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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시골 살이가 쏘아 올린 명문대 입학

까도남이 꿈이었어요

by 무주

아이가 캐나다 명문대에 입학하기까지,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학원도 안 보내고, 심지어 학교도 열심히 보내지 않았다.

캐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성적에 대해서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사실 성적표에 영어가 가득해서 딱히 내가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나름 청개구리식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했다.

바로 세 번의 시골살이다.


첫 번째는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였다.
도심에 살면서도, 일부러 외곽 논밭이 있는 동네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4년을 영락없는 시골 아이처럼 뛰어놀며 보냈다.


두 번째는 아이 중학교 시절.
남편의 지방 발령을 기회 삼아 시골 "리" 단위로 들어갔다.
학교 주변에 집이 별로 없어서 아이가 기숙사를 배정받기 전까지 나와 아이는 컨테이너를 겨우 빌려 살았다.
하지만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아이는 학교를 다니고, 나는 읍내 나가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아이가 캐나다로 유학을 갈 때, 일부러 토박이 캐네디언들이 많은 시골로 보냈다.

캐네디언들의 찐 문화를 경험하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몇 년을 보내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애타게 대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캐나다 명문대를 가게 된 이유도, 그곳이 명문대여서가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있어서 선택한 이유가 상당 부분 컸다.

만약 명문대가 시골에 있었다면, 아마 우리 아이는 명문대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아이 명문대 보내는 데 있어서,
다른 엄마들처럼 열심히 한 게 없지는 않다!

신개념 맹모삼천지교의 결과가 참으로 의외였다.


나는 아이가 명문대 가겠다는 걸 반대했던 엄마였기에 내 의도가 실패로 끝났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명문대 가는 걸 찬성한다면 내가 했던 청개구리 맹모삼천지교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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