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을 마음껏 느껴보기도 전에 겨울이 오는 듯하다. 너무 빠르게, 또 한해를 넘겨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히 앉아 지나가는 한 해를 바라볼 시간이 간절하다.
보는 이를 깊이 끌어당겨서 깊은 명상으로 인도하는 작품들이 있다. 일상적인 번잡함을 넘어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부처의 모습을 그려온 김원교 작가의 작품이 그러하다. 고요한 명상으로 안내하는 가을의 전시, 김원교의 <다만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다>를 추천한다.
어느 가을 평일 오전, 평창동 산자락에 위치한 삼세영 갤러리를 찾았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작가가 관람객들에게 친근하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보통은 갤러리에 상주하는 갤러리스트가 작품 설명을 해 주기 마련인데 작가가 직접 설명을 하다 보니 작품 하나하나가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30년간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후 전업작가가 되었다는 작가가 말했다.
"퇴직 후 전업작가가 되니 행복할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로 많은 고민과 인생의 풍파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마다 경주 남산의 불상들과 우리나라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불상과 유물들의 은은한 미소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작가는 원래 전시 제목을 "제심징려", 즉 마음을 다스려 사유를 맑게 하다고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그만큼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생각을 맑게 하고자 한 수행의 결과물이자, 작가의 한 획 한 획의 붓질이 기도처럼 느껴졌다.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삼국시대 부처상들에는 볼 때마다 매혹된다. 특히 경주의 감실 부처님 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의 금동반가사유상, 에밀레 종에 새겨진 비천상 등이 그러했다.
이런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기독교신자로 태어나고 길러진 과거와는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이끌리고 만다. 유전자가 끌어당긴다고나 할까. 그 아름다움에, 미소에 감화되어 그 앞에 그저 주저앉고 싶은 심정. 신기하게도 중국이나 일본의 부처상에서는 그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경주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우리' 부처상을 볼 때만 그러하다.
경주 남산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부처상은 실물로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 산기슭 곳곳 자연석을 깎아 조각한 불상이기에 약탈을 비켜갔지만 옮길 수도 없고 자주 찾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유홍준 현국립중앙박물관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쉽게 찾아뵙기 어려운 경주의 불상들에 대해 이와 같이 고백한 바 있다.
"나는 그래도 이 부처님을 원망하거나, 미술사에서, 문화사에서 푸대접받고 있는 이 부처님을 가엾게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의 그 넉넉한 모습이 135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이 자리에 건재함을 축하드렸다.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자연 암석을 깎았기에 어떤 도굴꾼도 당신을 겁탈하지 못하였고, 바위를 깎아 감실을 만들었기에 풍화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관광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사람의 손때를 입지 않았으니 어느 불상이 당신처럼 본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상처받지 않은 행복이 있었겠느냐는 축복이었다."
김원교 작가는 이 축복받은 경주 남산 곳곳에 위치한 부처상,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불상의 감동을 먹으로 담았다.
먹만을 가지고 작업한 <고요히 앉아_남산> 연작은 먹만으로 작업했는데도 불구하고 돌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손에 닿으면 천년의 세월을 견딘 풍파가 만져질 듯하다.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점은 질감뿐만 아니라, 후각까지 자극할 정도로 먹의 냄새를 풍기는 듯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나무를 태워 그을음으로 만들어진 먹이라는 재료는 변색이 쉬운 유화보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모진 세월을 거쳐온 천년의 유물들을 표현하기에 먹만큼 어울리는 재료가 있을까. 먹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고 있는 듯한 김원교의 작품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인간적이면서도 세속을 초월한 부처상의 감동을 짙게 전한다.
<고요> 연작은 석굴암 내부 벽면에 조각된 보살 신들을 흙과 먹을 교차로 바르며 질감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실제로 보면 각각의 신들이 만져질 듯 입체적이다. 중성적으로 표현된 이 신들은 부처상에 비해 장식적이지만 유려하고 아름답다. 그리스 헬레니즘의 조각의 신들처럼 유려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부처의 세계로 고요하게 안내한다.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석불사 조각에 대해 최초로 극찬한 사람은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였다. 그는 1919년 <예술> 잡지에 이렇게 썼다.
