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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Aug 30. 2023

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인문학으로 사랑과 결혼을 사유하다

서양에서는 문어가 음식보다는 바다 괴물로 더 많이 소비된다. 


문어를 ‘즐겨’ 먹는 나라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해산물에 익숙한 몇몇 나라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 머리와 다리가 직통으로 연결된 모습이 괴상하다. 


- 발에 즐비한 빨판은 구두쇠를 상징한다. 


- 물고기를 유인해 잡아먹는 모습이 배반자나 악마 같다.  


- 전설 속 바다 괴물 크라켄이 문어다.      


한마디로 찝찝하다는 말이다. 


한국에선 어떨까? 안동에서 문어는 선비급으로 대접받는다.      


- 매끈하게 둥근 머리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 바다 밑바닥에서 몸을 낮춰 천천히 다니는 습성은 선비들 걸음을 닮았다. 


- 죽음을 각오하고 알을 지키는 절개가 선비와 닮았다.


- 선비들 글 쓰는 데 필수품인 먹물을 머금고 있다.      


뭐, 꿈보다 해몽이니까. 


어쨌든 글(文)을 사랑하는 선비들이 사랑하는 물고기, 그래서 문어(文魚)다. 


이런 이유로 양반 마을 안동에선 제사상에도 문어가 올랐고, 요즘에도 문어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이 안동이다. 


글을 뜻하는 문(文)의 원래 뜻은 ‘무늬’였다. 


몸에 새긴 무늬가 문신(文身)이고, 연못에 돌을 던지면 생기는 물결이 파문(波文)이다. 


천문(天文)은 수많은 별들이 무늬를 새긴 하늘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새기는 무늬는 인문(人文)이다. 


인간은 어디에 무늬를 새기는가?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제 존재를 새기고 떠난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그가 세상에 남긴 흔적의 총량이 인문이다. 


즉, 한 인간의 삶 전체가 인문이다. 


거창하게 갈 것 없다. 


오늘 내가 타인에게 들려준 정보와 친근한 말투, 표정, 운전하며 내뱉었던 쌍소리 하나하나가 다 인문이다. 


나는 오늘 하루, 이 세상에 어떤 무늬를 남겼을까?     


이 글은 아내에게 새긴 내 무늬, 아내가 내게 새긴 무늬에 대한 짧은 보고서이자, 그 무늬가 아름답고 향내 나길 바라는 소원문이다. 


한 사람의 글이 다른 사람 인생을 끝까지 견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그런 글이기를 바란다.      


(제가 쓴 세 번째 책, '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머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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