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노트

3. 집 공사가 주는 무게

by 다나 김선자



이천이십 년 팔월 이십사일

회색 구름은 쌀쌀한 바람을 몰고 와 빠르게 가을을 부른다. 밤중에는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잡아당긴다. 내리쬐는 태양볕이 따갑다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무더위로 밤잠을 설친 지가 불과 얼마 전이건만, 벌써 가을이라니, 공기가 어제와는 확연이 다르다. 태양이 대지를 향해 서서히 내려오더니 차츰 낮은 짧아지고 있음도 쉽사리 느낀다. 팔월이 반절로 넘어서면 이곳에는 어김없이 가을 냄새를 풍긴다. 자연은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집 공사가 이제 겨우 절반쯤 닿았는데, 가을 공기 때문에 내 마음이 조급해진다. 서늘한 계절이 오면 영락없이 내 몸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적신호를 울릴 텐데,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버틸 것인지는 예측불가, 근심 걱정이 앞선다.

꾸물하게 흐린 하늘처럼 내 기분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가을 옷도 충분히 꺼내놓지 않았는데, 이러다 겨울을 맞이하는 건 아닐까? 긍정보다 뇌리를 에워싸는 부정적인 생각들. 서늘한 가을 공기는 내 사기마저 크게 꺾어 놓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공사현장을 둘러보니 앞날이 요원하고 암담하다. '여전히 작업실인가? 아직도 고작 여기서 머물고 있다니... ' 공사가 시작된 지 무려 한 달 그리고 반이 지났건만, 전혀 진전이 없어 보인다. 언제 끝날 것인지? 과연 끝은 있는 것인지?

하지만 사실 무근, 이런 내 엉뚱한 생각과는 다르게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왔다. 다만 이 순간만큼 방향 잃은 내 이성으로 갈팡질팡이다. 현실 파악이 어렵고 정확한 사실 여부나 판단력도 흐리다. 기껏 이 정도에서 몇 달 아니 몇 년이 흐른 듯 정신없이 길게도 느껴진다. 내 일상의 모든 고요와 적막이 깨어지고 리듬은 제멋대로, 얼키설키 어수선한 날이다. 나는 지극히도 감정적인 인간이 되었다. 가을 공기 탓일까?

설상가상으로 그때 남편은 "내일 방음 및 단열 벽체마감 재료가 도착하므로 놓을 자리를 지금 마련해 놓아야 한다. 일단 소파와 작업실 짐 일부를 한쪽으로 치우야 한다"라고 말한다. 아니, 말 그대로 공사판이나 다름없는 내 작업실 어디에 그 많은 양의 벽체 마감재를 갖다 놓겠다는 말인가? 작업실 짐과 살림살이까지 뒤죽박죽 포개져 온통 먼지 투성, 이 난장판으로 변해버린 비좁은 공간 어디서 어떻게 빈자리를 찾겠다는 것인지? 비닐을 벗기면 그 많은 먼지는 또 어디로 가겠는가? 먼지 범벅 속에서 포장을 재차 하겠다는 말인가?

내 짜증 섞인 말투가 투덜투덜, 불편한 열이 오르락내리락, 언성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갈피를 못 잡는다.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밖에 둘 수는 없으니까, 혹시라도 비가 오면 어떡해... 아무리 잘 덮는다고 해도 실내만 못하잖아"

나는 반박도 못하고 의기소침해진 마음에서 침울한 탄식만 흘러나온다. 그냥 모든 게 귀찮다.

이 저조된 기분에서 벗어나 보려고 내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고스란히 넘겨 씌운다. 그도 분명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이 모든 게 내 탓인가, 공사 때문이지, 나를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어"라며 다소 높아진 언성으로 말하더니 입을 다문채 더 이상 대꾸조차 않는다. 책망으로 되돌아온 반응에, 내 기분이 해소는커녕 가볍거나 시원하지도 않고 더 무겁기만 했다. 애초에 기대 같은 건 없었지만 그의 뜻하지 않은 반항에 도리어 화가 치민다. 그냥 내 안에서 대책 없이 무작정 솟구치는 못된 성질과 심리적 저항이 내 이성을 지배하겠다고 자꾸만 부추긴다. 이 어지러운 현장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회피하고도 싶었다. 밖으로 나가 작은 텃밭을 한 바퀴 돌았다.

오직 시간만이 해결 가능했던 것일까?

