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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고

김기태 단편 소설집

by 김로운


김기태의 단편 소설집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외국인 노동자를 다루었다는 소문을 듣고 구입했다. (그때 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느라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 소설이 좋았다. 놀라운 건 작가가 현재 K 팝과 같은 대중문화에서부터 계급적 문제까지 모두 다루는 거였다.


‘세상 모든 바다 (세모바)’는 글로벌 K-팝 걸그룹 ‘세상 모든 바다’에서 탈덕한 팬이 주인공이다. ‘세모바’는 다국적 인종으로 이루어진 K-팝 걸그룹으로 소위 개념 연예인이다. 막대한 기부를 하고 환경 보호 운동을 한다. 한국계 일본인인 주인공은 그래서 거리낌 없이 연예인을 좋아한다. 심지어 그 때문에 한국에 유학도 왔다. 그러나 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한국 팬이 사고로 죽자 그의 고향을 찾아 나선다.

이 소설은 결국 주인공이 탈덕하는 결말을 내는데 그건 세모바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너무 멀다고 느껴져서이다. 세모바는 지구상의 모든 바다에 있지만 멀리 있다. 오히려 일본 지하 소극장에서 본 지질한 오타쿠들이 옳은 것 같다. 무대 가까이에서 사랑한다고 외쳐대는.


이 소설은 BTS와 같은 세계적인 K-팝 그룹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잘 그려낸다. 문학의 영역에서 다루지 않았던 분야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기술적으로 소설은 대부분 설명으로 이루어지는데 전개 중에 사고를 넣어서 위기를 만들어낸다. 줄거리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주인공이 변하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기술이다.


‘롤링 선더 러브’ 또한 TV 프로그램이 중요한 소재이다. 주인공은 30대 후반 미혼녀로 직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요즘 티브이에서 유행하는 ‘나는 솔로’와 같은 연애 프로그램에 출현한다는 내용이다. 보통 순수 문학 작품에서 다루지 않은 영역이다.


주인공은 삼십칠 년 동안 그럭저럭 살았고 지금도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만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만족스러워 모험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티피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주인공은 결혼 시장에서 그다지 매력적인 자원이 아니지만 끈질김이 있다. 중요한 게임에서 동물 퇴비 위로 넘어지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손수레 위에 냄새나는 퇴비를 손으로 쓸어 담는다. 그러나 짝짓기에 실패한다. 망신스러워도 끈질기게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 같다.


그녀는 무해하고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 마음이 때론 짐 같고 때론 힘 같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다. 그녀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작가는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희망과 배신, 자만과 추락, 성공과 실패를 오가면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보통 우리의 모습을 경쾌하게 표현한다.

소설 중에는 그녀와 프로그램 참여자들에 대한 인터넷상의 댓글 반응들이 적나라하게 기술되는데 이것 또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작가의 날 선 대응이 보여 재밌다. 소설 중간에는 갑자기 환상이 나온다. 맹희가 프로그램 출연자들과 맥주집에서 만나서 회포를 푸는 장면에서 환상으로 잠시 이어진다. 사실 소설의 전개에는 쓸데없는 부분에 속하지만 오래된 남미의 소설 ‘달콤하고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나오는 현실적 환상처럼 느껴져 즐거웠다. 작가의 도전에 해당하는 것 같다. 소설의 톤을 올리는 데 기여를 했다.


‘전조등’은 애매한 소설이었다. 처음에 읽었을 땐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건가 생각했다. 두 번째 읽으니 의미가 느껴졌다. 주인공은 대기업 직원인 중산층 남자이다. 주인공은 여러 여자와 연애를 하지만 마침내는 중산층인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 전 한밤의 외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무언가를 친다. 그는 자동차를 나와 전조등으로 도로 위를 살피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미스터리로 흘러갈 것 같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끝까지 그의 차에 부딪힌 것의 정체는 나오지 않고 주인공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는다. 소설의 거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작고 예쁜 풍경 속으로 걸어가 그의 아내와 아기의 곁에 앉는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갑자기 이런 문장을 넣는다. ‘그는 어떤 것은 예고될 수 없으며 호명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담대해졌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는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손뼉을 쳤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랐다. 그런데 두 번째 읽으면서 그게 안온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언제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일상을 망쳐버릴 무언가 예를 들면 해고 통지, 사고, 병 같은 것을 표현하고자 한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편은 실패했다. 독자에게 즉각적인 주제를 전달할 수 없다면 실패한 소설이다. 단지 시도는 매우 좋았고 남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문학적 시도였다.


