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게 반말이 필요한 시간

by 트와일라잇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로 만났던 5월의 독서모임은 나에게 여러 모로 생각할만한 질문을 주었다. 바로 반말과 거리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귀여운 5살 꼬마 주인공인 제제는 자신을 애틋한 마음으로 아껴주는 뽀르뚜까 아저씨를 만나서 조금씩 친해지며 마음을 연다. 그때, 제제가 아저씨에게 부탁한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도 아저씨를 다른 아저씨의 친구들처럼 ‘뽀르뚜까’라고 불러도 돼요?”(여기서 뽀르뚜까라는 말은 포르투갈 사람을 낮춰서 부르는 듯한 말이다. 아이가 어른에게 쓰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단 뜻이다.)


천진난만한 소년의 질문에 놀라면서도 허락을 해주던 뽀르뚜까 아저씨. 그와 더불어 점점 더 친밀한 사이가 되어가던 둘. 친밀함이란 반말과도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니, 나는 친하지 않은 누군가에 말을 먼저 놔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직장에서 만난 후배들에게도 결코 먼저 반말을 하지 않는다. 즉, 나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늘 유지한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나의 삶은 이사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빈번히, 자주 이사를 했다. 태어나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종로를 시작으로, 광명의 개봉동, 부천의 역곡, 마포구 염리동, 노원구 상계동, 경기도 일산, 제주에 이르기까지 총 열 한 번의 이사를 하면서 살았다. 즉 2-3년에 한 번 씩은 아무도 모르는 타지로 이사를 하며 살았다. 부천에서 입학한 초등학교를 서울 마포구에서 졸업하고, 상계동에서 입학한 중학교를 경기도 일산에서 졸업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입학한 고등학교는 머나먼 제주에 와서 졸업했다. 뿌리 없는 해초처럼, 해파리처럼 떠다닌 셈이다. 그런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상처와 적응 능력은 나에게 늘 존댓말을 쓰게 했다. 심지어 고등학교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내게 있어서 존댓말은 존중이 아니라, 거리를 지켜달라는 내 마음의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교회에서 만난 2살 연하의 후배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남편은 순수하며 직설적이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솔직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내게 없는 모습, 나는 타인에게 한없이 솔직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연상연하 커플이 된 나는 연애를 할 때는 나의 남자 친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쓰곤 했다. ‘너’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너무 싫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라고 부르기 싫은 마음과 반말을 하다 보면 서로 감정이 격해지거나 화가 나면 어떻게 대처할지 너무도 두렵기 마음이 있었다.


결혼이 주는 느슨한 마음 덕분일까? 결혼을 하고 나서 점차 존댓말이 반말로 바뀌어 갈 무렵,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다시 존댓말을 장착하고 남편을 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부부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조금 더 말을 예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더 교양 있어 보이는 부모의 모습이고 싶었다. 늘 남편에게 ‘자기’, 또는 ‘여보’ ‘나는 ~~ 하고 싶어요. 당신은 어때요?’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제 결혼 생활 12년 차, 독서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반말과 존댓말 사이의 거리감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맴돌았다. 생각나는 건 남편과의 대화. 나는 타인과의 벽을 쌓듯, 남편하고 하나의 벽을 쌓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도 타인으로서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구나.’


왜 그랬을까?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남편에게 두던 거리감. 그것은 어쩌면 남편을 ‘존재’로 대하기보다는 ‘역할’ -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좋은 부모,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에 나는 남편을 한 사람의 존재로 바라보는 걸 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날 밤, 아주 살포시 남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나에게 이것도 꽤나 서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철진아, 우리 차 마실까?”


오랜만에 반말하는 아내의 모습이 놀라웠을 남편에게 자꾸 반말을 시도해본다. 신기하게도 반말을 사용하는 순간, ‘우리’가 바뀌었다. 지금의 나에게 우리는 나와 남편, 사랑하는 아이 둘 이렇게 넷이었는데, 반말을 사용하며 우리를 표현하는 순간의 우리는 ‘철진이와 나’ 우리 둘 뿐이었다.

아주 작은 언어 하나뿐인데, 우리가 바뀌다니 신기한 일이다. 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함께 셀카를 찍고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일상을 다시 살기 시작한다. 내가 만든 10여 년의 역할놀이에 매몰되어 ‘아빠이자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던 남편의 존재가 다시 보인다.


가끔은 부부에게 반말이 필요하다. 서로를 존재로 바라봤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기억 속엔 여전히 ‘너’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부모이자 성인이란 역할에 매몰되어서 자꾸 잊게 되는 세상의 연인과 부부들이 있다면, ‘누구의 엄마’, ‘김 과장님’, ‘김 가장 님’ 이 아닌, 이름을 불러보기를 나직이 권해본다.