이성을 되찾아 현실을 잠깐 바라보았다. 내가 그를 할퀴어 생채기를 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서로의 힘만 빼고 기개만 꺾는 짓이다. 그도 역시 일에 겨워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그렇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던 중 큰 파도를 만났다. 이 고난을 잘 헤쳐 나가려면 서로 힘 모아 격려하고 의지하는 수밖에 별다른 묘안이 없다. 그래 진정하자. 참고 견뎌보라며 나 자신에게도 부탁했다. 그리고 좌절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이 자리를 잠시 벗어나는 게 서로에게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없어도 된다면, 난 그만 아파트로 돌아갈래"

"그래, 내가 차로 태우다 줄게"

퇴근 후 저녁시간, 아파트로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의 내 우울하고 쇠잔했던 기분을 차분히 토로했다. 그리고서 "아까는 미안했어" 공연스레 짜증 냈던 것을 사과했다. 남편도 충분히 내 기분 이해한다며 용기를 북돋우려 얼음 띄운 잔에 우조를 따른다. 그리고 내 예민해진 감정을 보듬어 위로한다. "조금만 참아, 곧 작업실은 끝날 거야, 공사라는 게 원래가 그래, 언제나 예상한 일정보다 길어지는 게 보편적이고 항다 반사 거던" 그렇게 한잔의 아뻬로는 우리의 긴장을 풀고 진정한 대화는 마음에 안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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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된 내 작업실


이천이십 년 팔월 이십육일

주문했던 벽 마감재료 베아 트레즈(BA 13 )를 실어 나르는 일이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이어졌다. 짐을 실어다 놓고 렌트한 차를 되돌려 주고서야 남편은 한시름을 놓았다. 우리가 찾던 서로 다른 몇 종류의 베아 트레즈 모두가 한 매장에 없었다. 세 군데를 돌아야 구입이 전부 가능했다. 배달료를 절약해 보겠다고 짐차까지 빌렸지만, 이것저것 따져보니 비용은 결국 비슷했다. 괜한 고생을 한 것 같다. 살다 보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이천이십 년 팔월 이십칠일

날씨가 맑고 화창하다. 우울했던 기분도 햇살처럼 밝게 되살아났다. 스트레스와 조급증까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예민했던 반응은 먼지처럼 조금씩 가라앉아 한결 가벼워졌다.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 민감한 나는 그 따라 기분이 흐려지기도 맑아지기도 잘한다. 지극히 나약한 성향인가 보다.

꿈을 꾸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근심 걱정이 꿈속에서 악몽으로 또는 희망으로 찾아왔다. 당연히 밤잠도 설쳤다. 각자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컸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 공사로부터 생겨난 고민임을 깨닫고서 함께 위로했다. 출근해서 현장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개꿈이었음을 확인했다. 한 시름 놓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침에 못다 한 나머지 꿈 줄거리를 공허하게 웃으면서 마저 이어갔다.

텃밭에서 얼갈이배추를 뽑아 나물을 무쳤다. 공사로 인해 물을 자주 주지 못해 야생초같이 억세다. 그러나 남편은 유난히 오늘 점심을 더 맛있게 먹었다고 말한다. 신선하고 깊은 맛의 얼갈이배추 나물 덕분이다. 아니 개꿈 때문인가? 내 기분도 파란 하늘처럼 덩달아 상쾌하다.


이천이십 년 팔월 이십팔일

토요일도 마찬가지 우리는 출근했다.

공사에 관한 일차적인 중간 결산을 해보았다. 공사 기간도 비용도 모든 것이 우리 처음 계획에서 훨씬 벗어났다. 정산 결과는 뻔하게도 초과될 예상이다. 물가 측정치도 예산 책정도 현실에서 빗나갔지만, 사람 욕심이 끝이 없어 새로운 추가 공사를 자꾸 덧붙인 까닭과 원인이다. 공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라고 하지만 어긋난 계획에 썩 상쾌한 기분도 아니다.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름했던 사세한 부분들이 말끔히 단장된 모습에 만족한 마음과 산뜻하게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다. 멋지다. 흡사 내가 미용실 문을 나설 때 모습 같이 집도 생기가 돈다. 집이나 사람이나 손질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이런 것일까? 새삼 사람의 손길이 이렇게 장하고 위대함을 헤아려본다.

남쪽 테라스에서 기세가 한풀 꺾인 햇살을 쬐며 멍하니 앉아 시원스럽게 넓어진 테라스를 쳐다보며 흡족해한다.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외벽 토색이 마음에 쏙 들었다. 연한 오렌지색이 혼합된 짙은 핑크빛, 마치 따스한 지중해 연안에 와 있다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차라리 무화과나무를 잘라내고 오히려 야자수 나무는 그냥 두기로.


이천이십 년 팔월 이십구일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집 안팎으로 치장되는 모습에서 보람이나 즐겁고 행복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으로써는 아주아주 드물게 잠시 잠깐 찾아왔다 어제같이 삽시간에 떠난다. 그러나 힘듦은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거운 피로가 내 육체를 짓누르는 느낌에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 온몸에 덕지덕지 옴벌레가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아, 피곤하구나.

'섣달 고생해서 앞으로의 생을 편안히 지내자'라고 공사 직전에 했던 주문은 벌써부터 금이 가서 '얼마나 좋은 미래를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로 바뀌는 하루다. 공사환경에서 받는 현재의 지배와 그 영향력으로 내 마음은 변덕스러운 파리 날씨보다도 더 간사스럽고도 야박하다.

거두절미 그럼에도 집 공사는 그야말로 우리의 숙원사업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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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간도 한적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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