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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Nov 08. 2021

생산적인 활동에 최적화된 야근체력

쏟아내기

  IT업계에서 주로 쓰는 용어 중에 '크런치 모드'라는게 있다고 한다. 제품 출시 전 완성도를 높이고자 밤낮없야근을 하는 행태를 꼬집어 표현한 말이다. 인터넷 기사를 보다 이 단어를 접하고는 나의 회사 생활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나와는 상관없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누구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 아니었던가! 몸속 깊숙히 체화되어 굳이 머리로 떠올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반응하는 익숙한 용어. 단지 이렇게 지칭함을 몰랐을뿐 이미 오래전부터 각인되어 있던 말.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를 보면 무표정한 인간들이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시계가 없는 백화점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쇼핑을 하듯, 영화 속 직공처럼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릴 새 없이 일에만 파뭍혀 지내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책상 놓인 'To do list'부터 훑었다. 그 전 빼곡히 적어내려간 '오늘 할 일'은 퇴근 무렵이면 상당히 지워져 있어야 마땅했지만 화수분처럼 금세 다시 채워졌다. 무조건 해야 할 중요한 일들부터 우선 순위를 매겨두었지만 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부지불식간에 치고 들어 꼬이고 엉켜서 아수라장이 되다. 그 기록들은 면역력을 잃고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나의 건강진단서같기도 했다. 그렇게 직사각형의 사각틀 안, 정형화된 바운더리 안에 고정되어 나도 하나의 매뉴얼처럼 되어 갔다.

사실 퇴근이라는 개념도 무색할 정도로 출퇴근의 경계가 모호한 혼돈의 시간을 보냈기에 일별, 주별, 월별, 연간으로 세포처럼 쪼개어진 숨막히는 계획속에 내 몸은 담금주처럼 봉인되어 있었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퇴근 시간은 기약없는 유동성 띠었기에 늘 찜찜한 마음으로 자주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잔업으로 채운 하루에 과식한 부대껴서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이는 장기간 미국이나 유럽으로 해외 출장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쇼핑몰이 문을 여닫는 시간에 맞춰 하루종일 붙박이처럼 머물며 시장조사를 했다. 다리가 편히 쉬는 시간은 잠시의 식사 시간과 이동 중 차안에서 정도였다. 호텔로 귀가후엔 구매한 샘플 정리, 아이템 코디, 영수증 정산, 사내메일 확인, 다음날 일정 점검새벽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신입때의 초심과 열정으로, 다음에는 그런 것들이 당연시되는 조직 문화에 눈치보며 수동적으로, 나중에는 습관적인 관행으로 이 박혀서…그렇게 타국에서도 몸은 야근에 금세 적응되다.

  

  미련할 정도로 통증을 경시하는 무식한 야근 체력을 갖춘게 문제였으려나. 빛좋은 개살구처럼 허울뿐인 책임감과 성실성이라는 프레임 속에 스스로를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판단이 결여된 실행력만 탁월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 달트가 축복이 아닌 고난의 시작점인 셈이었다. 더구나 싫어도 거절을 못하고 힘들어도 묵묵히 해내니 늘 일을 떠앉고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중된 업무로 어느새 얼굴은 굳어지고 성과는 일정수준 이상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업무의 박스권에 갖혔다. 신나고 즐겁게 일하지 못하는 것이 금방 티가 나니 해놓고도 좋은 소리를 못듣고 인정받지 못하 억울일들이 비일비재해졌다. 악순환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강인한 줄로만 알았던 내가 붕괴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볼과 코에 루프스 환자처럼 붉은 상흔이 생겼다. 심지어 딱딱하게 살성이 변해갔다. 피부과에서는 '생체의 내부환경이 외부 인자인 항원에 대해서 방어하는 면역성이 떨어진 것'이라는 원론적인 얘기와 함께 스테로이드 성분이 든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엔 간질간입꼬리에 신호가 오더니 찢기고 피가 나며 포진이 생겨났다. 볼과 코의 상흔이 옅어질 무렵 바톤 터치되 입술에 선홍빛 자국이 남은 것이다.

