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일차 | 6월 21일 포르투Porto, Portugal
이 이야기는 2024년 6월 19일부터 8월 21일까지 이베리아 반도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니스로 펼쳐진, 유랑에 가까운 여행기다. 여행의 시작점 포르투와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했던 그라나다의 라 알함브라, 그리고 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는 바르셀로나 정도가 떠나기 전,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들이다. 그 외에 닿은 대부분의 도시는 하나하나 발견하며 나아갔다. '이번 여행은 꼭 기록으로 남겨야지', 여행 중은 물론이요, 돌아와서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 중엔 낮에는 해가 떠있는 한 계속 거니느라 쓰지 못했고, 밤이 되면 다음 일정 고민과 예약에 쓸 여유가 없었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일정들이 생겨나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젖어 있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을 가득 채워 버렸다. 1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난 1년을 회상하며, 하루하루 일기 쓰듯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해 두려 한다. 이것은 64일간의 여정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포르투 Porto, Portugal
19,050 걸음 / 661장 사진과 33개의 비디오
⁕(여정 지도 추후 업데이트)
여정
호텔
(도보)
카사 다 뮤지카 Casa da Música by Rem Koolhaas
(점심) 네그라 카페 보아비스타 Negra Café Boavista
(버스)
세할브스 미술관 Museu de Arte Contemporânea de Serralves by Álvaro Siza
(볼트Bolt 택시)
카비 깔렝 Cave Cálem(칼렘 와인 저장고)
(저녁) 떼페루 드 마리아Tempêro D'Maria
(도보)
호텔
아침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
호텔 빈치 포르투에서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조식 메뉴 구성의 변화는 없다. 무엇을 접시에 올릴지 패턴이 생겨버린 것 같다. 식사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높은 천장과 줄짓지 않고 서 있는 원형 기둥이 시원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대부분 호텔이 그러하듯 조식은 뷔페로 직접 음식을 가져가야 한다. 이곳의 특징이라면, 샐러드, 메인 디쉬, 디저트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아 각자의 순서와 속도에 따라 동선이 분산되어 붐비지 않아 좋았다.
공연장과 미술관, 오늘은 건축 투어다
어젯밤부터 출발 직전까지 고민하고 리서치해보다가 첫날 포르투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카사 다 뮤지카Casa da Musica 가이드 투어,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세할브스 미술관Museu de Arte Contemporânea de Serralves, 그리고 포르투 와인 회사 칼렘Cálem에서 진행하는 와인 저장고 투어를 가기로 결정했다.
여행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 효율적으로 이동 동선과 방문 장소를 정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각 장소 간의 거리, 운영 시간, 실제 방문해서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 등 머무는 기간 동안 방문 가능한 장소를 결정하기 위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국내에서 미리 조사했으면 좋았을 요소도 분명 있지만, 가리라 생각지 못했던 도시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장소들도 많았다.
분명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된다. 하지만 카사 다 뮤지카에서 호텔까진 이미 걸어서 이동해 본 길이기 때문에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카사 다 뮤지카 Casa da Música
가이드 투어 Guided Tour
카사 다 뮤지카는 렘 쿨하스Rem Koolhaas, 세할브스 미술관은 알바루 시자Álvaro Siza가 각각 설계했다. 하루에 두 곳을 살펴보다가 소화불량에 걸리진 않을지 우려가 되었지만, 카사 다 뮤지카 가이드 투어와 세할브스 미술관 관람 티켓을 묶은 세트가 있어 얼른 결제했다. 조금 더 시간을 당길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12시가 당일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건축물 앞 광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을 살짝 지켜보며 주변을 돌아보다가 마치 우주선에서 출입구가 내려온 듯한 계단을 따라 내부로 들었다. 계단 옆에도 출입문이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통해 주차장과 공연홀로 바로 진입하는 경우에만 사용가능했다. 티켓 부스에 가서 온라인 예매 확인서를 보여주며, 발권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별도의 발권은 하지 않아도 되고, 투어가 시작되면 QR코드로 확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종이 티켓 사용을 지양하는 것 같았다.
인트로 Intro
가이드 투어가 시작되었다. 공연이 없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공간을 다 둘러볼 수 있었다. 투어는 메인 홀을 시작으로 홀 주변에 숨겨진 관람 공간, 서비스 공간 등을 만나보는 순서로 진행됐다. 서비스 공간들은 VIP를 위한 시설, 어린이와 함께 온 관람객을 위한 시설, 인터미션동안 휴게할 수 있는 공간, 작은 파티가 열릴 수 있을 공간 등이 있었다.
