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재미 삼아 주변 사람들에 인터뷰하듯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주로 어떨 때 미용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자들의 대답은 의외로 제각각 달랐다.
곱슬기가 있는 남편은 바람이 불었는데 머리가 붕 떠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을 때라고 재미있게 답해줬다. 교도관인 내 남동생은 귀 뒤쪽 머리가 지저분해 보일 때라고 했고, 야무진 우리 형부는 명절이나 제사가 다가올 때라고 했다. 쿨한 큰아이는 머리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일 때라는 단순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고, 조금 어렸던 둘째 아이는 엄마가 가라고 할 때라는 깜찍한 대답을 내놓았다. (물론 지금 그 녀석은 내가 아무리 미용실에 가라고 잔소리를 해도 귀찮다고 안 가는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 주변 여자들의 대답은 어땠을까? 다들 머리 손질이 잘 안될 때나 머리카락 끝이 너무 상했을 때 등등 나름의 이유로 미용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대답 속에 담긴, 미용실에 가고 싶어진 진짜 목적은 거의 하나로 귀결되었다. 바로 “기분 전환” 하고 싶다는 것. 쇼트커트 아니면 단발을 왔다 갔다 해온 나도 애교머리를 귀 뒤로 넘겼는데 그게 옆으로 덥수룩하게 튀어나오면 미용실 생각이 나지만, 기분 전환이 좀 필요하다 싶어야 비로소 예약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요즘은 미용실을 다녀와도 그다지 기분 전환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기분을 망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갈수록 내가 바라는 헤어스타일로의 변신이 도통 이루어지기 않기 때문이다. 따라 하고 싶은 헤어스타일 사진을 매번 캡처해서 헤어디자이너에게 보여주기는 하는데, 결과는 희한하게도 늘 ‘아줌마 커트 머리’ 혹은 ‘아줌마 단발머리’ 혹은 ‘아줌마 뽀글 머리’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요즘은 디테일의 차이에 따라 헤어스타일의 이름과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가. 그럼에도 언제나 ‘아줌마 머리’로 통일되는 마법이라니. 이러다가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결과가 ‘할머니 머리’로 통일되는 마법도 일어나겠지? 아무튼 헤어디자이너의 잘못인지 내 머리카락(아님 얼굴?)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절대 저렴하다 할 수 없는 시술비용을 지불하고 미용실을 나오자면 ‘이 돈으로 차라리 소고기를 사 먹었으면 기분 전환이 되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기분을 망치는 두 번째 이유이자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시술하는 내내 의자에 꼼짝없이 갇혀서 커다란 거울을 통해 내 나이를 똑바로 마주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난히 밝은 조명 아래 숨길 수 없는 나의 팔자 주름과 목주름, 칙칙한 피부, 처진 눈꺼풀, 짙어진 기미, 늘어난 흰머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점점 심란해진다. 미용실에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일은 없었을 텐데, 쳇, 괜히 왔어.
그래서 요즘에는 내 나이와 마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여러 권의 전차책을 미리 다운로드하여 미용실에 가서 읽는다. (미용실에 잡지가 있지만, 잡지 속 예쁘고 비싼 것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심란해서요) 그렇게 몇 시간 내내 책을 읽고 있으면, 이건 뭐 미용실에 온 건지 도서관에 온 건지. 노안이 지금보다 더 심해지면 이 짓도 힘들겠지. 그땐 차라리 꾸벅꾸벅 졸까 싶다. 피로라도 풀게.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미용실 갔다 왔다고 말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남편.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종종 못 알아차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용실? 아니, 실은 도서관 갔다 왔어.”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