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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15. 2021

퇴사, 삶에서까지 은퇴는 아니지만.

덜어내기

  직원들을 상대로 분기별로 진행되던 워크숍들이 있었다. 주제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본인의 강점과 MBTI 찾기, 승진자 대상 리더쉽 프로그램, 회장님 특강 등 조직의 일원으로써 자격을 갖추고 능력을 함양시키기 위한 것들이었다. 성과에 초점이 맞춰진 목적이 분명한 교육들이었음에 틀림없지만 내용까지 소상히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일회성에 그칠 정도로 큰 영향을 주진 못했나보다.

  조직에서 개인으로 소속이 변하고나서 비교적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시간들이 늘었다. 가족들이 학교와 직장으로 향한 뒤 나에게 허용된 몇 시간의 자유 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해보고 싶었다. 의무적으로 해내야할 가사로만 채우기에 무용해질것만 같 삶 참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사회인이 아니라는 것,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것은 자유보다 조금 더 큰 상실감을 주었다. 

  주부로 신분이 바뀌며 마음이 허해졌을 때 사춘기 자녀와의 의사소통법, 자녀 성교육, 자기주도 학습법, 하브루타, 엄마표 영어 학습법, 입시전략, 재테크 강좌, 3D 프린팅, 철학과 인문학 강의들을 만나게 되었다.

원하는 강좌를 필요한 적기에 받을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신나는 일이었다. 학업을 마치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주도성을 회복하고 재교육을 통해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인생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지내는 법을 알기 위한 족집게 속성 과외와도 같던 이 시간들은 오래도록 나를 차후 순위로 밀어놓고 산 데 대한 보상이었고, 완성된 인격체로 거듭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가 쓸모있는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기분이 들며 자유롭게 부유하는 삶도 나쁘지 않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전에는 미용실에 가 필요한 사진 자료가 있는지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패션 잡지들을 뒤적였다. 머리가 완성되는 그 몇 시간조차 내 스타일의 완성이 아닌 일을 위한 투자에 기꺼이 내주었다. 이젠 내 나이대에 맞는 여성 잡지를 펴들고 그저 편하게 원하는 가십거리를 읽으며 헤어의 완성도를 곁눈질할 여유가 생겼다.

시장조사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으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던 백화점에는 어지간해서는 발길을 들이지 않는다. 트렌드를 염탐하지 않아도 되고, 샘플구매나 본인 착장용 옷을 살 일도 이젠 없다. 오히려 있는 옷들의 정리가 급선무였다.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무려 10박스에 달하는 의류 잡화들을 떠나보내버린 일이다. 마치 단단히 벼르고 기다려 왔다는 듯 단촐하고 조그맣게 살겠다는 마음의 발로에 나온 행동이었다.

소모품 성격의 속옷, 양말, 실내복 등을 제외하고는 쇼핑의 범위와 횟수를 현저히 줄여나갔다. 쇼핑 장소에도 범위를 한정시켜서 최소한의 검색으로 시간을 아끼고 가급적 가까운 동선에서 해결해서 에너지를 줄였다.

막상 생산적인 활동에 노출되지 않기로 마음먹으니 정작 필요한 옷가지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또다시 옷장이 터져나갔지만.

  회사 재직 중에는 업무 특성상 쇼핑의 신내림이 이루어진듯 사입과 치장에 애를 썼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엥겔 지수가 높고, 관찰과 조사로 다져진 눈은 가성비 좋은 최상품-과연 존재하기는 하는걸까?-을 원시 시대의 수렵자처럼 의기양양하게 획득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쓰여졌다.


  퇴사를 하고 생활에 생긴 일말의 변화 중 특히 체감는 것들이 있다.

불편한 식사대신 맘편한 혼밥러가 된 그중 하나이다. 시간적 속박, 메뉴의 한계, 어색한 대화의 연결이나 침묵의 단절을 견딜 필요가 없어졌다.

허기가 불편한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발동하지 않을 때에도 어쩔 수 없이 목으로 삼켜야되는 시간이 있었다. 가령 상사에게 깨지거나 팀원들과의 균열을 겪거나 성과나 결과치의 보잘것없음에 한없이 움츠러드는 날에도 어김없이 점심 시간은 도래했다. 정해진 1시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페소나를 쓰고 그 속에 섞여 우적우적 음식물을 삼켜야했다. 메뉴 결정에도 권력의 힘은 알게모르게 작용하는 법이어서 상사와 함께할때면 눈치껏 취향을 양보해야했다. 상사가 다이어트중이면 조용히 샐러드집으로 향했고, 기력이 쇠하다면 고기를 구웠다.

가끔은 길어진 회의와 들이닥업무로 식사 시간에 방해를 받기도 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었지만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로 끝맺음이 되고는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4시간 채 남짓되지 않는 시간-요즘에는 코로나로  집에 상주하는 날이 더 많아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쓰임의 밀도가 달라졌다. 임장을 다니거나 도서관이나 강의를 들으러 간다거나 산책을 겸한 운동을 나설 수 있다. 내가 원하는대로 유용할 수 있는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회의 시간이나 업무 시간에 졸지 않기위해 마시던 커피도 비교적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마실 수 있다. 인스턴트 믹스 커피라도 그다지 아쉬울 이 없다.

회사 소속일때만 가야할 필요성을 느낀 조건부 경조사에서도 해방이다. 근무중일때만 유효하던 인간관계의 범위도 상당히 축소되며 시한부 만남이 종료되었다.


  퇴사한지 얼마 안되었을무렵 외국에서 20년 남짓 살다와 한국어가 오히려 낯설어졌을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은퇴를 축하해. 그동안 고생많았으니 이제 편히 쉬어."

인생길이 구만리로 아직 팔팔한 나는 그렇게 강제은퇴를 명받았다. 깜찍하게도 친구의 단어 선택 실수기나긴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활자로 확인하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가끔 집근처 마트를 가며, 목에 사원증을 걸고 커피를 들고 분주한 발걸음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직장인들을 목격한다. 그 목에 맨 물건이 주는 소속감과 책임감,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의 공간, 1달마다 주어지는 금전적 유혹을 알기에 아쉬움이 몰려온다. 

하지만 소속감없이 부유하듯 움직일 수 있는 유동있는 이 삶도 제법 괜찮.

두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 안가본 길에 대한 미련을 덜 수 있게끔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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