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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끼 Oct 22. 2023

극장을 나오다

극장 생활을 할 때에도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는 몸이 안 좋았다. 언젠가 명절 때, 꽤 오랜만에 찾아가 봤는데 딱 봐도 몸이 좋지 않아 보이셨다. 원래는 통통하시고 말도 참 잘 하셨는데, 그때 뵌 할머니는 삐쩍 마른 몸에 말수도 너무 줄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왜 우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고 나왔다.     


그 해였던가 다음 해 였던가. 결국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예전에 했던 그리스 비극 공연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 6시쯤 아빠에게 전화가 와서,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잡히는 대로 옷을 주워 입었다.      

“어디가?”

“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좀 다녀올게.”     


비몽사몽한 여자친구와, 비몽사몽한 나는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는 집앞에 나를 데리러 온 아빠 차에 탔다. 전화로 상조회사를 알아보고, 가격을 문의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와 아침으로 맛없는 순두부 찌개를 먹으며 또 나 혼자 울었다. 할아버지는 기독교 신자시다. 하느님께 간 것이니 그리 슬퍼할 필요 없다며 웃었다. 그런 할아버지도 빈소에 마련된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볼 때, 또 입관식을 할 때는 우셨다. 나는 그렇게 우는 할아버지를 처음 봤다.     


그렇게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그리스 비극으로 복귀했을 때, 나는 머릿속이 꽤 복잡했다. 내 머릿속이 복잡해서인지 연습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특정 장면들에서 연습은 정체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내 역할에서 잘렸고, 나는 그 길로 극장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 그리스 비극은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극장 식구들도 대거 이탈했다. 당시 극장 분위기는 꽤 좋지 못했다. 연출은 극장 식구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극장에 남을 것인지, 나갈 것인지를 한명 한명에게 물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극장을 나가겠다고 했다. 연출은 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보라 했고, 그 쉬는 시간에 설 명절이 있었다.      


명절에 그 한 분 남은 할머니를 다음 명절 때 뵈러 갔다. 아마 명절에는 시간이 안 되어서 따로 나만 할머니집에 갔던 것 같다. 할머니는 나에게 밥을 차려주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너희 아빠 요즘은 안 힘드니?”

“아, 힘들어 할걸요? 잘 모르겠어요.”     


당시 우리 집은 힘든 상황이었고 아빠는 일을 하느라 새벽에도 일어나야 했다. 이건 고등학교 때부터 있던 일인데,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꽤 길다. 어쨌든 나는 그때 집에서 나와 산 지 꽤 되었을 때라 아빠가 어떤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힘들 거야. 너가 아빠 도와줘야 해. 일도 하고 돈도 벌고..”     


할머니는 밥을 먹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종종 엄마 아빠에게 용돈을 받아 쓴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된 적도 없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사실 옛날이라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하나 남은 할머니가 하는 말이라 그런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날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항상 극장 스케쥴에 맞추다 보니 친구들과의 약속도 지키는 둥 마는 둥 했다. 명절에 친척들을 잘 보지도 못했고, 엄마 아빠를 보러 집에 가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니, 조금은 허무했다. 내가 내 꿈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못 봐가며 고립되는 건 아닐까? 아니, 이게 정말 내 꿈이 맞을까?  

    

처음에는 무대에 서는 게 좋았다. 관객들이 나를 보며 웃으면 나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의상을 입어볼 때 설렜고, 새로운 대본을 받으면 내 캐릭터는 무엇일지 고민하며 연습을 했다. 그러다 점점 재미는 없어졌던 것 같다. 물체가 운동하던 방향을 유지하려 하는 걸 관성의 법칙이라 한다. 차가 급정거 하면 몸이 앞으로 쏠리거나, 갑자기 출발하면 몸이 뒤로 쏠리는 현상이다. 뉴턴이라는 똑똑한 사람이 발견한 과학 법칙인데, 이건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나는 관성에 따라, 그냥 하던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극장 일을 하고, 또 때가 되면 작품 연습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길로 연출에게 나오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극장을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도 크다. 나에게 극장에서 꽤 기회가 많았다. 탐나는 역할들도 있었지만 내가 해내지 못한 것도 많다. 내가 그만큼 간절했느냐 묻는다면 당당하게 대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아마 내가 다시 연기를 하는 일은 절대 –절대라는 것은 절대 없다고들 하지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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