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일차 | 6월 23일 포르투 Porto, Portugal
이 이야기는 2024년 6월 19일부터 8월 21일까지 이베리아 반도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니스로 펼쳐진, 유랑에 가까운 여행기다. 여행의 시작점 포르투와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했던 그라나다의 라 알함브라, 그리고 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는 바르셀로나 정도가 떠나기 전,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들이다. 그 외에 닿은 대부분의 도시는 하나하나 발견하며 나아갔다. '이번 여행은 꼭 기록으로 남겨야지', 여행 중은 물론이요, 돌아와서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 중엔 낮에는 해가 떠있는 한 계속 거니느라 쓰지 못했고, 밤이 되면 다음 일정 고민과 예약에 쓸 여유가 없었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일정들이 생겨나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젖어 있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을 가득 채워 버렸다. 1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난 1년을 회상하며, 하루하루 일기 쓰듯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해 두려 한다. 이것은 64일간의 여정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포르투 Porto, Portugal
16,147 걸음 / 602장 사진과 86개의 비디오
여정
브런치 플로레스타 카페 Floresta Café
슈퍼마켓, 약간 편의점 Minipreço express - 식수 공급 등
포르투 대성당 Sé do Porto
파브리카 커피 로스터스 Fábrica Coffee Roasters
숙소 복귀
(걸어서)
(쇼핑) 슬리퍼가 필요해!
(저녁 - 실패) 콩가Conga (보름 휴가)
숙소 복귀
(저녁) 벨라 미아 피쩨리아 Bella Mia Pizzeria
상 주앙 축제 Festa São João
숙소 굳밤
일요일이니까 브런치!!
플로레스타 카페 Floresta Café
여행에서 아침을 먹는 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세끼를 모두 잘 챙겨 먹어야 한다. 가능하면, 호텔에선 조식을 포함하고, 에어비앤비에서도 미리미리 식재료를 마트에서 공수해 둔다. 이 경우는 머무는 날짜 대비 식재료 양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떠나며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일요일이니까 브런치!'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찾아낸 브런치 카페는 숙소에서 2분 거리에 있었다. 숙소에서 준비해 둔 캡슐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잠을 깨우고 챙겨서 아침 공기를 마시러 나갔다. 바깥 테이블은 이미 다 채워져 있었다. 골목 사이로 햇살이 내려 쬐기 시작하는 시간, 적당히 선선한 공기의 아침은 한낮에 야외에서 식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낭만이 있어 보였다. 나는 실내로 들어갔다. 반전이 있었다. 산장과 같은 분위기, 빈티지스러운 목재로 카운터를 꾸몄고, 나뭇가지를 엮어 천장과 벽을 얼기설기 장식했다. 하이라이트는 팔레트를 잘라 쌓아 만든 의자와 테이블이다. '헝그리 바이커Hungry Biker'가 운영하는 곳이라 적어둔 것처럼 그들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라떼와 연어 토스트를 주문했다. 연어 아래로 아보카도와 스크램블 에그가 숨겨져 있다. 투박해 보이기도 하는 비주얼이지만,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아침을 사 먹으니 이렇게 여유롭다.
이 동네는 마트가 없다
'포르투갈에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중 하나로 핑구 도스Pingo Doce가 있다.' 이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번 숙소에서 고려하지 못한 사항이 바로 규모 있는 슈퍼마켓이 가까이에 있느냐는 점이었다. 일단 급한 대로 우리로 따지면 편의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도 같은(명확하지 않아서 말끝을 흐리게 된다) 미니프레소 익스프레스Minipreço Express로 가서 식수와 우유만 샀다.
대성당 가는 길
상 주앙 축제의 절정은 일요일 저녁이라 했다. 묘한 긴장감과 전운이 돈다고 해야 할까. 농담이고, 사람들의 들뜬 에너지가 느껴졌다.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바비큐를 준비하는 사람들, 뿅망치를 한가득 바닥에 펼쳐놓고 호객하는 사람들, 기분 좋게 성당으로 향했다.
가톨릭 신도는 아니지만, 일요 미사 드리러
대한성공회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한동안 드린 적이 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다 같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한성공회는 개신교에 속하지만, 예배는 구교(가톨릭) 형식대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의 탄생부터 십자가 사건, 부활까지 성화가 순서대로 예배당 벽면에 걸려 있기도 하다. 대한성공회 역시 어느 교회이든 절기마다 읽는 성경 구절이 똑같다. 그리고 예배의 순서 역시 고정되어 있다. 자유롭게 예배드리는 것도 좋지만, 규칙대로 지키며 드리는 것 또한 꼭 필요하다는 걸 느꼈었다. 그 이후, 한참이 지난 후 독일 뮌스터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기억 또한 남아 있어 포르투 대성당도 그냥 관람하러 들어가지 않고 아껴 두었다. 미사 시작 전에 대성당 앞으로 가면 일반 관광객이 들어가는 입구와 다른 입구가 하나 생겨 있다.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경비원에게 미사 드리러 왔다고 이야기하면, 바로 문을 열어 주신다. 암호 외우듯, "Mass?"라고 말하면 비밀의 문이 열리는 기적이랄까.