카사 다 뮤지카의 초기 아이디어는 포르투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상설공연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2001년 포르투에서 열린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에서 시작된 것.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모든 장르의 음악과 공연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2024년 현재 5개의 음악 단체가 상주해 있고, 제작 인프라와 연구 활동, 그리고 교육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모든 세대의 일반 시민들을 위한 워크숍, 세미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음악과 음악가의 작업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국제 건축 공모전을 통해 렘 콜하스의 안이 당선되었다. 이 건축물은 마치 운석이 도시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광장을 보면, 지면이 평평하지 않고 물결치는 듯한 부분들이 있다. 이것은 운석이 떨어지면서 만들어 낸 충격파를 지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독특한 형태와 주변 건물들과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문화적 충격을 준다는 의미를 건축물로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도시와 시각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의 내부 공간에서 도시를 조망할 수 있어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느 공연장과는 다르게 자연광이 많이 들어온다. 내부 공간 사이에도 연결성은 계속된다. 리허설룸과 대공연장, 소공연장에 유리벽이 있어 공연 관람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음악가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다만, 소리로까지 이 연결성은 닿지 않는다. 음향 시스템을 통해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가 내어 나가지 않게 설계되었다.
대공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님은 커다란 사진 앞에 멈춰 섰다. 시각적 연결을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무대 뒤편이 완전히 뚫려 있는 장면이다. 이것은 일종의 퍼포먼스Performance이자 셀리브레이션Celebration이었다. 건축물의 구조 공사가 마무리된 것을 기념해 포르투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렸다. 이때가 2003년 6월이었다고 한다. 정식 개장은 2005년 4월이다. 콘서트가 열린 당시, 커튼과 같은 가림막 없이 온전히 무대 뒤편과 객석 뒤편이 열려 있었다. 이는 도시가 건축물에 의해 가로막혀 있지 않고 여전히 시각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대공연장 Sala Suggia
대공연장은 건축물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시설이다. 외부 형태와는 달리 공연장 내부는 직사각형이다. 거의 모든 종류의 공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복합 공연장이기도 하다. 방문 당시에는 무대 위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공연장에서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좌석이다. 좌석을 찾아 이동할 때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의자가 앞뒤로 움직인다. 실제로 앉아보니 의자 자체의 쿠션감도 있고 편했다. 2~3시간 공연을 보고 나면, 의자가 불편해 힘들 때가 많은데, 음향과 조명 등의 시스템에 비해 객석 의자를 잘 챙기지 않는 것 같아 더욱 다양한 대안이 마련되면 좋겠다.
직사각형 박스 안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박스가 불규칙하게 각각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프라이빗한 좌석이 있기도 하고, (이후 확인하게 되는) 아이들과 함께 온 관객을 위한 공간 등 단조로울 틈이 없었다.
객석 뒤편 또한 완전히 열려 있고, 공연장과는 물결치는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 1차적으로 자연광을 걸러 주며, 완전히 빛을 차단해야 할 때는 천정에서 암막 커튼이 내려온다.
Info. 규모 2층부터 4층까지, 좌석 1,238석
VIP ROOM
아줄레주 벽화로 장식된 방으로 들어왔다. 무대 바로 오른쪽이다. 물결치듯 유리창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어 시각적으로 연결되지만,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공연장과 도시와의 시각적 연결이 진행된다. 거의 무대를 뒤에서 보는 효과가 있는 장소라 바깥을 조망하는 전망대 성격이 더 강하다고 느꼈다. 공원의 나무 너머 대서양과도 시각적 연결성을 갖추었다.
소공연장 Sala 2
복도 옆에 있던 소공연장. 대공연장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한 공간이다. 바닥에 고정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좌석 또한 필요시에 배치한다. 무대와 객석이 같은 레벨에 있다. 보통 외부로 통하는 유리벽을 등지로 무대를 설정해서 객석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팅한다. 매번 그렇진 않다. 방문한 당시에도 예외의 경우였다. 어린이와 유아를 위한 콘서트장으로 자주 활용되는데, 의자를 깔지 않고 알록달록한 쿠션을 놓아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공연은 교육 서비스 부서에서 주도하고 있는 매우 인기 프로그램이다.
객석 뒷 공간
객석 뒤편 역시 뚫려 있어 바로 외부와 접해 있는 줄 알았다. 길게 서비스 공간인 바가 설치되어 있고, 외부와 접하는 면도 물결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다. 공연장 쪽은 이중으로, 외부와는 1면으로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벤트가 있을 때, 스낵바로 활용하기 위해 설치해 둔 것이 아닐까 예상해 봤다.
