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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설 2020’을 읽고

by 김로운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는 너무나 불안한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이 단편 소설은 2020년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이다. 촛불 혁명 후 한국의 정권에 바뀌면서 직장을 잃은 젊은 여자와 동성애자인 홍콩 남자가 엇갈리며 진술이 이루어진다. 홍콩의 우산 시위와 한국의 80년대 운동권 세대 이야기가 언급된다. 주인공의 친구는 시민 단체 일을 하다 한국의 중산층을 파산시켰고 시징의 한국인 애인은 꼰대라고 부르며 떠났던 아버지가 죽자 한국으로 되돌아온다.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색이 바뀌는 동안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항상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민주 세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떤 이들을 파멸시킨다. 그 속에 사는 개인들은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만 사회의 거대한 흐름과 변화에 상처받는다. 작가는 그런 개인들이 잘못한 건 없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작이다.


사실 소설은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리게 진행되면서 기승전결의 서사 방식을 따르고 있지 않다. 중대한 결점이다. 그럼에도 다수 작가 (독자 아님)들이 2020년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선택한 것을 보면 2020년 (2020년대 아님) 가치 혼란의 시대를 잘 그려내고 힘을 주는 주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김애란의 ‘숲 속 작은 집’은 회사를 그만둔 여자 주인공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동남아 시골 백인 소유의 저택에 한 달 동안 남편과 함께 머무르면서 겪은 이야기이다. 여행의 아름다움을 그린 게 아니라 팁 문화를 다루었다.

주인공은 저택에 매일 청소를 하러 오는 원주민 여자에게 어떻게 팁을 줄까를 고민한다. 사실 팁 주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팁을 주는 게 어색하다. 나도 동남아 여행을 가서 팁을 얼마나,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친정어머니에게 생활비를 주는 문제와 결부시켜 매우 섬세하게 감정을 그려낸다. 시작은 스릴러 같다. 낮 동안에 바깥에서 여행을 하다 돌아온 저녁, 주인공과 남편은 발판 쪽 실내화가 약간 삐뚜름하게 흩어진 걸 발견한다. 처음에는 누가 침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며칠 후 화장실 물품들이 의도적으로 흐트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매일 청소하는 원주민 메이드에게 팁을 주지 않아서라는 걸 깨닫는다. (나의 여행 경험과 유사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팁을 주는 게 상세하게 나온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은 사소하지만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린다. 메이드를 의심하지만 결국 그렇지는 않았다는 과정이 섬세한 감정의 변화와 함께 그려져 있다. 그 과정에서 독립적이던 친정어머니가 자신의 용돈을 바라는 변화를 주인공이 짜증스럽게 느끼는 게 나온다. 주인공은 오해했던 마음이 풀어지며 친정어머니에게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은 김애란의 작품답게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또한 완벽하게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따라가기 편하다.


장류진의 ‘연수’는 제목 그대로 대형 회계법인의 전문 회계사인 주인공이 자동차로 도로 연수를 받는 과정이다. 도입부의 짧은 과거를 제외하면 후반부는 거의 2시간 반 연수가 실시간 묘사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연수 선생님이 아주 특별한 분이다. 사실상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3인칭 주인공 관찰자 시점이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활기찬 소녀의 테니스 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타난 선생님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년 여성이었다. 무뚝뚝하고 거칠게 대하지만 진실하다. 주인공이 돈을 더 내고 시간을 추가하고 싶어도 필요 없다고 거절한다. 결혼을 강요하는 관습적인 어머니의 모습과 교차된다.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자기 차로 하는 도로 연수를 능숙하게 가르쳐준다. 절정에서 선생님은 주인공의 도로 운전 연수를 완성시키기 위해 자기희생을 한다.


기승전결의 완벽한 전개과 함께 절정에서의 희생이라는 법칙도 잘 구현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적 주제 의식이 약하다.


‘오늘의 소설 2020’을 읽으며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일들을 기승전결의 법칙에 맞추어 소설로 엮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은 주제 의식 아니면 캐릭터이다. 그러나 조해진의 소설을 보며 ‘기승전결이 없어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며 편견 없이 묘사하고 주제를 제시하는 거였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은 걸 보면 대중에게 먹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2020년(2020년대 아님)에 이념의 혼란을 그대로 묘사하며 이런 주제를 이끌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2020년 작가들이 이 소설을 최고의 소설이라고 지목한 이유가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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