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남들보다는 국사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전반적으로 얕은 지식은 가지고 있는 편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국사는 나와 멀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나를 잡아 온 것은 일제 강점기하 여성의 삶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분야는 엄청난 재미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놀랄만한 이야기가 많다.
1910년대 이미 자동차를 운전하는 여성이 있었다. 내가 연재한 소설 ‘심장을 쏘다’에서도 운전을 직접 하는 공주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허구이다. 그런데 이금이 작가님이 쓴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도 나온다.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홍주는 하와이에서 쉐보레를 몰고 다닌다. 아마 이건 실제에 기반한 것 같다. (이 소설은 역사 고증이 탄탄하다)
‘알로하, 나의 신부들’는 사진 신부를 주요 소재로 한 일제 강점기하 여성에 대한 소설이다. 사진 신부도 참 놀라운 이야기이다. 1910년대 하와이로 노동하러 간 조선 남자들이 보낸 사진만 보고 결혼하러 간 여성들이다. 남자들이 가짜 사진을 보내 사기 결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감동적인 건 그런 특이한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는 1910년대 10대 혹은 20대 초반 여성들이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 노동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른 강한 삶에 있다.
주인공 버들은 사진 신부 얘기를 듣고 하와이에 가기로 결심한다. ‘포와에 가고 싶었다. 공부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과부의 자식으로 삯바느질하며 살다 비슷한 처지의 남자에게 시집가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삶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한순간도 없었다. 어머니뿐 아니라 딸인 버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시집가 버리면 그만일 딸들은 부모와 남자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녀는 자기의 삶을 살고 싶어 하와이에 갔지만 자기 앞에 남은 건 사탕수수 밭에서 노동하는 남편을 건사하는 것,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봉양하는 일, 밥하고 빨래하는 삶이었다. 그러나 버들은 낙담하지 않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함께 간 동네 친구 홍주와 무당의 딸 송화를 챙긴다.
이 소설이 재미와 의미가 있는 지점은 이렇게 세 여성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어도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고 지원하는 데 있다. 강한 여성 연대의 소설이다. 세 여자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만난 줄리 엄마, 학교 선생인 명옥 등등이 나오며 이들이 가끔은 반목하면서도 의지한다.
소설에서는 일제 강점기하 민중의 삶이 어떻게 일제에 의해 유린당하는지가 나온다. 버들을 중매 선 아줌마의 아들이 하는 자전거 가게는 자본력이 좋은 일본 가게와의 경쟁에 밀려 망하고 버들의 오빠는 길에서 행인들을 괴롭히는 순사에게 대들었다 말발굽에 채어 죽었다. 시골 서당 훈장이었던 아버지는 의병으로 나갔다고 싸우다 죽는다.
하지만 버들의 친정 엄마는 말한다. ‘나라님도 몬 이기는 왜놈을 우찌 이긴단 말입니꺼. 애들 아부지 그레 죽고, 내 아들마저 죽인 놈들이지만도 내는 왜놈들 미워도, 원망도 안 할 깁니더. 남은 아들한테 원수 갚으라고도 안 할 기라예.’ 그래서 버들은 일제의 손길이 없는 하와이에 와서 낙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와이에서도 조선인은 독립운동을 하는데 똘똘 뭉치고 ‘조선인 노동자들은 돈을 벌어도 자신보다 조국을 위해서 쓰기 바빴다. 돈을 모아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 단체에 후원금을 내기 위해 더 악착같이 일했다. 제아무리 잘 살아도 나라 없는 조선 민족이 받는 설움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급기야 파벌 싸움까지도 소설은 잘 드러내고 있다.
버들도 남편이 만주로 무장 투쟁을 하러 떠나자 남의 집 살이와 세탁소를 하며 돈을 벌고 아이들을 기른다. 홍주도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에게 버림받고 버들과 세탁소를 함께 하고 미국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다. 무당의 딸 송화는 늙고 폭력적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신기를 이기지 못해 조선으로 돌아간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모든 여성들이 고난에 맞부딪히면서도 강인하게 이기며 나아간다.
마치 호놀룰루 해변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과 같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다,’라고 엄마들의 삶을 보며 버들의 딸 진주는 말한다.
소설 기술로 보면 파도와 무지개와 같은 상징물을 사용해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소설은 서사와 인물의 생각을 실로 잘 엮어내듯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현재의 역동적인 사건이 진행이 되면서 사이사이 인물의 생각과 과거가 끼어 들어가 유연하게 이어진다. 역동적인 사건 진행 때문에 계속 읽을 힘이 생기고 사이사이 끼어 들어간 생각 때문에 공감을 하게 된다.
마지막 두 장인 ‘판도라 상자’와 ‘나의 엄마들’은 딸인 진주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이 된다. 두 장에서 소설의 문장이 확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1945년에 20살인 진주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두 장은 단어 자체가 훨씬 젊어진다. 앞의 장들이 3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다가 바뀌어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의 역량이 보이는 지점이다.
이 두 장의 시점을 바꾼 것은 버들, 홍주, 송화 세 여성이 모두 진주의 엄마들이자 모든 한국 여성의 어머니인 것을 강하게 던지고자 한 것 때문인 것 같다. 용기 있게 나아가고 서로 의지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 사실 현실은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배척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무너뜨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처럼 힘든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사랑과 연대의 의미를 전하는 게 이 소설의 의미이고 문학의 역할이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이금이 작가님의 소설 '슬픔의 틈새'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