막상 피곤이 겉으로 정체를 드러내니 전에 품었던 간사한 마음 반성하게 되다. 사실 매일같이 지속되는 야근에도 쓰러지지 않고 끄덕없이 버텨내는 체력이 야속하고, 무도 힘든걸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해했다. 못난 심술투성이 내면 아이를 달래줄 주변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던것이다. 그러다 이런 방식으로 타인에게 주목받게 되니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었다. 모두 삐에로처럼 과장된 내 입술끝에 시선이 머물렀고 걱정스러운듯, 혹은 이상한 듯 바라보았다. 용하다는 피부과와 한의원을 소개받았고 극심한 스트레와 동반된 면역저하에 심심한 위로를 표했다. 회식 자리에선 아무렇지 않는듯 잔에 따라지던 술을 회수당했다. 걔중에는 모두 힘들게 야근하고 고생하는데 왜 유독 생색인지, 나약하게 자기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원망섞인 따가운 눈초리도 섞여있는것같았다.

한때는 당차게 일을 쳐내던 강철 체력의 소유자에서 거품이 빠진 추레한 민낯을 들킨것 같아 민망해졌다. 

남의 시선보다 괴로운 것은 거울로 대면내 모습과 표정이었다. 원체 특별한 구석없는 그저그런 외모이지만 붉은 상흔 하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추몰골의 소유자로 전락시 것 같아 신경쓰였다.

  회사 붙박이처럼 밤낮으로떠돌던 지박령의 삶에서 정작 얻은 거라고는 면역력 교란, 자존감 상실, 번아웃, 우울증, 무기력같은  육체에서 기인정신적 피폐함(혹은 순서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이라니!미치도록 서글퍼졌다. 설사 이것이 피해 의식일지라도 그걸 견뎌내 못하는 나의 연약한 멘탈은 또 어쩔것인지!


  신입 시절부터 목업 기간을 거쳐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목 어딘가에서 얻게 치명적질병으로 인해 회사 생활의 근간이 흔들릴 위기가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여기서 멈춘다면 그동안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어 날라갈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한 단계 도약커녕 곧 바닥으로 끌어쳐져 침잠것만 같았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떨쳐내고 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아야겠다는 강박감에 사로혔다. 마음을 단히 먹으면 문없을거라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하지생산 활동이 최화된 야근 체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퓨즈가 탁 끊어진 것처럼 인생의 두꺼비집이 내려갔다.

여름 휴가지에서 당 교사고로 알게된 디스크가 발단이었다. 잘못된 자세로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했던 것이 원인이었그것이 교통사고로 가중되었을 뿐이었다.

나만 아는 육신의 고통이 늘어갔다.

그뿐 아니라 눈감고 외면하려했던 주변인들의 고통도 더이버티기 힘들다는 암시를 보냈다. 아들1의 아토피는 얼굴까지 치고 올라왔고 직장맘인 딸을 위해 몇년을 사내아이 둘을 돌보던 부모님의 위태로운 건상태눈에 밟혔다.

총체난국을 맞이하며 나지 않을 것만 같잔업과 야근의 굴레를 끊어야할때가 음를 직감했다. 종이로 살을 베이는 것처럼 결국 나를 퇴사로 이데에는 지리야근의 고단함이 결정적이유는 아니었던 셈이다. 수면 위로 야금야금 드러나던 다른 수습 불가한 사항들이 모여 이뤄낸 결정이었다. 

동안 등한시해오던 부분을 돌보삶의 균형을 추기 위해 나는 결국 제발로 걸어나왔다.


  더이새벽녘 음습공기를 맡으며 퀘퀘한 택시에서 퀭한 으로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내리지 않아도 된다.

 쏟았던 물리시간을 휴식과 놀이 그리고 가족들에게 내어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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