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색

protective coloration

by 살랑

어른이 되었음을 직감하는 순간이 여럿 있다. 유치원에 다닐만한 아이들의 눈에 내가 자연스레 언니가 아닌 이모로 보인다거나 편의점에서 술을 사도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 순간이 그렇다. 자유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라 이제는 자유가 자유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렇다.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는 또 있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가 그렇다. 과거의 나는 갈등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조용하고 무난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런 나의 모습은 분명 이름 모를 그에게 고운 모래밭에서 굴러다니는 거친 자갈처럼 껄끄러울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 몸을 반들하게 갈거나 오돌토돌한 모습을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정면으로 대립했고 늘 생채기를 입었고 지금도 가끔은 앓고는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감싸는 방법을 선택했다. 생채기가 상처가 되고 고름이 되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이후였다. 동물이 자신의 몸을 방어하기 위해 보호색을 만드는 것처럼 나 또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갈등을 중화시키는 방법이 보호색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은 꽤 많은 부상 후에 터득한 방법이다. 갈등과 대립하지 않고 굳이 상대방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것. 내 기분만을 생각하고 내 다친 마음을 위해 일종의 보상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보호색이다.


오늘도 나는 갈등을 일으키기보다 보호색을 만드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오늘도 내가 안전함에 사뭇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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