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우리 집 안으로 우연히 날아들어온 커다란 벌레(무슨 벌레인지는 모르겠다)를 보고 기겁해서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고 둘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하면 한숨을 너무 많이 쉬어요. 근데 그 모습이 보기 좀 그래요.”
가뜩이나 벌레 때문에 당황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아이의 속말을 들은 나는 더 당황했다. 내가 언제 그랬나 싶은,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시크하게 지적한 아이는 그 후 고장 나버린 나 대신 벌레 퇴치에 앞장서더니 쿨하게 퇴장해 버렸다.
내가 뭘 그리 한숨을 많이 쉬었다고 그래?
라고 따지기엔 뜨끔한 구석이 있었다. 언젠가 남편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내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한숨을 자주 쉰다나 뭐라나. 당시 나는 꽤나 진지하게(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꽤나 재수 없게 ㅎㅎ ) 응수했던 것 같다. “아, 그건 한숨이 아니야. 내 몸의 힘을 빼는 나름의 의식이지. 그렇게 종종 한숨을 내뱉으면 긴장도 풀리고 속도 덜 답답한 기분이라서.”
남편은 그닥 수긍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전을 찾아보면 한숨이란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또는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남편에게 피력한 바에 따르면 나의 한숨들은 사전적 정의의 한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숨보다는 숨 고르기에 가깝고, 어쩌면 숨비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와 내뿜는 휘파람 소리처럼, 살아가다가 생기는 잡생각들과 나쁜 감정들이 턱까지 차오르면 폭발하기 전에 미리미리 조금씩 내뿜는 숨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쓸데없이 거창하고 심오하기까지 한 내 한숨의 목적을 알 리 없는 남들에겐 그저 상대방을 걱정시키거나 기운 빠지게 만드는 한숨처럼 보였을 뿐이다. 나 역시도 처음 목적이야 그랬을지 모르나 어느새 그냥 습관이 되어버린 한숨을 불필요한 생각과 감정의 발산이라고 믿으며 그럴싸하게 포장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 명랑하고 유쾌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툭하면 한숨을 푸푸 쉬어대는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내 몸과 마음에 작은 공백들을 만들고 싶다면 잦은 한숨보다는 명상하며 긴 숨을 내쉬어야겠다. 또 한숨 내뱉는 대신 한숨 푹 자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내 어깨를 셀프로 토닥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야지. 괜찮아, 잘될 거야, 그러니 좀 한숨 돌리라고.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