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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끼 Oct 22. 2023

둘이 삽니다

이전에도 언급 했듯, 나와 여자친구, 극장 동생 두 명 총 네명이 살던 집은 정말 너무 추웠다. 겨울 밤에는 온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잠이 들었고, 깨면 몸이 뻐근했다. 거실은 정말 패딩을 입고 나가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또 집은 너무 높이 있었다. 45도 이상의 경사를 5분 이상 올라야 집이 나왔다. LPG 난방을 쓸 정도로 오래된 집이라, 벌레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여자친구가 비명을 지르길래 나가보니, 내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있기도 했다.      


여자친구와 내 방은 정말 좁았다. 토퍼를 하나 깔면 옷장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놓을 수 없었다. 아마 한 평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 나와 여자친구는 결국 8월, 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8개월이나 그곳에서 산 것도 대단한 일이다.     


여자친구와 여러 집을 둘러 보았다. 사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볼 수 있는 방은 정해져 있었다. 여자친구의 돈 500(이전 집의 보증금의 절반), 그리고 내가 새롭게 500을 대출해서 보증금 1000만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월세는 적을수록 좋다보니, 우리는 주로 반지하 방, 혹은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집을 보아야했다. 그래도 이전 집에 살다 보니 어떤 집이 좋은 집이고, 어떤 집이 가면 안 되는 집인지 대충은 감이 잡혔다. -라고 착각을 했다.-     


그러다 연출이 당근마켓에서 집을 하나 봤다며 우리에게 추천해주었다. 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 였다. 평지에 있었고 방이 두 개있는 집이었다. 둘이 살기에도 아주 쾌적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넓은데도 월세가 1000에 55만원. 세탁기가 뒤쪽에 있는 마당 밖에 있고, 앞에 마당에는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안 들어갈 이유가 없는 집이었다. 우리는 그 집을 보고 20분 정도 상의를 한뒤, 계약을 하겠다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는 갈색 대문이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래는 열쇠가 있는데, 문이 조금 오래되어서 힘껏 밀면 그대로 문이 열렸다. 우리는 대문 열쇠를 그래서 들고다닌 적이 없다.- 마당이 있고, 오른 쪽에 현관문이 있었다.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면 집에서 가장 넓은 거실 겸 부엌이 나온다. 현관 기준, 거실의 위쪽에는 자는 방, 왼쪽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자는 방의 벽 한쪽에는 붙박이 옷장이 3개나 있어서, 우리 모든 옷을 넣어도 자리가 남았다. 작은 방에는 책상과 의자를 하나 놓고 노트북을 두었다. 책장도 있어서 책들을 꽃아 두었다.  

    

극장에서는 집이 조금 거리가 있었다. 버스를 타면 10분, 걸어서는 25분이 걸렸다. 다만 극장과 우리 집 사이에는 높은 언덕이 있어서 걸어 다니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걸어다니면 운동이 되겠다며 마냥 들떠있었다.     


우선 집 비밀번호를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날짜로 바꾸었다. 퀸사이즈 침대를 주문했다. 하지만 침대는 다른 침구류와는 달리 오는 데 시간이 조금 많이 걸렸다. 그래서 올 때까지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 이불이 얇아서 바닥이 딱딱하게 느껴졌다.      


나는 예전부터 모든 옷들을 걸어 두고 싶었다. 옷을 개는 게 귀찮기도 했고, 개어두면 구겨지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또 개 두면 밑에 깔린 옷들을 찾기 위해 위에 있는 옷들을 모두 들어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옷걸이를 엄청 많이 사야 했다. 세탁 바구니도 사고, 밥솥도 하나 샀다. 그 외에도 새로 사야할 물건은 참 많았다. 이사를 할 때는 우리가 직접 해서 돈이 많이 들진 않았지만, 새로운 물건들을 사는 데 200만원 가까이 든 것 같았다. 당시 내가 신진 예술인 지원금을 받은 상태여서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참 좋았다. 넓고, 쾌적했다. 평지에 있는 집은 정말 천국이었다. 집에 오는 데 숨을 헐떡거리지 않아도 되고, 땀을 흘려도 되지 않았다. 신혼집처럼 알콩달콩 집을 꾸미는 것도 재미있었다.   

   

둘이 살기 시작하고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각각 29년, 28년을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고방식으로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우선 빨래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가 생겼다. 여자친구는 수건을 따로 빨고 싶어 했다. 섬유유연제를 사용하지 않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런 빨래 방식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면 수건을 오래 사용할 수 없다나. 내 입장에서는, 빨래는 거의 다 내가 도맡아 했다. 빨래를 하는 입장에서 두 가지를 구분하는 건 굉장히 귀찮은 일이었다. 이일로 2~3일은 투닥투닥 했다. 결국 그때부터 지금까지, 빨래는 수건을 따로 구분해서 빨고 있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싸울 거리는 한가득이었다. 우선 여자친구는 화가 나면 모두 드러내는 성격이다. 나는 조금 참고, 참고, 또 참는 성격이다. 참는다고 해서 그때 화가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티가 안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화가 났지만, 말만 안 할 뿐 여자친구가 다 알게 된다.      


나는 여자친구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더 조심히 대하고 그 사람 기분을 헤아려서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여자친구는 반대로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화가 났으면 그때 그때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걸 어떻게 참지?     


여자친구와 만나는 거의 1~2년 정도는 이와 같은 견해 차이로 수시로 다퉜다. 지금은 나도 기분 상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말한다. 또 여자친구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사람이 자라며 가장 많이 싸우는 존재는 가족이다. 가까울수록, 친할수록 많이 싸우게 된다. 우리가 같이 살면서 가족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자친구도 지금은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서로 기분 상하는 일이 없게 조심해야겠지만.     


이 외에도 싸울 일은 태산이다. 치약을 뒤에서부터 짜느냐, 앞에서부터 짜느냐. 입은 옷을 어디에 두느냐. 밥을 먹었으면 바로 치우느냐, 조금 쉰 뒤에 치우느냐. 이 외에도 싸운 일은 정말 많은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일들이다. 같이 살게 되면 싸움은 언제나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싸우게 되는 일이 ‘청첩장의 글씨체’를 정할 때라는 것처럼 말이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그 집은 정말 추억이 많다. 함께 김밥을 만들고 소풍을 가기도 했고, 집 근처에서 베드민턴을 치기도 했다. 또 크리스마스에는 서로의 친구들을 불러서 ‘어색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도 했다. 물론 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없는 사람들을 불렀다. 그 집에서 우리 가족의 세 번째 식구, 설이(강아지)를 입양하기도 했다. 설이가 심장사상충 치료 중이라 산책을 하지 못할 때, 셋이서 마당에 앉아 햇빛을 쬔 것도 기억이 난다.      


너무 습하고, 너무 춥고, 너무 더운 것만 빼면 정말 괜찮은 집이었다. 첫 번째 겨울은 괜찮았는데 두 번째 겨울부터는 정말 너무 추워졌다. 집의 외벽이 얇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겨울에 가스요금이 20만원 가까이 나온 적도 있었다. 당시 가스요금이 굉장히 많이 올랐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그게 이렇게 나에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뉴스일 줄은 몰랐다. 결국 우리는 그 단점 때문에 다음 집을 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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