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공사 일지

1. 나에게 집이란...

by 다나 김선자



이천이십 년 유월 이십일 일

지리멸렬하게 끌던 일 하나가 해결되었다. 썩은 이를 뽑아낸듯한 이 상쾌함.

여러 번 수정 끝에 완성시킨 증축 도면과 상세히 작성한 서류를 첨부해서 시청 관할 부서에 제출한 지 수십일이 지나서야 허가가 나왔다. 프랑스의 느린 행정처리가 우리를 애타게도 했었다. 그리고 공사 들어가기 전에는 허가받은 내용을 패널에 표기하여 한 달간 의무적으로 대문에 붙여 반드시 공고해야 한다. 인근 주민들에게 통보하는 절차이며, 불이익이 따를 수 있겠다 염려되는 이웃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 진행 과정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자가격리가 시작되어 모든 사회 활동이 중단되었고, 예측 불가한 앞날에 시공 회사와의 계약도 지지부진했었다. 결국 우리 계획도 어긋나 무한정 연기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질질 끌며 미루어 오던 계약서에 비로소 오후 나절 서명 날인을 했다.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책을 나갔다. 발걸음도 가볍다. 모든 것이 희망차고 아름답게 보인다. 하늘도 우리 계약을 축복하는지 날씨마저 덩달아 포근하다. 발걸음 따라 목 언저리, 내밀한 겨드랑이 깊은 곳에서 송골송골 끈적한 액체가 솟아난다. 벌써 땀이 나는 계절, 그러나 전혀 불쾌하지가 않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산뜻해서 도리어 시원하다. 몸속에 쌓여있던 근심 걱정과 불안, 초조했던 찝찔한 알맹이들이 말끔히 씻기어 나가는 중이다.

음악소리가 들린다. 예사롭지 않는 솜씨가 분명 전문가의 연주다. 누군가의 집에서 연주가를 초대해서 큰 파티를 여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오늘은 음악축제의 날. 매년 여름이 시작되는 첫날에 프랑스 전 지역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리나 공원, 카페, 공연장은 막론하고 실내외 곳곳에서 장르를 불문하여 다양한 음악이 성대하게 울려 퍼진다.

우리가 그동안 집 공사 문제로 너무 몰두했었나 보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우리는 계약서에 사인한 기념으로 즐거운 마음과 함께 축배의 잔을 들었다. 또한 음악의 날을 위해서도.

결혼 전 음악 축제의 날 남편과 파리 시내를 걸었던 추억도 함께 되뇌며.


이천이십 년 칠월 십사일

저녁 명상시간이다.

갑자기 '꽈광 꽝' 하고 광포한 소리에 쉬이 명상에 들 수가 없다. 집 천정이 무너져 내리는 듯, 마치 심한 폭격이라도 맞은 듯이 요란한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려온다.

아직 공사는 착수도 안 했는데... 무너지더라도 하룻밤은 더 기다려줘야 할 텐데... 쓸데없이 뇌리를 스치는 생각들이 명상을 방해한다.

불꽃놀이, 폭죽 소리다. 오늘은 프랑스혁명 기념일 전야다.

7월 14일 전야와 당일 밤 프랑스 전 도시에서는 일제히 하늘을 향해 힘차게 쏘아 올려 펑펑 터지는 화포 소리와 화려하게 어둠 속에 수놓는 불꽃들이 온 세상을 축복한다.

그렇다. 올해 불꽃축제를 에펠탑 앞에서 보자고 작년 이날 다짐했던 바로 그날이다.

세상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계획대로, 내 생각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게 인생이다. 올해는 에펠탑 불꽃놀이도 방송 화면으로만 즐겨야 한다고 파리시에서 공표했다. 코비 19 때문에 에펠탑 부근 출입이 일절 금지되었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은 오롯이 집안 공사 일에 쏠려있어 불꽃놀이 따윈 잊고 있었다.

특히나 오늘은 우리가 지붕 밑 다락같은 방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이기도 하다.

비록 혁명과 비교 불가하나 우리 삶에 있어서는 직접적으로 그 못지않게 기념적인 결정이었고 드디어 불편함에서도 해방이 보인다. 이 좁고 천정 낮은 다락방에서 보낸 지 20여 년, 젊은 한때 좋았던 적이 없지도 않았으나 지내오는 동안 늘 불편해서 자주 답답함을 호소했는데, 막상 떠나보내려니 애착까지는 아닐지라도 아쉬움이 생겨난다. 그동안 싫든 좋든 나름대로 익숙되어 끈끈한 정마저 들었나 보다.


