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장을 나오고 논술 학원 선생으로 일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그대로 극장에 남았다. 뭐든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끝을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같이 극장 생활을 할 때는 같이 극장에 나가고,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쉬는 날에도 같이 쉬었다. 그러다가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부터는 스케쥴이 맞지 않는 일이 많았다. 같이 살고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여자친구도 결국은 그 극장을 나왔다.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 한창 바쁘게 지내던 여자친구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많이 쓸쓸해 했다. 그 무렵부터 여자친구가 강아지를 키우자는 말을 많이 했다. 여자친구는 예전에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물론 나도 키운 적이 있지만, 마당에 묶어놓고 키웠던 강아지였다. 여자친구는 집에서 강아지를 정말 ‘본격적으로’ 키웠었다.
처음에는 반대했다. 둘이 먹고 살기도 우리가 버는 돈은 충분치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면 예방접종, 각종 사료, 간식, 용품 돈 들어갈 일이 많다고들 하지 않는가. 또 강아지에게 쓸 시간이 모자랐다. 여러모로 반대할 일 투성이였다. 여자친구도 이런 상황을 알기에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여자친구가 혼자 심심하게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눈에 밟혔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결국 눈 딱 감고 강아지를 키우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여자친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온 공고들을 보며 어떤 강아지를 데려올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도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라고 했다. 유기견이라는 말이 나는 마음에 걸렸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찬성했다.
1월 25일, 아마 설 연휴였을 것이다. 나와 여자친구는 차를 하나 빌려서 여주에 있는 보호소로 갔다. 보호소로 가는 동안 여자친구는 전화통화로 간단한 면접(?)을 봤다. 요즘은 유기견을 데려가는 사람도 이렇게 면접을 본다고 한다. 사실 꽤 합리적인 일이다. 동물을 버리는 사람은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동물을 좋아한다고, 키운다고 집으로 데려갔던 사람이 버리기에 유기견, 유기묘가 나오는 것이다. 아마 그런 사람을 최대한 거르려는 의도로 하는 면접이 아닐까.
여수에서 설이와 처음 만났다. 그때는 이름도 없었다. 우리가 차에서 ‘설날에 데려오니 설이란 이름을 지어 주자’는 말에 따라 ‘설’이라는 이름을 준 것이다. 1월 25일은 설이의 생일이 되었다. 준비해 간 켄넬에 설이를 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호소장님께 듣고 차에 다시 탔다. 당시 설이는 꽤 긴장해 있었고, 콧물을 계속 흘렸다. 그래도 차 멀미는 안하는지 토를 하지는 않았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먼저 집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서 설이 상태를 살폈다. 콧물이 나오는 것 말고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발톱을 정리하고, 설이 목에 걸려있던 너덜너덜한 목줄을 제거했다. 그리고 설이를 다시 켄넬에 넣고 우리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며 여자친구는 여러 강아지 용품을 사러 갔다. 나는 먼저 집으로 설이를 데리고 왔다. 집에 도착해서 켄넬 문을 열자 설이는 내게 으르렁 대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그런 설이를 괘씸하게 생각했지만, 지금 그 때를 떠올리면 설이가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서운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짐작도 가지 않는다.
설이는 그렇게 우리집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부터 나는 유기견에 관련된 유튜브를 정말 많이 찾아봤다. 대부분의 영상에서는 유기견을 데려온 지 처음 한달 정도는 집사들이 물 셔틀, 밥 셔틀, 산책 셔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외에는 강아지에게 일절 관심을 주지 말라고 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설이가 유별난 경우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했다.
집에 온 지 며칠이 지나서는 설이가 우리에게 조금씩 다가왔다. 다가와서 난데없이 발랑 배를 까 뒤집고 눕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는 설이가 우리에게 만지는 것을 허용했다. 물론 여러 난관이 있었다. 계속 흐르는 콧물 때문에 냄비에 물을 끓여서 주변에 놓아 주기도 했고, 설이 때문에 가습기를 사기도 했다. 거실에만 있으려는 설이를 안방으로 데려 오려고 별이 별 수를 다 썼다. -당시 우리 집은 너무 추웠다.-
이제 설이도 우리와 꽤 친해졌을 때 즈음, 산책도 나가기 시작했다. 설이는 특이하게 집에서는 똥 오줌을 싸지 않았다. 물론 산책을 하지 않을 때에는 하루에 한 두 번 오줌을 쌌다. 똥은 거의 삼일에 한 번정도 싼 것 같다. 그랬던 설이가 산책을 시작한 이후로는 매일 똥을 쌌다. 밖에서. 우리는 똥 오줌을 참는 설이가 불쌍해서라도 하루에 최소 두 번, 많으면 세 번 네 번씩 산책을 시켜주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즘 다시 동물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피 검사를 하고 여러 예방접종을 맞았는지 검사를 했다. 예방접종 몇 개를 맞아야 한다고 나왔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설이에게는 심장사상충이 있었다. 심장 사상충은 심장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다. 심장에 있는 엄마 벌레는 아기 벌레들을 낳는데, 그 아기벌레들이 강아지 혈관을 따라 계속움직이게 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설이는 가끔씩 이유없이 하악하악 거리기도 했다.
심장 사상충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주사를 맞는다고 한다. 주사는 약 한 통을 이틀에 걸쳐 맞는다. 그런데 그 약 한통이 20만원이다. -솔직히 가격을 듣고 너무 놀랐다. 동물 키우는 데는 정말 많은 돈이 드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설이 중성화 수술을 한 뒤 51만 원이 나온 것을 보고 주사는 약과였구나 싶었다- 약을 두 번 나눠서 맞는 셈인데, 하루 주사를 맞고 다음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주사를 맞을 수 없다. 그러니 그런 경우에는 20만원을 그냥 버린 셈이 된다. 개봉한 약을 추후에 다시 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치료... 하실 거죠?”
“네? 아, 네네.”
동물병원 선생님은 나에게 조심스레 질문했다. 나는 왜 그런 당연한 걸 질문하나 싶었다. 그런데 설이가 유기견이었고, 옛날에 버려졌던 이유가 이런 ‘돈’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설이가 새삼 가여웠다.
주사를 맞고 설이는 정말 아파했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나에게 짜증을 냈다. 좋아하는 고기를 먹다가도 짜증을 내고, 나한테 쓰다듬어 달라고 와서 누워있다가도 짜증을 냈다. 그렇게 결국 이틀을 버티고, 꾸준히 약을 먹은 결과 설이는 심장사상충이 다 나았다. 지금은 집에서 털을 날리며 잘 살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며 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선 집을 고를 때 ‘반려동물 가능’한 집인지 꼭 확인을 해봐야 했다. 놀러 갈 때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기 힘들었다. 놀러 가서도 설이에게 관심을 쏟아야 해서 꽤 피곤했다. 하지만 설이가 내게 다가와서 40~50대 사람이 앉을 때 내는 소리같이 끄응 거리며 발라당 할 때는 그런 피곤함이 없다. 아기를 키우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여자친구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 식구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