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언어

by 트와일라잇


“재은아, 집에 고춧가루 있니? 지난번에 가져간 갈치는 잘 먹었고? 요즘 엄마는 참기름을 직접 뽑아낸 집에서 사 먹는데 너무 맛있어. 너도 한 병 줄까?”


내가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의 주부가 된 뒤, 엄마가 집에 갈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다. 집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챙겨서 주려고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늘 당연하게 받아왔으며 때론 귀찮게 여길 정도로 철부지인 나이다.


이틀 전, 친정에 다녀왔다. 주말에는 아빠를 도와서 일을 해야 해서 바쁠 것 같다던 엄마의 말씀이 생각났다. 평일에라도 다녀와야지 하며 마음먹고 있었다. 그 순간, 온 엄마의 전화.


“나 요즘 입맛이 없어서 물김치를 담그려고 하는데, 너도 먹을래?”


엄마는 한겨울에는 종종 입맛이 없다며 물김치를 담그곤 하신다. 그 물김치를 핑계로 친정집에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이들의 학원을 다 마친 오후 시간, 느지막이 집에 가서 엄마와 닭을 쪄내고 닭죽을 끓여 먹었다. 압력밥솥에 푹 익힌 닭이 부드러웠다. 엄마가 생전 처음 드셔 보신다는 석화도 쪄 내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요즘 많이 바쁘신지 7시가 되어서야 퇴근하신 아빠. 아빠의 양손에는 레드향이 가득 든 봉지가 두 꾸러미나 있다. 맛있기로 소문난 서귀포 큰고모가 보내신 귤이다. 아빠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시며 마침 차에도 귤이 한 상자 있으니, 나에게 가져가라고 하신다.


아빠까지 식사를 다 마치자 상을 정리하고 귤을 까 본다. 알이 꽉 찬 레드향이다. 향도 진하고 맛은 달큼하고 새콤한 게 입에 착 붙는 맛이다. 귤 종류의 과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엄마랑 아빠와 나지만 맛있다면서 연신 그 큰 레드향을 3개나 까먹었다.


귤 농사를 짓는다고 늘 누군가를 챙기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한 결 같이 큰 고모가 챙겨주시는 맛있는 귤을 먹어왔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고모한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엄마가 큰 고모에 전화를 거신다.


“잘 지내고 있어? 귤 받아서 전화해. 00 이는 언제 개업이라고 했지?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


고모의 아들, 사촌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사업을 꾸린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그 이후로 그 사촌동생이 언제 어디서 개업하는 것인지 자꾸 이야기하시던 엄마. 아무래도 엄마는 귤을 받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 없는 고맙다는 전화. 이제야 문득 보이는 엄마의 언어이다.


평생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한 우리 엄마. 나는 그런 엄마에게 언제나 사랑의 표현을 갈구했던 것 같다. '‘잘하고 있지? 엄마는 너를 믿는다. 사랑한다.’


이런 말들. 듣고 싶지만 들어본 적 없던 그런 말들에 대한 나의 기대는 엄마의 사랑을 자주 의심하게 했고, 불평하게 했다.


되돌아보니, 엄마는 고마움을 표현할 때마다 무언가를 주는 것으로 표현했다. 고마운 사람의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더 성의 있게 축의금과 조의금을 보내는 것, 식사비를 내는 것. 육지의 친구들에게 매년 귤을 부치는 것, 그런 것으로 말이다.


그냥 살갑게 고맙다고 말 한마디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과 달리, 기꺼이 자신의 것을 챙겨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던 엄마. 그리고 내가 귤이 맛있다고 하자 반색하시며 먹던 귤도 가져가라고 챙겨 주시던 아빠.


그런 부모님을 보니, 먹이를 구해 와서 하루 종일 입 벌리고 기다리던 아기 새들에게 먹이를 먹이는 어미 새의 모습이 생각났다. 날 것 그대로의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새들의 모습. 내게 언어가 와닿지 않던 어떤 순간에도, 엄마랑 아빠가 자신의 몸짓으로 행위로 보여주던 그 모습. 새들처럼, 날 것 그대로의 사랑이 아닐까?



불현듯 듣게 된 엄마의 통화 덕분에 살짝 멀리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 덕분에 당연하게, 습성처럼 여기던 엄마의 반찬 챙겨주기와 살피기가 사실은 너무도 사랑하는 딸을 향한 무언의 언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잊혀있던 엄마의 마음을 만나고 말았다. 이 언어가 와닿지 않는 거 같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40년간 내게 말을 걸어왔던 엄마에게 고맙고, 그 언어가 끊이지 않음으로 인해서 마침내 내게 와닿은 것에 대해 그저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언어는 나를 통해서도 딸에게 흘러갈 테지. 나의 경우를 보자면 이 언어는 딸에게 아주 늦게 도착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낼 수밖에 없는 무언의 언어. 그 언어가 가 닿을 때쯤 나처럼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있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일렁인다. 부디 그 언어가 꼭 필요한 그때에 닿아서 그녀의 인생에 따스함과 고마움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