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로운 Nov 10. 2024

24화. 동남아년 구정물 받아 봐라!

 

“레일에 올리기 전에 송장 붙이고 스캔하셨어요?”    

 

매니저의 목소리는 짜증에 절어 있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물었다.      


“네?”     


“제가 아까 박스에 송장 붙이고 스캔하고 레일 올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송장 스캔 안 하면 출고 완료된 게 아니라고요.”


“너무 빨리 말해서 못 알아 들었어요.”    

  

“이딴 식으로 실수해서 여기 센터 손실이 하루에 수 천만 원 나는 거 아세요? 다 사원님 같은 사람 실수 때문이잖아.”     


매니저가 소리 지르자 나는 죄지은 것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오전 내내 실수를 2차례나 하고 버벅거리며 매니저의 짜증 난 얼굴과 한심하다는 얼굴을 마주했는데 칼같이 점심시간이 와 다행이었다.      


커다란 식당 한쪽 테이블에 동바이, 마랑과 모처럼 편하게 앉아 밥을 먹었다. 오전에 2번이나 실수를 해서 마음이 움츠러 들었는데 이렇게 밥을 먹으니 행복했다. 주변으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나도 이젠 제법 김치 먹는 데 익숙해졌다.      


“ต้องฟังรู้เรื่องว่าพูดภาษาเกาหลีได้เร็วแค่ไหนสิ.และถ้าไม่แสดงให้เห็นว่าทำอย่างไร พวกเราจะรู้ได้อย่างไร! (한국말을 어찌나 빨리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그리고 한번 어떻게 하는지 보여 주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마랑이 맞장구쳤다.      


“ใช่แล้ว! ใช่แล้ว! ฉันก็เกือบตายเหมือนกัน. (맞아! 맞아! 나도 죽을 뻔했어.)”   

  

동바이는 아예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며 화를 냈다. 


“เมเนเจอร์เกาหลีไม่ได้สอนแบบดีๆซะหน่อย โมโหอย่างเดียวเลย! (한국 매니저들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화만 내!)”     


“หมือนว่าผู้ดูแลที่นี่จะมีแต่ความโกรธอยู่ในใจนะเ. (여기 관리자들은 마음속에 화만 많은 것 같아.)”     


우리는 태국어로 거리낌 없이 말했다. 주변에 앉은 한국 사람들이 알아듣지는 못할 테니까. 


“เพราะว่ารีบทำทุกวัน สงสัยจะไม่มีที่ให้คลายเครียดที่กองทับถมกัน. (맨날 빨리빨리 하니까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나 봐.)”     


동바이도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คนที่ได้รับของที่ฉันห่อวันนี้ก็คงจะรู้สึกอึ้งเหมือนกัน. (오늘 내가 포장한 물건 받은 사람도 황당할 거야. )” 

    

동바이가 갑자기 주먹과 눈에 힘을 빼고 말했다.      


“เมื่อกี้ตอนห่อฉันห่อพลาสติกน่ะ. เอาสิ่งของใส่ไวนิลแล้ววางไว้บนราวขนส่ง. แล้วก็จะห่อของใส่กล่องอีกครั้ง จะเอาของใส่กล่องแล้วติดด้วยเทป ก็เลยหาเครื่องตัดเทปเจอ แต่มันไม่มีอ่ะ. (내가 아까 포장하는데 비닐 포장을 했거든. 물건을 비닐 안에 넣고 운반 레일에 올렸어. 그리곤 다시 박스 포장을 하려고 물건을 박스 안에 넣고 테이프로 붙이려고 테이프 커터기를 찾는데 없는 거야.)”     


“จริงหรอ? ถ้าไม่มีเทปคัตเตอร์ก็ห่อไม่ได้นะ. (헐 진짜? 테이프 커터기 없으면 포장 못 하잖아.)” 

     

“ถ้าบอกว่าอันนั้นมันหายไป เมเนเจอร์ก็จะโมโหใช่มั้ยหละ. (그거 없어졌다고 얘기하면 매니저가 화 무지하게 내잖아.)”      