보라색 공간 Purple Room
보라색 공간은 다소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공간은 커튼을 통해 차단되지 않고 대공연장과 시각적 연결이 유지되도록 설계됐다. 공연 중에나 리허설 중에나 언제나 바라볼 수 있다. 현장의 소리도 스피커를 통해 전달이 되는데, 소리에 반응해 자유롭게 활동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별빛과 같은 느낌의 조을 사용해 특별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주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오렌지색 공간 Orange Room
교육 서비스 부서를 위한 공간으로, 경사로에 오렌지색 카펫이 깔려 있는 장면이 관심을 끈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요소다. 이곳의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활동성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데, 카펫의 색깔의 영향이 크다.
'소노리움(Sonorium)'이라는 악기가 설치되어 있다. 소노리움은 사람의 존재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몸의 위치에 따라서도 반응해 여러 변수에 따라 시스템에 사전에 입력된 소리를 출력하도록 유도한다. 사람들이 춤추듯 움직이면 멜로디 공간을 만들어진다.
르네상스 공간 Renaissance Room
다음 공간인 '사이버뮤직'과 연결 통로이자 잠시 쉬어가는 장소다.
사이버뮤직 Cybermusic
피라미드와 같은 모양을 한 민트색 벽이 천정과 두 면의 벽을 둘러싸고 있고, 도시와 대공연장 간의 시각적 연결은 이곳 역시 유효하다. 이곳의 특징은 물결치는 유리창 일부가 열리다는 점이다. 리허설 시간에 소리로도 연결이 이어지는 유일한 공간이다.
다시 리셉션 홀로
육면체 공간이 아닌 경사진 천정과 벽면으로 인해 다른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투어 내내 들었다.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채로운 공간 경험을 하고 왔다. 대공연장(Sala Suggia)을 중심으로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 동선은 재미있는 경험을, 어느 공간에서든 바깥 도시를 조망할 수 있고 자연 채광이 적극적으로 들어오는 공연장이라는 점이 특히나 신기한 지점이었다. 이제 공연장에서 공연만 관람하면 카사 다 뮤지카에 와 봤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겠다.
아직 남기고 싶은 장면들
미술관 가기 전에 식사를 든든히 하자
네르가 카페 Nerga Café
점심시간이 늦었다. 가이드 투어와 미술관 입장 시간까지 적절히 텀을 두려고 오후 3시에 예약해 두었다. 이땐 몰랐었다. 미술관 관람은 하루 종일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여행 극초반, 노하우가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밥을 거르면 안 된다는 건 분명히 알았다. 미술관에서 많이 걷기도 하지만, 작품 감상에는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곳에서 가능한 해결 해야 한다. 그런데 딱 맘에 꽂히는 곳이 없었다. 투어 전 광장을 한 바퀴 돌다가 발견한 브런치 카페에 갔다. 실내가 더 쾌적해 보였지만, 노상 테이블에 앉고 싶었다.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서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먼지도 날리고, 소음과 함께 어수선했다. 그때를 떠올려 보면, 실내에서 시간을 한참 보내다 와서 바깥에 나와 혼자만의 공간을 좀 누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
세할브스 미술관은 포르투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주거지역에 위치해 있다. 카사 다 뮤지카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와 메트로 티켓은 안단테카드를 구입해, 매번 필요한 만큼 몇 건씩 충전하는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메트로역에는 충전 기계가 있지만, 지상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는 발견하지 못해 버스에 올라 현장 결제를 했다. 현금만 가능하며, 충전해서 사용하면 2유로인데, 현금으로 발급받으면 2.5유로였다.
햇살이 강렬한 오후 2시 30분,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면 미술관이 나온다.
세할브스 미술관
Museu de Arte Contemporânea de Serralves
예매한 티켓부터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카사 다 뮤지카 가이드 투어 티켓을 살펴보다가 눈을 사로잡은 통합권, 가이드 투어와 세할브스 미술관과 공원까지 총 3개의 프로그램에 입장 가능한 티켓이다. 각각 시간대까지 확정해서 예매했다. 예매 시스템은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지원한다. 세할브스 미술관뿐만 아니라, 포르투와인 컴퍼니 페레이라(Cave Ferreira)와 그라함(Graham's Cave) 통합권도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가이드 투어 예약 링크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https://casadamusica.com/en/a-casa/guided-tours/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 오후의 강렬한 햇살을 뚫고 'ENTRADA, ENTRANCE'와 화살표가 보이는 파란색 사이니지를 통해 도착했음을 알아챘다. 거리에서 미술관의 전경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미로와 같은 흰색 벽을 따라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출입문 방향으로 향했다. 왼쪽은 공원으로 가는 길, 오른쪽은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다. 경비원은 갈림길에 서서 공원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의 티켓을 확인하고 있었다.
