고 훈훈한 시간이기도 하다. 내 몸이 흡족하다고 먼저 즐겁게 반응을 한다. 나도 뭔가 보답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