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조각모음집 2024년 1월 무지와 무지베이스와 무지호텔과 03
글&사진. 최성우
치바현 카모가와시에 위치한 숙소 '무지베이스'를 가보고자 떠난 일본행. 그렇다면 이번 테마는 무지무지? 잠깐 스치듯 머문 도쿄 숙소도 '무지호텔 긴자'로 정했다. 그렇게 5년 만의 해외여행에 시동을 거는 의미로 떠난 짧은 3박 4일 여행기
무지베이스가 있는 지역은 치바현 카모가와시 Chiba Kamogawa로 도쿄에서는 직선 거리로 약 130km 정도 떨어져 있다. 도쿄보다 동쪽에 위치해 있어 태평양과 더 가까이 있다고 할까.(일본 오른쪽에 접한 바다는 모두 태평양이긴하다.) 일본은 개인적으로 도쿄, 오사카, 교토, 다카마쓰 정도 방문했었는데, 모두 관광객이 자주 왕래하는 곳이라 무지베이스가 있는 이 지역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우리가 기차에서 내린 아와카모가와역 인근 마에라 해변이 서핑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비수기여서 더욱 조용했으리라.
무인양품이 카모가와에 숙소를 만들게 된 건 지역재생 프로젝트로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무인양품을 운영하는 양품계획은 지역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기곳의 과제를 주민과 함께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연결되는 장소를 만들고자 수년 전부터 노력하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활동해 오고 있는 곳이 바로 지바현 보소지역이다. 카모가와의 사토야마 보전활동, 지역 커뮤니티의 교류 장소인 민나미사토 운영, 미나미보소시의 폐교 철거지에서 진행된 무인양품의 ‘작은 오두막이 있는 생활’ 제안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지베이스가 된 고민가(일본의 오래된 민가, 우리는 전통가옥을 한옥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고민가’라 부르는 듯하다.)는 무인양품의 한 직원이 거주하는 사택으로 활용되고 있던 집이었다. 집주인과 협의하여 빈집이던 이곳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었던 것.
이후 이 집을 눈여겨 본 양품계획 카나이 회장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지역재생, 단지개발, 리노베이션 부분에도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던 양품 계획에게 있어서 카모가와의 고민가는 매우 좋은 실험 장소라고 판단한 것 같다. 집주인과 협의 결과, 오랜 기간 임차하는 것에도 동의를 얻게 되어 회사의 다양한 부서가 합심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일본의 전통 양식, 즉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되 서양의 라이프스타일이 접목된 공간을 제안하고자 했다.
일본 전통 가옥의 방 네 칸을 비롯한 기본 구조는 그대로 두고, 북쪽 키친만 현대식으로 전면 수리했다. 현재 토방으로 바닥이 낮은 키친은 100년 세월을 견디는 동안 수 차례의 개보수 과정에서 방들과 높이를 맞춰 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건물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기둥의 심각한 손상과 지반 침하 현상까지 확인해 보이지 않는 기초를 탄탄히 했다. 민가의 옛스러움과 키친의 현대적인 모습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하도록 하고, 무지 베이스에서 지낸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본다.
인천에서 나리타 공항까지 2시간, 나리타 공항에서 다시 꼬박 3시간이 걸려 도착한 지역, 카모가와. 읍내에서 다시 조용한 마을까지 20분을 택시로 달려서 도착했다. 오전 9시에 출발해 도착한 시간은 오후4시. 집안 하나하나 살필 겨를 없이 해가 저물어갔다.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 매니저님이 알려준 텃밭에서 파와 상추 등 채소를 채집해 왔다. 식사 준비의 지휘는 J가 맡았고, 나는 재료를 씻고 정리하고 보조역할과 테이블 세팅을 맡았다. 메뉴는 텃밭표 야채 샐러드, 신선한 계란으로 만 계란말이, 미역국, 낫토로 첫 식사부터 건강하고 푸짐했다.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함께 사용한 비용을 정산하고, 맥주 한잔 하고 나니 어느새 11시가 넘어 있었다.
둘째 날, 고민가의 아침은 매우 추웠다. 온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난방은 히터에만 의지해야 했다. 건조한 바람은 목을 타게 만들었고, 바닥은 냉골. 일어나자마자 일찍 일어난 J가 켜둔 난로 앞에 앉았다. 모닝러닝 겸 동네 탐험 겸 아침거리를 사러 J는 떠났고, 나는 무인양품 드립백 커피를 내려 마시며 잠을 깨웠다. 그리고 손엔 귤이 들려 있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집안 공기도 안정을 찾게되니 그제서야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층 건물에 높게 솟은 지붕, 마을에서도 100년된 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두 개의 돌기둥에 대문은 따로 없고, 쇠사슬로 경계를 지어 두기만 했다. 본채와 맞은 편 두 채의 건물, 총 세 개의 동과 텃밭이 이곳의 구성이다. 두 채의 건물은 집주인이 관리하는 공간으로 방문객은 출입할 수 없다. 아마도 거주용보다는 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건물 정면에는 두 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모두 미닫이문이다.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 키친이 있는 오른쪽 문만 외부에서 잠글 수 있다. 주택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문은 실내에서만 문단속을 할 수 있다는 것. 놀랍기도 했고 오래 전, 어떤 공간에서 만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복도 안으로 네 칸의 다다미방이 있다. 네 개의 방은 얇은 창호지 미닫이문으로 사면 또는 삼면이 둘러싸여 있어 문만 열면 방이 되기도 했다가 거실이 되기도 한다. 복도는 'ㄴ'자 형으로 서재를 거쳐 안쪽 화장실까지 이어진다. 남쪽면은 바깥 정원과 면해 있다. 따뜻한 계절이 올 때면 창을 열어 바깥을 오가며 자연을 내부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무지베이스의 개념에 대해 양품계획 회장은 "공간을 풍부하게 사용하려면, 이불을 벽장에 넣어 탁상을 내는 등 '가구가 없는 생활'을 하고,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서양의 라이프스타일과 융합시키는 것이 국내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교토 게스트하우스로 꾸민 민가와 이곳은 규모의 차이로 비롯한 것인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네 개의 방 중 한 곳에는 코다츠가 연상되는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찾아보니, 고민가에는 '이로리'라는 시설이 있었다. '이로리 囲炉裏(いろり)'는 마루 한가운데를 사각형으로 잘라내 흙바닥을 드러내거나 한 단 낮은 공간을 만들고 재를 채워 불을 피울 수 있게 만든 구조물을 말한다. 온돌이 있거나 별다른 난방 장치는 없지만, 좌식 생활이 어려울 것을 고려해 '이로리'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전면 개보수한 파트가 바로 키친. 그릇, 컵, 수저 세트, 냄비 등을 비롯해 무인양품의 다양한 부엌 집기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무지가 만든 공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용품 및 가전은 자사 제품을 모두 사용해 볼 수 있다. 의도이든 아니든 제품을 체험해보는 쇼룸이기도 한 것. 한 쪽 벽면과 공간은 집을 관리하는 데에 필요한 도구와 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키친 뒷편에는 겨울이어서 더욱 중요한 곳, 욕실이 있다. 온수 장치를 제대로 찾지 못해서인지 방 안쪽 화장실 세면대에서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더욱 절실했다. 화장실 다녀와서 손을 씻을 때마다 뒷골이 시릴 정도였다.
PS. 귀여운 요소들
약간은 생소하고, 또는 사소하지만 섬세함이 돋보이는, 귀여운 요소들을 소개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