대망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소문만큼 좋은 소설이었다. 소문만큼 좋지 않은 게 많은 세상에서 이건 중요하다. 두 명의 주인공 니콜라이와 진주는 힘들게 사는 20대 청년들이다. 니콜라이는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한국계 러시안이고 진주는 책임감 없는 편모 밑에서 어렵게 컸다.

니콜라이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고 진주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마트에서 알바를 한다.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하는 니콜라이는 영주권을 신청하려면 전년도에 한국인 평균 이상을 벌어야 한다는 걸 알고, 한국인이 되기 힘들다고 얘기한다. 진주는 라면 다섯 봉지 주문장과 십삼만 원 구천 원짜리 이탈리아산 소가죽 벨트 주문장을 보며 이들의 생활은 어떤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마트에서 산책의 속도로 카트를 밀며 하얀 빵과 푸른 야채와 붉은 고기를 사는 사람은 집에 식탁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주의 방에는 벽에 작은 붙박이 책상이 붙어 있고 그건 책상이자, 밥상이자 화장대이자 선반이다. 계급적 차이이다.


둘은 동거를 하며 섹스를 하고 공짜라 다행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공짜라 너무 다행이다. 그들은 하루에 삼분의 일이나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인터넷 댓글에서는 섹스도 하지 말고 닥치고 공부하고 시험에 붙든 돈을 모으든 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잘 못 살았나?’는 질문에 도달한다.

이 소설은 현재 20대 가난한 청년들의 실상을 핍진하게 그리며 계급적 풍경을 그려준다. 그럼에도 무겁게 흘러가지 않는데 16세기 봉제공 엠마 리스의 인터넷 밈인 ‘기립하시오!’와 노래 ‘인터네셔널가’를 이모콘티처럼 끼워 넣음으로써 흔한 계급 갈등을 그리는 무거운 소설이 아니라 현재적 감수성이 가득한 소설이 된다.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무거운 계급 갈등을 한없이 가벼운 아이들 게임으로 그려낸 것과 같다.

마지막 절정은 중국제 식탁을 조립하는데 다리 한쪽이 맞지 않아 기우뚱하는 사건이다. 식탁은 기울어지면서도 쓰러지지는 않는다. 두 남녀는 그냥 웃는다. 그러면서 연애는 망하더라고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거라고 ‘우리는 친한 사이야’하고 말한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에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사건이 결말의 상징을 만들어낸다. 힘든 현실과 그걸 이겨내는 사랑.


작가는 매우 희망적으로 소설을 끝낸다. ‘기립하시오’는 두 사람이 무너지지 않음, 그리고 일어서는 의지를 의미한다. 나는 왜 이 소설의 제목이 ‘기립하시오’가 아니라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두 주인공의 별도의 세계라는 정도로 이해했다. 제목에 상관없이 이 소설은 2024년 소설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무겁고 높은’은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정선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여자 역도 선수가 주인공이다. 역도 과정과 황량한 폐광 도시의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 단편 소설의 작품 중 가장 묘사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 송희는 최고의 선수가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중간 이하의 실력을 가졌다. 그녀에게 목표는 100킬로그램을 드는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역도 대회에서 결국 100킬로그램을 들지 못한다. 그러나 대회 1등을 했지만 110킬로 그램에 실패해서 우는 친구에게 가서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현실에 굴하지 않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다.


소설 전체는 성인으로 접어드는 10대 여자애의 불안을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그린다. 바벨이라는 기구를 통해 상징적으로. 처음 소설은 역도가 ‘오늘의 무게가 내일의 영광’이라고 시작한다. 그러나 마지막 송희에게 바벨은 ‘오늘의 무게가 내일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냥 바벨은 ‘꿈도 희망도 아니다. 그냥 변하지 않는 것,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는 것... 그냥 100 킬로그램의 손때 묻은 쇳덩이’이다. 송희는 어쨌든 들 거라고 결심한다. 딱딱하고 차갑지만 내 손안에 있는 내 것. 내 몫의 약속. 나의 삶이다. ‘무겁고 높은’ 삶이다.

송희는 뜨겁고 힘차게 감당하기로 한다. 폐광촌의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 속에서 송희의 역도만이 뜨겁고 생생하다. 매우 상징이 뛰어난 작품이다. 상징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김기태 작가는 2024년 젊은 작가상을 받은 ‘보편 교양’도 썼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작가가 교사인 줄 알고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다른 직업이 나오질 않았다. 그냥 작가였다. K팝 아이돌의 팬이기도 하고 30대 후반의 미혼녀이기도 하고 40대의 대기업 직원인 중산층 남자이기도 하고 20대 노동자이고 하고 10대 후반의 여자 역도 선수였다. 이토록 성이 바뀌고 계급을 오가다니. 훌륭한 작가이다.


여러 소설 기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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