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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Nov 30. 2021

만약에…어땠을까?

밀어내기

  삶이 피폐해진다고 느껴질때마다 버석거림에 혼자 되내이는 말들이 있다.

"만약에 혼자 살았다면 어땠을까?"

  어느 여름날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옥상 달빛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공기 중에 흩어지는 짙은 선율에 마음이 물렁해지고 드러내지 않았던 연약한 감수성이 터져나왔다. 감정을 추스릴 새 없이 눈가 사이로 눈물이 또르르 쏟아졌다.

나란 인간은 아무 일 없이도 너무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공감하는 장면이 나오면 감정이입을 곧바로 하는편이다. 눈물을 아끼지 않고 분출하는 유형인데 옥상달빛이라니! 이건 말 다했다.

더구나 그 시기 몹시도 힘든 매일을 견뎌내는 중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심야 버스 안에서 혼자 살았다면 펼쳐졌을지 모를 예술가로서의 삶을 그려보았다.

공간적 배경은 한강이 지척인 망원동과 합정역 사이 원룸 오피스텔 정도로 해두자. 혹은 나홀로 아파트여도 좋겠다.

현재와 별반 다를것 없는 추례한 차림으로 맥주를 사러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퇴근 후 방전된 장난감 로봇처럼 집에  널브러져 TV 채널을 돌리고 있을 모습도 연달아 떠오른다.

주말엔 붙박이 가구처럼 가수면 상태로 늘어지 숙면을 취하다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을 만나 외로움을 토로하며 보상 심리로 맛집 투어를 다니겠지. 좀더 생산적인 주말을 보내고 싶어지면 산책이나 자전거 하이킹을 다닐수도 있겠다. 혹은 어반 스케치 동호에 가입하 북정마을, 개미마을, 성곽길 등을 헤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없었다면 관심두지 않았을 부동산 임장대신 말이다. 재개발 단계가 사업시행 인가인지 관리처분 단계인건지, P는 어느 정도 붙었는지를 가늠하는 탐욕적인 시선이 아 그 마을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말이다. 옛길을  미학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예술로 승화시켜보싶은 순수한 열정을 갖고 말이다.

혼자만의 삶이었다면 재산증식따윈 아무래도 괜찮다며 멀찍이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아니 실은 관심이 아니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 적어도 현재보다 소극적으로 접근했을 것에는 틀림없다.

그보다의 충만한 여가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두었을 거란 말이다.

  그와 더불어 우선 순위에 뒤로 밀어놓은 것들을 가까이 했을 것이다. 아이들 학원비나 4인 가족의 막대한 식비 대신 미용을 위한 피부과, 금액적 부담으로 망설이던 치과, 왠지 호사를 부리는  같아 망설이던 고가의 치장품 같은 것들을 들였을 것이다.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기에한계가 있겠지 선뜻 실행하지 못했을 본연의 욕망에 충실한 과감하고 이기적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직업에 있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고자하는 지점으로 급선회할 기를 냈을도 모른다. 부양 가족이 있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원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기가 좀더 수월했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은 업의 변화가 없었을지라도 괜찮다. 아마 대학때의 전공을 살린 자부심안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을 것이므로. 창작의 한계를 넘고,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고, 확고한 신념을 안고, 예리분석을 통해 직업관을 펼보이 애쓰고 있었을 것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넘어 성한 일임을 자각하고 열과 성을 다해 건실 직장인으로 살나갔을 것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란 중대차한 임무를 완성할 부담이 없으니 무게 중심을 자아 실현과 일인 가구 생계에 초점을 두고 가열차게 업무에 매진을 것이다.

적어도 나의 상상 속에서는.


  내 곁에도 아마 다른 부류의 인간 군상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만남의 결이 조금다르지 않았을까?  

반경 1.5km 이내로 구성집단이 아닌  원하고 추구하는 삶에 근접한 사람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지금은 개인적인 친분이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아이로 인해 맺어진 관계에 치중 있지만.

물론 관계의 성격에 따라 마음의 벽을 친다는 것 아니다. 어느 쪽이었어도 관계의 호오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분명것은 그 어떤 경우라도 상대방의 삶에 깊이 관여해 생채기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존재의 자리가 밋밋하지 않되 척이지도 않을 적정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이어가고 균형을 맞추고 싶다 의미이다.

더불어 혼자여도, 고립된 상태에서도 의기소침하거나 외로워하지 않고 꿋꿋하게 잘지낼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비교적 시간마음껏 유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없이 원하는 만큼 사사로이 쓸 수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동일한 정해진 시간의 한계가 있겠지만 그 쓰임 면에서 내 의지를 많이 관철시킬 수 있다.

머물 수 있는대로, 떠나 싶은대로 바라고 원하는 방으로 살수있다. 얼마매력적인 일인건지! 주체성을 갖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뛰는 일인!

  망상일모르지만 한껏 기대를 품어본다. 현세에서 혼탁한 삶의 허물을 밀어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꼭 그리해보겠다고.

윤회를 확신하지는 않지만 있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질과 현상은 파악하고 믿으려하지 않으서 이윤과 실리만 취하고픈 기적인 마음의 발로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회귀한다해도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의 무게 총량의 법칙 결국에는 지금과 성격은 다르나 또다른 비슷한 크기의 역경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가본 길을 걸어가는데 주저함은 없을것만 같다.

결국 혼자는 이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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