미사가 끝나면 문이 열린다
미사는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집전하신 주교님 일행이 퇴장하면, 회랑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온다. 반대로 미사를 드렸던 사람들은 회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성당 관람이 가능하다. 미사를 드린,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대성당 무료 관람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는 방들과 무덤과 채플과
여러 회화들, 아줄레주 벽화들, 보물로 남은 물건들, 어느 하나 이야기가 없는 것은 없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귀 기울였으면 좋았겠지만, 회랑을 돌며 지붕을 타고 퍼지는 햇빛이 마냥 좋았다. 그저 회랑 위 테라스에 걸터앉아 커다란 아줄레주 벽화의 섬세함과 단단히 쌓여 있는 오래된 벽을 보며 감탄했을 뿐이다.
어떤 도시에 가면 높은 곳을 찾는다
새로운 도시에 가게 되면 높은 곳에 올라 조망하는 걸 좋아한다. 그 도시의 흐름이랄까, 컨텍스트Context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각각 장소의 좌표를 맞추고 방향 감각을 잡아보는 것. 그렇게 도시의 구조를 몸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종탑에선 구도심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더 높고 포르투의 중심에 있는 곳은 클레리구스 종탑이지만, 대성당이 도우루강 가까이에 있어 포르투의 분위기를 잘 담아볼 수 있었다.
대성당 루프탑에 멍하니 앉아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평화로운 시간, 눈앞에 사람들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교회에서 아침부터 한낮을 보내니 참 일요일답게 보낸 거 같다.
타워에 올라왔다
커피 한 잔
집 창 밖을 통해 보았던 카페, 파브리카 커피 로스터스에 왔다. 문 앞에 노숙인 선생님이 반려견과 함께 앉아 계시는 바람에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일요일 오후, 매장엔 아무도 없었다. 이 거리엔 관광객도 잘 없는 걸까. 시내에 다른 지점도 있던데, 거긴 많아 있을까?
커피를 주문하고 선반을 살폈다. 에어로프레스 필터가 있나 휘리릭 스캔했다. 일단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스탶에게 물어보진 않았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맞은편에 있을 집을 찾았다. 상상했던 모습과 달라 저기다 싶었던 곳을 확정 짓진 못했다.
슬리퍼를 사야겠다
숙소로 돌아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미사 드리러 간다고 흰 셔츠를 입었더니 아무래도 더워서 안 되겠더라고. 역시 반팔 티셔츠가 좋다. 포르투갈 호텔에선 슬리퍼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다. 샌들이 있긴 했지만, 실내에서 불편했다. 하루 종일 신고 있던 신발이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 현지에서 하지 않는 쇼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볼량역 인근 상가가 밀집한 거리로 갔다. 신발 편집샵에 여럿 가보았지만, 슬리퍼나 쪼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있었더라도 브랜드 제품이라 가격이 맞지 않았을 것. 그러다가 포르투갈의 다이소라고 해야 할까? '알레 홉ALE-HOP'이라는 매장에서 발견한 슬리퍼가 아쉬운 대로 쓸만해 보였다. 어렵게 미션을 클리어하고, 저녁을 먹으러 움직였다.
비파냐 맛집에서 그냥 피자집으로
얼마 전에 포르투갈 여행을 했다는 상빈으로부터 여러 장소를 추천받았다. 이곳 음식 중 하나인 비파냐가 맛있다는 곳, 콩가Conga를 찾아갔다. 하지만 장기 휴가 중이셨다. 구글맵에는 "영업중"이라고 쓰여 있었건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짐을 둘 겸 숙소 근처 식당을 다시 찾았다.