“ใช่. ฉันกลัวก็เลยหาดูในสตูดิโอ มองข้างล่างด้วย นอนคว่ำหน้าลงกับพื้นแล้วก็หาไม่เจอเลย. ชัดเจนเลย ตอนแรกวางไว้บนโต๊ะทำงาน. แต่พอมาลองคิดดูแล้ว ตอนห่อพลาสติก. เหมือนมันจะมีของอยู่ข้างในด้วยนะ. ที่ทางเข้าซองพลาสติกกาวมันแข็งแรงมากใช่มั้ยล่ะ.  เหมือนจะติดตรงนั้นนะ. (그래. 내가 졸아서 그거 찾으려고 작업대를 뒤지고 밑에도 보고 바닥도 엎드려서 찾았는데 아무 데도 없는 거야. 분명해 작업대 위에 뒀었는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비닐 포장할 때 그 안에 물건이랑 같이 들어간 것 같아. 비닐 포장지 입구 접착제가 진짜 강력하잖아. 거기에 붙은 것 같아.)”     


나와 마랑은 황당해서 잠시 동바이를 보다가 큭큭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 황당해하는 고객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งั้นลูกค้าที่ได้รับของนั้น ก็ลองเปิดห่อดู แล้วเห็นเครื่องตัดสีแดงออกมาด้วย คงจะตกใจแย่เลย. (그럼 그 물건 받은 고객은 포장 열어보고 빨간 커터기가 같이 나와서 진짜 황당하겠다.)”      


“โอเค. โอเค! (그래. 그래!)”     


마랑이 맞장구치고 동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ผมขอโทษลูกค้าคนนั้นจริงๆ! (내가 진짜 그 고객한테 미안하다!)”     


동바이는 미안하다는 얼굴이 되었지만 우리는 결국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ไม่ได้บอกเมเนเจอร์นะ! (매니저한테는 얘기 안 했어!)”     


동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그게 더 웃겨서 큭큭거리며 웃자 옆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중에는 멀리 보고 있는 석훈도 있었다. 파란색 조끼를 입고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석훈     

아침에 출근하고서야 람야이의 작업장이 바뀐 걸 알게 되었다. 전체 작업장 단위도 한국인과 외국인을 나누었고 나에게는 한국인 사원들만 배치되어 있었다. 아침에 인사부에서 새로 온 인력 배치도에서 람야이가 포장장으로 간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인력 배치는 지혜의 영역이다. 왜 바꿨을까?      


식당에서 람야이를 멀리서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도 지혜가 센터에 나와 있어서 점심 식사 후 인사부를 찾아갔다. 이사실 안에서 말했다.      


“포장장으로 옮겨 줘요.”     


“포장장요? 왜요?”     


지혜의 얼굴이 흐려지며 물었다.     


“집품장 구조하고 워크 플로우 다 파악했거든요. 이번엔 포장장 해야죠. 이왕이면 A3 구역으로.”     


지혜의 얼굴이 좀 구겨진 것 같다. 눈을 바닥으로 내리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거부할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상사이다.  나는 말했다.  


“A3가 포장장 중앙이라 구조 파악하기 좋아요.”     


람야이 

포장장에서 처음 일한 날이라 실수도 하고 버벅대느라 오늘 좀 힘들었다. 오후 6시 땡 하고 나오는 쌍둥이 건물 통로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노을빛이 분홍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동바이, 마랑과 함께 ‘힘들었다’고 불평하며 나오는 통로에는 평소처럼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갔다.      


6층 사물함 구역으로 가는데 동바이가 건너편 통로를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지석!”     


나와 마랑이 놀라 쳐다보자 건너편 통로에서 지석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한국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동바이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그들을 노려봤기 때문에 우리도 함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기숙사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얼른 가자고 재촉하다 굳은 얼굴의 동바이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พวกนายเห็นมั้ย? ผู้หญิงคนนั้นคือแฟนเก่าจีซอก! (너네 봤어? 저 년이 지석 전 여자친구야!)”  

   

나는 건너편을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อย่างนี้นี่เอง. 지석 คนเลวจริงๆ! (그렇구나. 지석 아주 나쁜 놈이네!)” 

    

나는 동바이를 쳐다봤다. 동바이는 흥분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진 듯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고 건너편 통로로 뛰어갔다. 나와 마랑은 당황해서 동바이를 쫓아갔다. 동바이는 지석과 여자친구의 뒤를 따라갔는데 그들은 이미 건물 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ดงบาย! ทำอะไรอยู่? (동바이! 뭐 해?)”     