로비 홀에 설치된 미술관과 공원과 부속 건물 모두를 표현한 모델을 보면, 거리에서 미술관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입구로 들어오도록 유도하고 있는 벽만이 도로에 접해 있다. 전경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 숙제는 다음 장소 이동을 위해 뛰어서 나올 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미술관 자체가 작품이다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자 다소 낮아 보이는 천정 높이에 가로 세로 선이 뚜렷하고 깨끗하게 펼쳐졌다. 밝은 빛이 떨어지고 있는 곳까지 나아가자 하늘이 열린 듯 확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마주한 알바루 시자의 공간 안에 서서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전시실 중간 계단실, 복도
전시 'ISDN' by Stan Douglas
영상과 소리에 집중해 보는 전시 공간, 경사로로 내려가는 구조와 중간에 마주 보며 벤치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영상을 보는 방향이 아니라, 수직으로 설치된 벤치와 상영되고 있는 두 개의 영상, 영상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걸까.
PRÉ/PÓS - DECLINAÇÕES VISUAIS DO 25 DE ABRIL
전후 - 4월 25일 혁명의 시각적 변주들
ANAGRAMAS IMPROVÁVEIS. OBRAS DA COLEÇÃO DE SERRALVES
불가능한 조합들 - 세할브스 소장품전
사이 공간들, 복도, 계단실
Álvaro Siza Wing
2024년 대중에 공개된 '알바루 시자 윙Álvaro Siza Wing'은 세할브스 미술관이 추구하는 수집의 방법의 두 가지 형태를 반영했다.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런데 시간이 별로 없다. 이 방대한 자료들을 다 어떡하란 말인가! 넘 신났는데, 일일이 다 확인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음에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마음이 너무 급해서 푹 담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일단 사진으로라도 남겨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며 하나하나 바라보았건만, 다음 방이, 또 다음 방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사진으로도 모두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자료 양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공원으로
최초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와 벽을 따라오지 않고 반대편 길로 가면 공원이 펼쳐진다. 세할브스 부지의 본래 주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대저택과 저택의 정원이 있던 곳에 세할브스 재단이 미술관을 세워 현재에 이른 것이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규모가 커 정원이라기보다 공원이다. 실제 명칭도 Jardim(정원)이 아니라 Parque(공원)다. 과연 이곳을 다 돌아볼 수 있을까?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공원을 정복하려는 식의 접근말이다.
세할브스 저택(Cada de Serralves)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사전 리서치가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인거지. 저택과 저택이 바라보는 정비된 정원, 그곳을 넘어가면 숲길이 이어진다. 더 남쪽으로 가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거리가 꽤 되어 그쪽으로 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지도상으로 출구가 나타나지 않아 안전한 선택으로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가는 선택을 했다.
숲으로 우거진 곳에는 'Treetop Walk'라고 하여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꽤 높이 이어져 있어서 공원을 조망하기에도 좋았다. 여러 갈래로 길이 이어져 있어 탐험하는 기분도 들었다. 공원을 달리듯 돌아봐서 정신이 없었다. 미술관을 방문할 때는 다음 일정을 잡지 않거나 온전히 하루를 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걸 이렇게 배웠다. 그리고 오픈 시간을 맞추거나 예약 시간이 맞지 않다면, 최대한 빠른 오후시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버스가 오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긴 했나 보다.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심지어 카사 두 세할브스까지도 말이다. 공원을 빠져나오면서 확인했던 버스 노선을 새로고침하면서 최신화했지만, 버스는 도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버스 승차에 성공한다고 해도 어느새 도착 예정 시간이 다음 장소 예약 시간을 훌쩍 넘겨 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때 친구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볼트Bolt, 싸고 편해!" 포르투갈 등에서 사용하는 우버Uber와 같은 앱기반 콜택시다. 볼트를 당장 호출하지 않으면, 제시간에 갈 수 없었다. 어플을 설치하고 연락처로 인증까지 정말 정신없이 진행했다. 현지 전화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유심을 구입하길 잘한 것 같다. 이런 때에 유용하구나! 혹시나 한국 번호로 국제 문자 발송 오류가 잘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후 장 보러 갔을 때나 종종 이용했다. 볼트 좋다!