눈에 들어온 건 피자집, 여기가 본토도 아니고, 피자를 포르투갈에서 먹을 이유는 없었지만, 이동 시간이나 식사 시간 등을 종합해 볼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벨라 미아 핏짜리아Bella Mia Pizzeria, 이탈리아 스러운 이름이다. 식당도 깔끔하고 분위기도 캐주얼하고 괜찮았다. 맥주 한 잔과 피자 아부르쪼Abruzzo 한 판을 주문했다. 피자 한 판은 우리나라 레귤러 사이즈보다 작았다. 화덕으로 굽는 피자는 맛이 없을 수 없겠다. 메뉴판은 QR코드를 스캔해서 보는 방식이었는데, 포르투갈어 버전과 영어 버전이 따로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인만큼 영어 메뉴판까지 두 개를 가지고 있기 번거로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모바일 웹으로 볼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식당이 예상보다 많았다. 비건을 위한 피자도 준비되어 있고, 도우부터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여기 맛집이었다.
상 주앙 축제는 6월 23일 밤이 절정이다
이것이 저녁을 부랴부랴 챙겨 먹은 이유다. 상 주앙 축제(São João)는 세례 요한의 탄생일 6월 24일이 공식 축일로 지정되면서 오늘날의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았다. 보통 2~3주 전부터 마을마다 공연, 전시회 등 행사가 열리기 시작한다. 축제의 절정은 단연 6월 23일 밤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뿅망치를 들고 나와 서로의 머리에 애정을 담아 툭툭 친다. 오가는 망치질에 "뿅, 뿅"소리가 메아리처럼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진다.
뿅망치 이전에는 알류(Alho-porro, 야생 대파)나 정향 마늘 꽃(Manjerico) 줄기로 가볍게 툭툭 치는 풍습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유쾌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특히, 젊은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표현하거나 장난스럽게 다가가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뿅망치로 대체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현지에 있을 때, 한국 사람들로부터 듣기로는 뿅망치로 때리는 행위가 서로에게서 액운을 쫓아주기 위함이라 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뿅망치 이전에 마늘(꽃 줄기이지만)을 사용했던 것에서 와전된 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일단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도우루 강으로 가기로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움직이기 시작한 시간이 오후 8시, 아직 대낮처럼 환하다. 대성당 광장 앞을 지나 사잇길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루이스 다리 옆에 엄청난 인파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단참 한 곳에서 손수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망치를 들고 정성스레 한 사람 한 사람 머리를 두드려 주는 아저씨가 참 인상적이었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던 포르투, 어디서 오는지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인파가 나오기 시작한다. 루이스 다리를 건너 모루정원으로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축제 날에도 노을을 거를 수 없으니까.
모루정원 곳곳에서 탄성과 응원 박수가 터져 나온다. 풍등을 띄우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헌사였다. 어떤 친구는 하늘에 솟아 보지 못하고 빛을 바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걸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다행히 나무로 불이 옮겨 붙진 않았다. 수많은 소원과 마음들이 포르투 하늘을 수놓고 있는 장면이 상 주앙 축제의 장관이다. 그런데 말이다. 풍등은 동양의 문화인데, 어느새 여기서 다들 신나게 하고 있네! 이것 역시 1980년대부터 라는 설도 있고, 2000년대부터라는 설도 있다. 도우루강에 펼쳐지는 노을과 함께, 또는 밤하늘에 수십, 수백 개의 풍등이 떠오르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대적으로 유행이 되어 버렸다.
모루정원에서 루이스 다리로 다시 내려가는 길, 노점상에서는 소시지와 정어리를 굽고 맥주와 함께 권한다. 루이스 다리 상부는 일찌감치 폐쇄됐다. 안전상의 이유일 것이다. 다리 하부로 건너는데, 하부 다리의 경우, 강바닥에 박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 기둥 사이에 걸려 있는 구조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자 순식간에 흔들 다리가 되었다. 조금 과장하면 멀미가 날 정도였다.
다시 강을 건너와 도심으로 올라갔다. 호텔 앞 거리는 노상 바가 되어 탭tap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너도나도 한 마음이 돼서 갑자기 퀸Queen의 "We Will Rock You"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도심의 거리, 평소 차량이 다니는 2차선 도로다. 서로 몸이 밀착되어 이동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저 즐거웠다. 흥겨움과 취기에 흥분된 상태였지만, 어떤 심각한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정이 되자 축제의 피날레를 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15분 동안 이어지던 불꽃! 도우루강 위에서 쏘아 올린다고 하는데, 정말 가까운 거리였다. 광장에서 건물 너머로 솟아오르는 불꽃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여전히 뿅망치 플레이는 잊지 않았다. 화약이 탈탈 털리도록 화려하게 빛나던 불꽃이 사라지고, 축제의 공식적인(?) 행사는 끝이 났다. 그러나 그들에게 축제는 끝이 날 줄 몰랐다.
불꽃놀이 사진이 없다. 영상만 찍었다. 아이폰으로는 불꽃 사진이 잘 안 담기긴 하다.
(끝)
거닐고 이야기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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