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대일 때 연애를 하고 실연을 당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금도 많은 연애 시에서 그런 문구를 본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 버리면 세상에 아무 의미가 없고 나를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마지막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바닥에 무너져 내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39년 미국에서 개봉된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하에 개봉된 90년 가까이 된 영화이다. 너무 오래되어 저작권마저 소멸되어 있지만 영원한 로맨스 명작이다.
결점이 많지만 주체적인 여성이 바람둥이이지만 멋진 남자과 10여 년에 걸쳐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5년 요즘도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을 멋진 여성으로 치지만 미국 소설가 마가릿 미첼은 1929년 이미 그런 여성 여자 주인공 스칼렛을 그렸다.
문제는 스칼렛이 결점도 많은 캐릭터라는 점이다. 아름다워서 남자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고 있어서 이 남자 저 남자를 가지고 놀고, 자비심이 없어 흑인 노예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때리겠다고 위협하고, 동생의 남자 친구를 가로채기도 하며, 돈을 빌리기 위해 남자를 유혹한다.
그런데 스칼렛은 한 남자에 대한 순정을 가지고 10여 년을 그 남자만을 바라보고, 그 남자가 결혼한 여자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지켜내며, 남북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을 재건하며 굶주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버틀러 또한 만만치 않다. 기름이 반질거리는 머리를 하고 다니면서 음흉한 눈길로 스칼렛을 바라보고, 전쟁의 대의에 헌신하겠다고 소리치는 남자들 사이에서 비웃으며 돈이면 최고라고 외치고, 사창가를 마구 드나들며 감옥에 갇혀서도 뇌물로 편한 생활을 한다.
이 만만치 않은 여자와 남자가 처음 만나는 대목도 심상치 않다. 스칼렛이 오직 사랑하는 남자 애슐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대차게 거절당하는 장면을 버틀러가 우연히 목격한다. 스칼렛은 죽을 듯이 자존심 상해하지만 버틀러는 스칼렛의 그런 열정에 반했다고 말한다.
미국 남북 전쟁의 와중에 스칼렛은 두 번이나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사별하는 가운데 버틀러와 가끔 마주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남북 전쟁을 그린 대목이었다.
작은 동네의 이웃 남자들의 전쟁 중 사망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폭탄이 동네를 때린다. 집들은 초토화되고 폭탄이 폭발하는 중에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피난을 간다. 스칼렛이 지원 나간 병원에서는 부상을 입은 병사의 다리를 마취도 없이 자르고 도망쳐 나온 길거리에는 죽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너무나 비참한 전쟁의 장면이다. 이 영화는 사실 남부의 시선에서 전쟁을 그리기 때문에 패배한 자의 풍경이라 더욱 비참하다. 애슐리의 아이를 임신해 만삭인 멜라니를 스칼렛은 버리지 못해 돌보게 되면서 고향집으로 가지 못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남는다.
멜라니가 아기를 낳자 고향집으로 가기 위해 사창가에서 놀고 있는 버틀러에게 도움을 청한다. 버틀러가 간신히 구해 온 마차를 타고 그와 함께 고향집으로 향하지만 길에서 말에 눈독을 들이는 패잔병들에 대항하고 길을 가득 채운 시체와 부상병들을 피하고 그리고 폭발 직전의 폭탄 사이를 빠져나가야 한다.
버틀러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넘기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길을 간다. 하지만 결국 더 이상 대의를 모른 체 살 수 없다며 버틀러는 스칼렛을 버리고 군대로 향한다. 스칼렛은 가지 말라고 울고 불며 붙잡지만 그가 진한 키스를 남기고 떠나버리자 어쩔 수 없이 마차를 직접 끌며 험한 길을 나선다.
강한 여자의 면모가 드러나 보이는 대목이다. 고향 집에 돌아와서는 더한 불행을 마주한다. 마음의 지주였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실성해 있다. 북부군이 휩쓸고 간 집에는 먹을 게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남아 있는 물건도 없다.
스칼렛은 이 모든 이들을 책임지며 직접 농사를 짓는 강한 여자로 스스로 변한다. 대단히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의 면모이다. 마치 우리나라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서희를 떠올리게 한다. 서희 또한 일제 강점기의 폭압적인 환경 하에서도 자신의 땅과 가족을 지켜낸 이기적 이리만큼 강인한 여성이다.
비슷한 시기 한국과 미국에서 비슷하게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사가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 전쟁이나 비슷한 상황으로 가부장제가 해체되어 나가던 국면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나타난 것은 필연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역시 로맨스 영화이다. 남북 전쟁이 끝나는 시점, 스칼렛은 버틀러와 결국 결혼한다. 두 번째 남편이 그녀를 구하려다 죽은 후이다. 못된 년이다. 그 와중에도 기혼인 애슐리만 걱정한다.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스칼렛이 애슐리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는 버틀러는 아이까지 낳은 후에도 둘 사이를 의심한다. 그럴만한 게 애슐리의 아내 멜라니가 병으로 죽자 스칼렛이 애슐리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안개가 자욱한 날 버틀러는 스칼렛을 떠나 버린다.
뒤늦게 스칼렛은 사랑을 깨닫고 그에게 매달리지만 냉정하게 버림받는다. 이 영화가 로맨스 영화인 걸 알려주는 대목에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바닥에 쓰러져 괴로워하면서도 스칼렛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 (영어 원문, After all, I will think tomorrow 보다 한역이 낫다)’고 중얼거리며 일어선다. 사랑의 폐허 속에서도 일어나는 강인한 여성이다. 이 대사는 나도 가끔 현실에서 사용하는 강력한 주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는 남북 전쟁을 남부의 시각에서 그리기 때문에 흑인 노예를 멍청하거나 남부군을 위해 전투에 나서는 모습으로 그리고 심지어 북부군 흑인에게 테러를 가하는 KKK 자경단을 옹호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런 대목은 냉정하게 판단하며 봐야 한다.
그래서 4시간짜리 이 영화의 시작점에는 ‘이 영화는 당시 역사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역사 그대로 유물로 남겨져야 한다’고 자막이 달려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남부 여성 마가렛 미첼이 쓴 소설이 영화의 원작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스칼렛이 독립을 주장하면서 땅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은 전근대적이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던 시대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다르게 본다면 땅은 여성에게 근본적인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힘을 보인다.
이 영화는 선악을 오가는 여성과 남성, 스칼렛과 버틀러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이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은 결국 로맨스를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선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로맨스를 배반하는 영화라고.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