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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Feb 14. 2023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

난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게 아니다.


나는 잘 죽기 위해 열심히 산다.



남들에게 부끄럽고 야단맞을 일이지만 나는 2020년, 2021년, 그리고 2022년에 걸쳐 여러 차례 극단적 시도를 했다.


반은 작정하고 한 행동이었고, 반은 발작으로 인해 괴로워서 한 행동이었다.


오랫동안 괴롭힘당해왔고 난 점점 비굴해져 갔다. 


그리고 그 비굴함의 끝은 자아상실이었다.


난 쓰레기.

난 가치가 없는 존재.

어느 누구도 나 따위는 신경도 안쓸걸.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리고 그 자아상실의 끝은 삶을 마감하는 일이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서양 속담에 고양이 목숨은 9개라던데 난 19개는 되는가 보다.


나는 죽을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5살 때 연탄가스를 심각하게 마시고(할머니 집에선 연탄 불을 때었다) 뒤늦게 발견되어  병원에 실려갔다.

뇌에 이상 없이 살아났다.

동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6살 때 푸세식 변소에서 볼 일을 보다가 똥통에 빠졌다.(혹시 이 장면을 떠올리다 웃지 마시길... 나는 심각했다)

똥물속에  목까지 빠져들 때쯤 할머니가 어디선가 토르처럼 날아와서 물속에서 사라져 가는 나를 건져내셨다.

나는 살았고 다행히 똥독도 오르지 않았다.


9살 때 졸음 운전 하던 택시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버려서 나는 하늘 멀리 튕겨 날라갔다.  순간 내가 새가 된 줄 알았다.

피가 낭자했고 몇 군데 꿰매긴 했지만  나는  살았다. 


10살 때 자전거를 타다 후진하고 있는 덤프트럭 뒷바퀴에 자전거와 내 오른쪽 발목이 으스러졌다.  나는 또 살았다.


고등학교 하굣길에 마을버스가 인도가 아니라 차 길 중간에 하차해 주었다. 그 바람에 나는 내리자마자 달려오는 프라이드 승용차에 부딪쳐  날아갔다.  그러나 나는 또 살았다.


아마 내가 입원한 기간만 다 합쳐도 몇 년은 되지 않을까 싶다.


"워메~   쟈는 목숨이 엄청 질긴가 보네~"


툭하면 죽을 뻔하고 입원을 해야 했던 나를 동네분들 중 한 분이 그렇게 말했던 걸 기억한다. (칭찬인 건가, 욕인 건가... 어릴 때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죽기 직전의 느낌을 어느 정도는 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아..,. 이젠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그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내 눈앞에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지난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게 보였다. 신기했다. 내 삶을 영화로 보는 것 같았다.  매번 죽음의 순간에서 나는 내 지난날의 삶을 영화처럼 보게 된다. 지난 시절의 기억들이 영사기를 틀 듯이 '촤르륵~ ' 빠르게 지나간다.


사고를 당할 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냐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사고를 당하는 그 순간은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곤 기억이 없다가(그게 몇 시간일 때도 있고, 며칠 일 때도 있다.) 병원에서 의식을 차리기 시작할 때부터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아이러니한 건 고통을 느끼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살아있구나"였다.


고통의 종류란 나름  골고루 느껴본 난데 이젠 편히 좀 사나 했다. 그런데 심한 우울증과 중등도 공황장애란다. 아프고 괴로운 것도 지겨울 정도다. 내가 처한 상황에 울기 시작해서 마지막엔 실실거리고 웃는다. (이게 진짜 광기인건가?)


 감정이란 것도 결국 양극단에서 만나는 것 같다. 우리가 너무 웃긴 장면에서 배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 듯이,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우면 '꺼억꺼억' 대고 실성한듯한 웃음이 난다.


중요한 건 고통을 느낄 때마다 내가 지금 살아있구나를 느낀다는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깨어났을 때도 내가 살아있음을 알았다. 깨어난 후 신체적 통증이 엄청났으니까.


나는 매번 어떤 방식으로든 수명을 연장받았다. 사람 일은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특히 내가 처한 상황은 더욱 그렇다. (현재 나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함을 이해 바란다) 전 처럼 극한의 상황에서 나의 지난 삶이 또 파노라마처럼 눈앞에서 지나갈 때 이번에는 "후회 없이 잘 살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인간의 삶은 누구나 유한하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안다. 알지만 단지 실감을 못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떠나는 진짜 그 순간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자 한다. 비참하고 초라한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와서 잘 살다 간다"라는 마음으로 살다 떠나고 싶다.


해가 바뀌었고 입춘이 지났다.

사실 며칠 전까지 그걸 몰랐다.

나는 꽤 오랫동안 시간 개념을 잃고 살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게 병이 있든, 어떤 안 좋은 상황에 처해있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걸 최선을 다해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잘 죽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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