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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끼 Oct 22. 2023

집안일 블루스

집안일은 참 신기하다. 마음먹고 해치우고 난 후, 잠시라도 신경을 안 쓴 순간 정말 두 배 세 배 불어나 있다. 청소, 빨래, 설거지 모두 그때 그때 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극장 생활을 하던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게으른 면이 있었다.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 순간 미룰 수 없게 되면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집안 일을 하곤 했다.     

난 밖에 나와서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빨래가 쌓이고, 설거지가 쌓이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는 것을. 공연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이 될 때도 많다. 그때가 되면 씻는 것도 귀찮아 모두가 흐느적대며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오늘 흘린 땀, 먹은 먼지가 고스란히 묻은 옷을 빨래통에 넣는다. 네 명이니 단순히 계산해도 양말 8개, 바지 4개, 웃옷 4개가 나온다. 샤워라도 한다면 속옷도 4개가 나온다. 빨래가 힘든 점은 세탁기를 돌리는 것 자체가 아니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기다림 끝에 세탁기 문을 열고, 빨래를 모두 건져서 거실에 너는 것이다. 세탁기를 돌리면 1-2시간은 걸린다. 누가 그 상황에서 빨래를 하고 싶을까?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야식을 먹을 때도 있었다. 라면도 많이 먹었고 치킨도 많이 먹었다. 무엇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컵라면, 도시락으로 떼울 때도 있었고, 배달을 시켜 먹을 때도 있었다. 어쨌든 먹게 되면 수저, 앞 접시 정도는 반드시 설거지 거리가 발생한다. 한 명당 수저 1세트씩 4세트, 앞 접시만 4개. 밥을 다 먹고, 먹은 접시를 싱크대로 옮기는 것 까지는 순조롭다. 하지만 이미 술도 마신, 연습을 하고 와서 지친 몸들이다. 누가 거기서 설거지를 하고 싶을까?     


어쨌든 나는 넷이 살 때 빨래와 설거지를 정말 많이 했다. 빨래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팬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빨래가 쌓이고 쌓이면 나는 팬티가 없어서 못 입었던 적도 있다. 양말이 없어서 짝짝이를 신기도 했다. 이런 일이 한번, 두 번 반복되자 나는 빨래에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와 살며 빨래 설거지를 하며 느낀 점은 정말 빨래가 금방 생긴다는 점이다. 네 명이 살았던 집이니, 빨래가 네 배로 생긴다. 설거지 역시 한 끼 식사만 같이 먹어도 네 명 분의 설거지가 나오는 셈이다. 언젠가 내가 너무 많이 치우는 것이 조금 불만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불만을 말해서 무엇할까. 그냥 제일 궁한 사람이 하는 법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안일을 했다. 집안일을 하며 엄마가 많이 떠올랐다. 우리 네 식구의 빨래,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빠가 그렇게 자주 설거지를 도와주고, 나와 동생에게도 설거지를 시킨 것이 이해가 갔다. 나는 밖에 나와 살면서 더 효자가 된 것 같다.     


내가 빨래와 설거지에 참을 성이 없듯, 여자친구는 바닥의 먼지 청소에 참을 성이 없었다. 나는 바닥에 먼지가 많은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웬만큼 있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이런 걸 못 견뎠다. 결국 청소기, 걸레질은 여자친구가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우리 둘은 집안일 밸런스가 잘 맞았다고 하겠다.      


지금은 집에 건조기가 있어서 참 편하다. 이제 건조기가 없던 시절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다음 내 목표는 식기 세척기다. 음식물 쓰레기 분해기도 정말 탐이 난다. 이 두 가지만 더 갖춰지면 삶의 질이 더 올라갈 것 같다. 밖에서 생활하며 점점 주부 같은 꿈을 갖게 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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