이천이십 년 칠월 십오일

월요일 설치한 남쪽 테라스 하수도 파이프 기울기가 물이 원활히 흐르기에는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다시 해줄 것을 청했다. 이전 설비에 이어서 맞추려니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기울기가 나오지 않았다. 완벽한 결과를 위해서라면 베란다 시멘트 벽을 뚫어 처리해야 하지만, 불가능할 정도로 단단하여 구멍 내기가 여간 어렵고 힘들어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란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찾았다. 파이프 두께를 얇은 것으로 바꿔 다시 기울기를 조절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일이든 찾으면 길은 있다. 그것이 최선, 차선이냐 또는 차선, 차후의 채택일 뿐이지 방책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단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고 만족감의 차이다. 또한 생각의 깊이에 따라 찾느냐 포기냐 중 어떤 선택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리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공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이 또한 곤란과 힘듦의 한 부분이다.

지붕교체 공사를 맡는 회사에서 대표와 일꾼들이 도착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에샤포다쥬(échafaudage:비계)를 설치한단다. 지붕교체와 더불어 2층 내, 외벽은 모두 목재로 증축되기 때문에 에코 전문 시공업체가 맡았다.

그리고 집 안 남쪽에서는 벌써 10일째 예전부터 인연 있던 두 분이 테라스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의 일 솜씨를 익히 잘 알고 있어 그에게 실내장식 공사를 믿고 맡겼다. 그의 인간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공사 처리능력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내 남편은 이분을 신뢰한다. 물론 경비절감도 있지만, 집 공사란 믿을 수 있는 업체나 사람이어야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공사는 이렇게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따라서 양쪽에서 좋은 파트너가 움직이고 있다고, 우리는 의심 없이 믿고 싶다. 그리고 끝까지 무사 안전하게 완주하기를 기대하면서...

시작은 관대하여 장엄하고도 희망차다.


이천이십 년 칠월 삼십일일

드디어 실내 계단을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정도 거의 끝났다.

파리 남쪽 근교 도시 몽후즈(Montrouge)에 계단 주문 제작하는 전문 회사를 찾았다. 나는 남편이 차를 주차하는 동안 큰 창으로 내비친 제품을 보고선 금방 안심이 되었다. 지난번 대형 회사에서 본 것보다 질과 디자인면에서 월등히 우수하고 전문성도 뚜렷하게 돋보인다. 견고한 쇠의 실재와 동시에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의 가벼움은 디자인의 강점으로 고품격적 우아한 미가 풍겨 난다.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멋진 제품이다.

우리는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된 계단을 두루 훑어보고서 오르고 내리며 실용성과 견고성을 확인한다. 약속한 담당자를 만나서 자세한 설명도 들었다.

역시 일반 전문회사에서 제작된 계단보다 가격은 두배가 넘지만 질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그만큼 납득이 갈 정도 충분히 우세한 제품이다. 회사 사이트 화면상으로 보는 거와 달리 물건을 직접 본 남편은 비로소 설득되어 결국에는 그가 더 좋아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비용면에서 주저했었다. 나 역시 '무슨 계단이 이렇게 비싸?'라고 오감이 저리도록 아찔했다. 그러나 좋은 품질을 보고서 우리는 물러설 용기나 방법 없이 그만 매혹되었다.

내일 우리는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꼴리마숑 엉 아시에(colimaçon en acier:나선형) 계단을 주문하기로 했다.

나는 계단과 부엌장만큼은 최고는 아니더라도 품질과 디자인을 보기로 했다. 왜냐면 세간살이 가운데 자주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 내부구조상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집 보수란 현장의 힘든 일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새로 짓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따른다. 재료나 쓰임 하나마저 천차만별의 크기와 모양, 색상 또한 다른 종류의 재질로 되어 있으니 집안 구조와 조화롭게 절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앞서 갖추어진 부분과도 연결을 이뤄야 하는 까다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관계상 같은 재료를 찾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내부 장식에는 세월 따라 자주 바뀌는 유행이나 경향이 있어 몇 년쯤 지나면 같은 디자인이나 색상을 더 이상 제작하지 않는 경우가 항다 반사다. 우리가 테라스 타일을 구입하러 왕복 육백 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달린 예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서도 동일 색상이 아닌 차선책을 택했다.

또한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면서 공사 예산과도 맞춰야 한다는 건 어지간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것이 인생사는 재미이지 않냐?'라고. 다시 말해서, 본인 취향대로 자신의 집을 꾸며 나갈 수 있다는 것만도 즐거운 일이라고. 옳은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낸다. 그렇더라도 직접 당하면 힘들다.


잠시 머물다 떠날 세든 또는 세 놓을 집, 아님 금방 팔 목적이 아니라면 평생 내가 살 집을 공사한다는 것은 역시나 마음가짐도 다르다. 모든 것이 신중하고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집이란, 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스며들고, 육체와 영혼이 휴식하는, 꿈을 꾸고 앞날의 바람을 키우는, 그러므로 포근하고 아늑해야 하는 곳. 흔히들 말하는 보금자리다.

이곳에서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즉, 내 창의력을 배설하는 일터임은 물론, 휴식과 먹고 자는 것까지, 스물네 시간 온전히, 매일, 매년을, 일생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은 내 일부분이나 다름없이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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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옥 증축과 남쪽 테라스 확장 공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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