카비 까렝(와인 저장고, 셀러)
Cave Cálem
우리 동네로 돌아온 기분이다. 하루 있었는데도 벌써 익숙해졌다. 주요 포르투 와인 회사의 와인저장고(Cave)는 대부분 도우루 강 남쪽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에 위치해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같은 생활권인 셈이지만, 정확하게는 이곳은 포르투가 아닌 다른 도시다.
카비 까렝을 선택하는 이유는 우선 가장 저렴한 편이었고, 대체적으로 무난하고 만족도가 괜찮았다는 후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파두Fado 공연이 포함되어 있어서다. 포르투 거리 어디에서든 파두 공연은 관람이 가능하다. 길거리라는 뜻은 아니고, 시내 곳곳에 공연장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곳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준을 잡아줄 만한 곳이었으면 했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봤다.
카비 까렝Cave Cálem은 포르투갈 도우루 밸리Douro Valley에 위치한 역사적인 와이너리로, 이 지역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도우루 밸리는 북쪽과 남쪽의 산맥이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는 독특한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수 세기 동안 포도주와 포르투 와인을 생산해 온 전통적인 와인 생산지입니다. 이 지역은 Lower Corgo, Upper Corgo, Upper Douro의 세 지역으로 나뉘며, 각각 다른 특성과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트 와인은 발효 과정에서 브랜디를 추가하여 발효를 멈추고 당분을 보존함으로써 달콤한 맛과 알코올 함량(약 20%)을 유지합니다. 오크 배럴에서 숙성되며, 배럴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와인의 산화 정도와 풍미가 달라집니다. 숙성 시간이 길수록 와인은 건조 과일, 스파이스, 초콜릿 등의 농축된 맛과 향을 가지게 됩니다.
포르투 와인은 29가지 품종의 포도를 사용해 화이트 포트는 14가지 포도 품종으로 생산되며, 비교적 짧은 숙성 기간을 거쳐 주로 식전주로 즐깁니다. 로제 포트는 상쾌한 맛으로 칵테일에 적합하며,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와인입니다. 토니 포트는 작은 배럴에서 오랜 숙성을 통해 밝은 색상과 달콤한 맛을 가지며, 빈티지 포트는 특정 해의 최고 품질 포도로만 생산되는 엄격한 품질의 와인입니다.
카비 까렝은 1859년에 설립되어 현재 스페인의 Sag Vinus 그룹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은 4개의 주요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50개국으로 와인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카비 까렝의 와인 셀러는 1700년대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로, 와인의 숙성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합니다.
숙성 과정에서 약 3%의 와인이 증발하는 "천사의 몫(Angel’s Share)" 현상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 와인의 맛과 향이 더욱 농축됩니다. 가장 오래된 와인은 1934년에 생산되어 최근 병입되었으며, 한 병의 가격은 €1,300입니다. 도로 밸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 지역 중 하나로, 법적으로 보호받는 와인 생산지입니다. 이곳에서는 29가지 포트 와인 품종 외에도, 120가지 이상의 포도로 도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투어는 모두 끝났다. 준비된 두 잔의 와인을 시음하며 파두Fado 공연을 감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시작으로 남성, 여성 가수가 각각 그리고 듀엣으로 구슬프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퇴장하는 길, 비즈니스 이벤트가 있나 보다. 재미있어 보였다.
저녁을 먹자
와인 저장소에서 나오니 8시가 넘어 있었다. 충분히 배가 고플 시간, 주변을 살피며 지도에서 적당한 곳이 없을지 찾기 시작했다. 추천받은 식당은 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을 수집하는 데에 노력이 조금 부족하기도 했다. 푸드 코트 형식의 메르카두에도 둘러보기도 했지만, 왠지 끌리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발견한 곳, 테엠페루 디 마리아Tempero d'Maria. 직역하면, 마리아의 양념이란다. 이는 가정식 요리 또는 포르투갈 전통 요리임을 강조할 때 사용하곤 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오! 신뢰가 갔다. 그리고 야외 테이블은 만석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앞에 섰다. 직원분이 실내도 괜찮냐고 해서 '오케이'를 외치고 들어갔다.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던 뽈뽀Polvo와 하우스 와인을 주문했다. 문어 스테이크와 감자(필수), 그리고 여기는 시래기 느낌 나는 데친 듯한 야채가 나왔다. 은근 매력적이었다. 쉴 새 없이 보낸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시끌벅적한 식당 한가운데에서 잠시 멍 때려 본다. 느긋하게 앉아본 게 오늘 처음 아닐까. 점심을 먹었던 브런치 카페에 대한 기억이 벌써 희미하다. 하루하루가 참으로 길고 즐겁다. 이러한 기분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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