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사랑 ‘결혼 이야기’

by 김로운

20년 전 30대 중반,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나 100일이 되지 않았을 때 친정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너무 먼 시골에 계셨고 갓난아기를 보기엔 연로하셨다. 더구나 3살 큰애까지 있었다. 나는 입주 육아 도우미를 들였다.


청소, 요리 등 집안일을 안 한다는 조건이었지만 아이 둘을 돌봐야 해서 월급이 상당히 셌다. 그때는 어린이 집이 3살 아이를 받지 않아 큰 애를 어린이 집에 보낼 수 없었다. 외국계 회사에서 과장으로 있으므로 내 월급도 같은 나이 다른 여자들에 비해 적지 않았지만 월급의 90%가 도우미 월급으로 나갔다.


그렇게 해도 피곤해 집에 돌아오면 쌓여 있는 설거지, 내일 아침 요리, 이유식 만들기는 내 몫이었다. 또 토요일 오후 2시가 되면 도우미는 칼같이 집을 나갔다. 그럼 피곤에 전 몸으로도 주말에 다시 아이를 보며 밀린 집안일을 해야만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도우미의 연락을 받으면 회의 도중이라도 회사를 뛰쳐나가야 했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때는 남편의 벌이가 나보다 좋지 않았는데도 회사를 그만두던 건 나였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그런 비슷한 이야기이다. 유망한 여배우였던 니콜은 20대 초반에 재능 넘치는 연극 연출가 찰리를 만나 2초 만에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고 자신의 경력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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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재능과 추진력에 반해 남편의 성공에 합류하겠다는 심정으로 자신을 헌신한다. 그러나 아이가 다섯 살이 넘어간 때 자신이 살아 있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고 남편과의 이혼을 진행한다. 자신의 경력을 찾아가기 위하여.


남편은 결혼 초 니콜에게 결코 그녀의 경력을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고 니콜이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경력을 포기했지만 나중에 그녀는 후회하고 이혼하기로 한다. 이혼하기 전 그녀는 배우로서 기회가 찾아 온 엘에이로 이주하자고 요구하지만 남편은 이미 뉴욕에서 중요한 경력을 진행 중이라 결코 이주할 수 없다. 그래서 니콜은 자신의 경력이 아니라 남편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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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은 아이를 데리고 엘에이로 갔다. 남편은 아이와 함께 뉴욕으로 돌아오라고 요구하지만 니콜은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결코 엘에이를 떠날 수 없다. 다만 남편이 와서 아이를 보는 것은 언제든 좋다.


그래서 둘은 이혼 소송을 진행한다. 사실 이 영화는 결혼 이야기라기보다는 이혼 이야기이다. 미국의 잔혹한 변호사가 개입한 이혼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니콜의 담당 변호사는 여배우인 니콜보다도 화려한 차림인데 대단히 똑똑하다.


니콜이 뉴욕을 떠나 엘에이로 떠나기 전 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으로 약속했다고 찰리의 변호사가 재판정에서 주장한다. 니콜이 찰리와 의논을 했지 약속을 한 적은 없다며 아내와 의논을 하면 남편에게 그게 약속이 되는 거냐고 니콜의 변호사는 되묻는다. 부부 관계의 불균형성 즉 은밀한 가부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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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이에서 만들어진 영화 ‘라라 랜드’에서는 여주인공이 자신의 배우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헌신적이지만 잘 나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 ‘결혼 이야기’는 배우 경력을 버리고 결혼한 여주인공이 자신의 경력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 헌신적이지만 잘 나가는 남편과 헤어진다. 단 이들에게는 아이가 있다.


‘라라 랜드’는 2016년 개봉되었고 ‘결혼 이야기’는 2019년 서비스되고 있으니 조금의 진전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결혼 이야기’에서는 아이라는 중요한 사랑의 결정체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시 이혼 이야기에서 사랑 이야기로 변해 버린다. 두 부부는 모두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이 때문에 싸운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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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는 시작이 이혼 조정 상담사 앞에서 두 부부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서로 얘기하는 장면이다. 비록 니콜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으로 이어지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 니콜이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 글을 아이가 읽는 걸 남편이 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남편은 영화 첫 부분 듣지 못했던 그 글을 읽으며 눈물 흘린다.


둘은 이미 죽을 듯이 싸우고 이혼한 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혼 이야기라기보다는 남아 있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니콜을 연기한 스칼릿 조핸슨과 찰리를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가 대단하다. 개인적으로는 스칼릿 조핸슨을 좋아해서 본 영화이기도 하다. 노아 바움백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극적이지 않고 중얼중얼 웅얼대는 뉴욕식 영화처럼 만들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뉴요커처럼 냉소적이진 않은 점이 미덕이기는 하다. 이혼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이상으로 연재북 ‘로맨스 영화의 판타지 속으로’를 마무리합니다. 읽어 주시고 라이킷 눌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으로는 일제 강점기 여성 독립 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심장을 쏘다’를 이번 주 일요일 13일부터 주 2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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