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트박스에서 엄마를 만나다

by 트와일라잇

지난 6월 여행 때, 엄마와 나, 딸들과의 기념 반지를 샀다. 그 반지를 사면서 느낀 건 너무도 엄마스러운 나라는 것이다.

5년 전, 사랑하는 아들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엄마가 아들에게 건넨 이상한 말.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싸구려 가방을 들고 다녀도, 다 명품인 줄 알아. 내 가방 사 올 꺼면 그냥 그 가격을 반으로 나눠서 조금 더 싼 걸로 작은 엄마 꺼도 사 오렴. “

나는 내심 ‘하나뿐인 아들의 며느리에게 받는 귀한 예물인데, 엄마는 참 무심하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넘겼던 말이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아마도 언제 장가갈는지 기약 없는 우리 사촌을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과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며느리가 분명히 최고급 가방을 사다 주겠다는 마음으로 건넨 말인데, 나라면 아쉬웠겠지?

그렇게 예단도 나누던 엄마의 딸이어서일까?

보석 박힌 내 결혼반지가 아이들의 손에 닿으면 아플까 봐 10년째 서랍 속에 고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면세점이나 아웃렛에 가면 예쁜 반지를 하나 사야지.라는 생각을 품고 여행을 떠났다. 어디서도 마음이 동하지 않던 내 마음이 김포를 떠날 때에야 급해졌던 걸까?

문득 롯데몰에 들려, 아이의 옷을 사 가려하다가 마주친 주얼리 샵에서 예쁜 실반지 하나를 보았다.

로즈골드 빛 얇은 링의 주변에 아주 작은 큐빅들이 연보랏빛으로 빛나고 있는 그 반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가 명품 주얼리의 가격에 4분의 1도 안되던 저렴한 가격도 마음에 들었다.

내 사이즈에 알맞게 반지를 구입했다. 나를 따라나섰던 막내가 내 꺼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자, 막내의 것도 하나. 다행히 가장 작은 사이즈의 반지가 아이의 손에 맞았다. 럭키!

가게 문을 나서려던 순간, 공항 카페에서 쉬고 있던 엄마와 큰 딸이 생각났다. 내 생전의 기억으로 한 번도 손에 반지를 낀 걸 본 적이 없는 엄마. 예쁜 보석이 박힌 반지를 종종 서랍에서 꺼내어 보여주시곤 했다. 그 영롱한 빛을 어린 나는 참 동경했었다.

그 마저도 세탁 공장 사업을 하면서 어려워지자 모든 금붙이(우리 삼 형제의 돌반지)까지 팔아서 살림에 보태게 되었다.

‘엄마 반지도 사야지!’

내 반지 사이즈를 기준으로 엄마와 딸의 사이즈도 어림해서 샀다.

공항 카페에 도착해서 우리 넷은 깔맞춤처럼 반지를 끼고 좋아했었다. 슬며시 좋아하던 엄마의 미소가 제일 행복했다.

두 달 뒤 여름, 그런 귀한 사연이 있는 반지들이 살짝 고장이 나서 (내 것은 큐빅이 하나 빠졌고, 수연이는 사이즈를 늘려서 4번째 손가락에 끼고 싶어 했다. ) 수리를 맡기러 간 액세서리점.

가게 문은 닫혀있다. 안내된 번호로 전화해보니, 12시에 연다고 하는데 지금은 11시 30분.


나는 30분 동안 무얼 하지? 고민하다가 아트박스에 들어갔다.


아트박스의 소소하고도 예쁜 문구를 보면 너무도 행복한 사람. 그게 나이다. 귀여운 스마트 용품을 보면 남편이 생각나고 예쁜 헤어핀과 키티와 산리오 캐릭터를 보니 둘째 딸이 생각났다. 예쁜 잠옷을 보니 큰 딸이 생각났다. 이거 저거 부산스럽게 바구니에 넣었다. 내 다이어리 사러 간 건데, 다이어리는 뒷전이다.

그리고 지하층에 내려가서 보드 게임을 둘러보는데, 조카딸 예은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게임이 있었다. 사줄까? 고민하다가 혹시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에 올렸다.

역시나, 동생은 이미 이 게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하다가, 그 사진을 보여주자 질투하는 두 딸들.

“엄마는 왜 예은이 꺼만 생각해?”

“너네 꺼도 사 왔잖아. 보드 게임도 키티 스티커도 간식도 다 너네 선물이야. 엄마는 물건을 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생각나.”

나는 억울했다. 두 딸들을 위한 스티커랑 젤리, 그리고 보드게임과 과자까지 사들고 돌아온 내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바라볼 수 있던 건, 아니 갑자기 먹먹해졌던 건, 갑자기 생각난 엄마 때문이다.

늘 좋은 곳에 가서 물건을 살 때마다 그 물건이 어울릴듯한 손녀딸을 생각하고 사 오던 엄마. 집에 좋은 물건이나 맛있는 과일이 들어오면 그걸 좋아하던 딸이나 아들에게 보내던 엄마.

나는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되어간다고 말을 했었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10여 년의 육아 끝에 알게 되는 것은 그 말이 내가 새로운 엄마가 되어간다는 뜻,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간다는 뜻이 아니란 것이다.

그냥 우리 엄마, 나에게 한 때 세상의 유일한 기준이었고, 유일하게 사랑받고만 싶었던 그 사람, 우리 엄마를 닮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문득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나를 보면서 사무치게 그 한 사람이 그리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엄마,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