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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05. 2021

정작 선행을 했어야만 했던 것

밀어내기

  인생을 살다보니 정작 지나고 나서 뒤늦게 알게 되는 것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섣불리 결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들이 그러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선행에 대한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영어는 중3까지 대입 준비를 끝내야 하고 수학은 심화와 현행을 병행하며 2~3년치를 돌려야 한다는 누구나 다 알지만 하기 힘든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정작 선행을 했어야만 했던 것은 비단 영, 수만이 아니었다. 인생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한 지혜, 삶의 길목에서 맞닥뜨리는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 원하는 방향으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 등에 관해 깊은 고민을 했어야했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심오한 고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신을 갖고 기본적인 방향성과 틀을 갖추고 움직여야했다.


  주어진대로,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피동적인 삶을 산 대가로 성인이 된 뒤의 기나긴 삶은 허둥대고 버석거렸다. 감정에 따라 직관적으로 움직이며 성급하고 서툰 결정을 내렸고 그에 합당한 결과가 초래한 현재이렇게 흘러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신중을 기해 결정하고 선택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별다른 사전준비없이 남들이 하니까, 불안감이 엄습해서, 물리적인 나이상 적령기라 생각해서, 운명과 사랑의 힘을 믿어서 그 길에 들어섰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게 될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채. 꽤 오랜 기간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엄청난 파급력을 예상하지 못한 채.

결혼과 양육이 진정 원하는 삶의 길목에 거쳐가야 할 관문인지, 나와 그는 준비가 갖춰진 적합한 사람인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못하고 한순간 그렇게 누군가의 부인, 엄마가 되어버렸다.  

  서로에게 치명적인 결점이나 흠이 있거나 믿음의 벨트가 끊어질 정도의 대사기극이 있는것은 아닐진대 늘 삐끄덕대는 일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누구나 결혼을 앞두고 가장 밑바닥의 모습까지 생각해보지는 않을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한번쯤은 서로의 이면을 보게될 것을 염두해 두었어야 했다. 말캉하고 몰랑한 사랑이란 감정은 유효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을 간과해서는 안되었다.


  태초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생명의 잉태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하지 못했다. 부모로서 책임져야 할 양육의 무게와 사회의 일원으로 환원시켜야 할 책무를 결코 잊어서는 안되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아이를 양육하며 원가족의 그림자가 드리워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의 되물림이 일어남에 괴롭기도 하고, 내 감정의 밑바닥을 마주할 수도 있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정신까지 극한에 다다르기도 한다. 아이의 사춘기에는 정신이 체력을 좀먹게 하는 피로도 최상의 위기가 찾아온다.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 성장의 보람과 함께 들이닥치는 이런 상황들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인생의 큰 파도를 넘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정작 선행을 했어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준비없이 무모하게 삶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었는지.

  자기성찰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원하고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잡아나갔다면 어땠을까? 오랜 기간 나를 들여다 보고 알아갔다면 반성과 후회가 좀 줄었을까?

아이들은 적어도 나처럼 늦은 후회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행착오를 덜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삶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고 지지해줬으면 좋겠다. 남을 대하는 태도에도 관심이 깃든 따스함이 묻어났음 좋겠다. 인생의 행로를 함께 하고 싶은 소중한 인연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되길 바란다. 상대방에게 헛된 기대와 허황된 욕심을 품기보다 그 자체로 수용하고 서로의 결핍을 보완하면서 공동의 선을 이루는 앞날을 살아가길 바란다.

인연을 찾는 숨바꼭질보다 결혼을 한다면 어떤 자세로 임할지, 서로가 가질 덕목에 대한 진중한 대화가 우선되었으면 좋겠다.

부디 결혼이 주는 무게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신혼의 삶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시작할지, 아이의 학령기에는 어느 동네에서 키울지 주택에 대한 계획, 새롭게 형성될 가족과의 관계, 호칭 정리, 효율적인 살림을 위한 전자제품 목록, 빠르고 합리적인 가사 분배 정도까진 어느 정도 구체적인 상의를 마치고 결혼하기를 추천한다. 비단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법이나 아이 성교육, 학원이나 교육 정보까지 진도를 빼진 않더라도.

  부부 교육에 참가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양육 전문가들의 부모 강연을 듣고, 육아서와 심리서를 훑어보고, 적어도 임신출산 대백과 한권쯤은 대략적으로 들춰보고 아이를 낳기를 권유한다. 조카나 친구의 자녀들을 적어도 몇시간 이상은 보고 마음의 예행 연습을 한 뒤 이 세계로 넘어오기를 추천한다.

아직 미성숙한 어른 아이가 들어오기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순리대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늘 변수와 복병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당황해서 후회하느라 진을 빼고 혹여 포기하지 않도록 플랜 B를 세워둬야 한다.

현행을 단단하고 공고하게 다지고 갔으면 한다. 그래야 그 토대 위에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선행의 길이 열린다.

  잘못 들어선 길은 돌아나오고, 방향을 급선회하면 된다. 안맞는 회사는 퇴사하고, 불편한 인간관계는 손절하면 된다. 인생의 경로에서 많이 이탈했더라도 마음을 다잡고 수정하면 된다. 하지만 어떤 시행착오의 경우에는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결혼해서 안맞는 상대와 작별을 고하는 것, 자식과 연을 끊는 것 같은 가족과의 이별이 그러하다.


  다음 생에는 자아성찰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선행을 충분히 거친 뒤 가족을 맞이하겠다고 조용히 읖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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