우리가 동바이를 잡으려고 했지만 동바이는 아랑곳없이 계속 지석을 쫓아갔다. 지석은 여전히 여자친구의 어깨의 팔을 두른 채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곳은 옥상 주차장이다. 동바이는 사람들을 헤치고 지석을 쫓아 계단을 올라갔고 우리도 동바이를 쫓아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 입구로 나가자 한쪽에 잘 조성된 정원과 그 옆으로 널따란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석 와 여자 친구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동바이가 그들을 쫓아가려는 걸 우리가 겨우 잡았다.      


“คุณจะทำอะไร? (뭘 어쩌려고!)”     


우리도 숨을 헉헉거리며 지석을 쳐다봤는데 지석이 자신의 자동차 문을 열고 여자 친구를 안에 다정히 넣어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운전석과 보조석에 각각 앉은 지석과 여자 친구가 몸을 붙이고는 키스를 마구 했다. 그게 자동차 앞 창으로 보였다.      


우리가 잡은 동바이가 소리쳤다.      


“ปล่อย! ฉันไม่สามารถปล่อยให้สองสาวนี้! (놔! 내가 이 두 년놈을 가만 둘 수 없어!)”     


동바이가 얼굴이 빨개져서 숨을 헉헉거리며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내가 동바이의 손을 잡고 물었다.     


“เจ้าจะทำยังไง? (어떻게 하려고?)”     


동바이가 생각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래층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ทำไม?! จะทำอะไรนะ?! (왜?! 뭐 하려고?!)”     


나와 마랑이 외쳤지만 동바이가 대답이 없어 할 수 없이 우리도 따라 내려갔다. 동바이는 아래층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나올 우리 손에는 각각 구정물이 든 플라스틱 통이 들려져 있었다. 화장실 구석 청소도구함에서 밀대 걸레를 빠는 플라스틱 통을 꺼내 물을 붓고 더러운 걸레를 집어넣어 구정물로 만든 것이다.      


동바이가 한 개를 잡고 나와 마랑이 한 개를 잡고 물이 넘치지 않게 옥상으로 다시 올라왔다. 동바이는 대번에 지석의 차로 달려갔다. 앞 창으로는 지석과 여자친구가 여전히 서로를 더듬으며 키스를 하는 게 보였다.     

동바이가 지석의 차 옆으로 다가가 섰다. 짐짓 구정물 통을 숨기고는 옆 창을 두드렸다. 그러자 지석이 멈칫하더니 돌아봤다. 동바이의 얼굴을 보더니 너무 놀랐다. 동바이가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지석이 옆 창문을 열었다. 순간 동바이가 소리쳤다.   

  

“좋니? 너도 당해 봐라!”     


동바이가 구정물 통을 들어 올리며 열린 창 사이로 들이부었다. 콸! 콸!     


“앗! 차가워! 뭐야!”     


지훈이 어푸 어푸거리며 손을 휘저었지만 이미 머리카락과 옷은 구정물에 젖어 버렸고 옆 자리에 앉은 여자 친구에게도 물이 튀었다.   

   

“어푸! 어푸! 야! 미친년아!”     


지석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맛이 어떠니? 좋니? 하하하”      


동바이가 호탕하게 웃자 지석은 격분했다.     

 

“저게!! 어디서 동남아 년이!”     


“뭐야! 동남아 년? 동남아년 구정물 받아 봐라!”     


나와 마랑이 구정물 통을 동바이에게 넘기자 동바이가 한통 더 부었다. 콸! 콸! 지석의 머리로 구정물이 흘러내리자 지석이 거의 정신을 잃는 것 같았다. 거기에 대고 동바이가 소리쳤다. 

     

“왜! 동남아 년이랑 놀았니? 아! 시원하다!”     


“나 너 가만 안 둔다!”   

  

지석이 차 문을 열고 나오며 소리 질렀지만 우리는 돌아서 뛰어나오며 마구 웃었다. 시원한 복수다!  

   

다음날 아침 포장장에 출근해서 너무 놀랐다. 석훈이 A3 라인 매니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눈이 커져서 그를 쳐다 봤고 그도 힐끗 돌아 봤다. 동바이와 마랑도 팔을 꼬집으며 ‘왠일이야! 왠일이야!’ 속삭였고 나는 좋은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전 24화 23화. 한국 남자는 절대로 믿으면 안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