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신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될줄은 몰랐다. 신입이라 하기엔 회사물을 먹었고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는 이해하고 있지만 경력자라 하기엔 기간도 업무 커리어도 애매한 일종의 직장인의 사춘기 시기라고나 할까?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누가 뭐래도 인간적으로나 커리어적으로도 훌륭한 사장님의 말씀 때문이었는데, 최종면접에서 그가 언급한 나의 1년 6개월이라는 구체적인 경력의 시간은 그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면접도 아닌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내 짧은 경력을 단기근무라 조롱받은 기억이 있기에 후려침 당하기 바쁜 현대사회에서 인턴경력까지 포함해 내 경력을 인정해주는 사장님의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본 그 기업은 알고보니 상습적으로 임금체불을 하기로 유명했다.
어쨌든 애매한 경력자의 포지션으로 이전과 조금 다른 직무로 입사한 내게 사수의 가르침이나 업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어떤일보다 중요했다. 지금껏 만난 어느 회사동료보다 좋은 사람이라 느끼는 사수에게 실망을 끼쳐주고 싶지 않았다. 경력자라 생각했는데 신입보다도 못한 퍼포먼스를 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입사 후 이제는 언급도 하기 싫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과 완화를 반복하며 오피스근무와 재택근무를 반복하고 있다. 회사 분위기를 느낄 새가 없다.
물론 출근시간이 9시라면 8시 50분에 기상해도 된다는 점은 재택근무의 부정할 수 없는 매력포인트다. 출근시간이 되면 화상으로 적나라한 민낯을 팀원과 공유해야 하지만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흐린눈을 하며 이해할 것이 분명했다. 평소 밀렸던 병원이나 은행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점심시간 1시간은 집앞 슈퍼에서 간단한 심부름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시간이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세트를 포장하기에도 적절한 시간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중고신입 3개월차에게 재택근무는 별로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1일1실수를 하는 좌충우돌 중고신입에게 사수에게 실수를 고백하는 채팅창은 가히 고통스럽다. 분명 배려심있고 따뜻한 그녀인걸 알면서도 채팅창 너머로 깜빡이는 그녀의 말투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딱딱해 보이기도 한다.
그뿐만일까. 적막한 집에서 하루종일 마우스를 딸깍이는 이 상황에 문득 허함이 몰려온다. 평소 팀원들과 나눴던 스몰톡과 옆자리의 사수와 짧지만 재밌게 나누었던 수다도 떠오른다. 화상회의를 할 때마다 모니터에 두둥실 떠오르는 내 적나라한 민낯과 집안의 모습은 사실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다.
쨌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것은 틀림없다. 집중이 잘 되지 않던 내 집 책상위가 어느새 편해진 것을 보면 말이다. 다만 때로는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 있는 것만은 틀림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