"걸음을 굴 밖에서 굴 안으로 옮기면 마음도 또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우러러보는 자는 그 모습의 장엄과 미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완전히 내적인 영의 세계다... 움직임보다도 고요함 속에 사는 것이다. 종교의 의미는 석굴암 속에서 다하는 느낌이다. "
이 연작은 석굴 조각의 감동을,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는 오마주이자, 새로운 작법으로 석굴암에서 현재로 끌어낸 실감 나는 현대적 재해석이었다.
작가의 안내에 따라 개인전의 하이라이트로 인도받았다.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갤러리 한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대작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모시조각보를 이어 붙인듯한 배경에 반가사유상, 석가탑, 목어 등 불교적 소재가 콜라주로 붙어 있는 작품이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모시는 옛 여인들이 남은 천들을 바늘로 이어 붙인 보자기로, 오랜 시간의 노동과 삶의 시간을 품고 있다. 보자기를 싼다는 것은 소중한 물건을 보호하고 감싸는 것을 의미했다. 작가는 이어 붙인 조각보처럼 모든 인연과 불교적 경험을 소중하게 자신의 삶 속에 이어 붙인 듯하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티베트의 불경을 내어준 인연과 낙관을 제작해 준 전각자, 시를 써 준 시인들까지, 그 모든 인연에 대한 감사함이 조각보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조각보, 인연들은 가장 성스러운 불상의 형상들을 감싸 안는다.
어쩌면 해탈의 경지는 우리를 거쳐간 모든 인연들과 미물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조각보 위로 작가의 숨과 호흡이 깃들어 있는 사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부처의 온화한 미소에, 해탈에, 존재 그 자체에 머무르는 삼매의 상태로 빠져든다.
미물의 아름다움
김원교 작가는 국보급 보물만큼 미물의 아름다움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불자가 그러하듯, 산책길에 만난 꽃, 마당에 피었다 지는 식물의 잎 줄기 하나하나에도 불상을 대하듯 고요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음을 느낀다.
전시서문에서 박춘호는 김원교의 <문향>은 부귀를 뜻하는 모란, 행운을 뜻하는 수국처럼 단순한 의미를 가진 식물과는 다르다고 해석했다. 김원교의 식물은 꽃 향기에서 발산하는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는 "정신적 수양“으로 이끈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집안에 부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던 '해바라기 그림'같은 단순한 상징으로서의 꽃 그림과 달리 김원교의 식물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쪼그러져가는 감, 찻주전자에 담가둔 시들어가는 꽃 한 송이 등,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생의 흔적을 머금은 고요한 꽃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담담하게, 가는 시간을 받아들이며 시들어가는 생명에 깃든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머문 기억
연로하신 작가의 부모님 집을 정리하면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머문 기억> 연작은 현재 전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아 이미 판매된 작품이 많았다. 쉽게 버려질 수도 있었던 부모님이 쓰시던 자개장 서랍들에 부모님의 신혼이불, 혼인사진, 구슬가방, 한복등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오래된 가구가 기억을 품고 삶의 흔적을 담은 사물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나 한세대 전만 하더라도 결혼은 가장 좋은 것, 새 이불, 새 가방, 새 가구 등을 마련하고 새 이불에 'Sweet Home'을 새기며 설렘과 희망으로 빛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그 신혼부부의 설렘이 바래지 않고 묻어났다.
그 시절은 지났으나 기억은 머물렀고 한 집안의 유물이 되고, 작품이 되었다. 집을 정리하고 실버 타운에 모신 작가의 부모님은 딸들 몰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지금은 편찮으신 와중에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낚시를 실컷 하시고 경기도에서부터 직접 운전해 딸의 전시를 보러 오시고 <머문 기억> 작품을 한 점 사가셨다 한다. 신혼 때 못지않은 한 노인의, 삶에 대한 의지와 애정이 느껴졌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는 길, 속절없이 빨리 가버리고 있는 올 한 해를 의미 없이 잡으려 허둥대기보다는, 그저 고요히 앉아 현재 그 자체에, 지금 이대로에 감사하는 마음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